하사와 병장 ‘목화밭’에서 목화솜 입에 문 BTS 뷔까지[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2023. 1. 2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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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인류역사 가장 큰 공헌한 식물.가장 가치 높은 ‘비식량작물’
문익점 이전 한반도에 목화 재배. 중국 개량종 보급 대중화
목화(木花) 이름은 목면화(木綿花) 목면·면화·초면(草綿)
2019년 7월20일 서울 서대문 농업박물관 뜰에 핀 비단결 분홍색 목화 꽃.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우리 처음 만난 곳도 목화밭이라네/우리 처음 사랑한 곳도 목화밭이라네/밤하늘의 별을 보며 사랑을 약속 하던 곳/그 옛날 목화밭 목화밭//우리 처음 헤어진 곳도 목화밭이라네/기약도 없이 헤어진 곳도 목화밭이라네/서로 멀리 헤어져도 서로가 잊지 못한 곳/조그만 목화밭 목화밭//

나 이제사 찾아온 곳도 목화밭이라네/그리워서 찾아온 곳도 목화밭이라네/그 소녀는 어디가고 나만 홀로 외로운/그 옛날 목화밭 목화밭>

1975년에 남성듀엣 ‘하사와 병장’이 낸 데뷔 앨범 ‘그대와 둘이서/목화밭’.목화밭 히트로 가요계 정상에 올랐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남성 듀엣 ‘하사와 병장’의 공식 데뷔 앨범에 수록돼 많은 사랑을 받은 가요 ‘목화밭’이다. 이경우(하사)와 이동근(병장)으로 이뤄진 이 남성듀엣은 군복무 시절 만나 군예대 활동을 통해 음악적 교감을 나누다가 제대 후 통기타 살롱을 전전하며 1983년 해산되기 전까지 큰 명성을 얻었다. 속초를 유난히 사랑한 이경우는 속초에서 ‘목화밭’이란 카페를 열기도 했다.노래가사 대로라면 한때 전국에 걸쳐 있던 목화밭은 청춘남녀들 밀회 장소로 사랑받았던 듯하다. 비단결 같은 목화꽃, 눈송이 같은 목화솜 열매 등 낭만적 풍경과 달리 목화 줄기는 작은 가시 같은 것이 무수히 많이 있어 찔리면 아프고 피가 난다.그 속에서 만나 밀애를 즐기기엔 부적절한 장소임에 분명하다. 가시 리스크에도 불구, 옛 연인들은 농촌 들판에서 달짝지근한 풋 목화 몇 알로 갈증과 허기를 달래며 밀어를 즐겼노라고 가요 ‘목화밭’은 증언한다.

서울 서대문구 농업박물관 야외 뜰에 붉은색으로피어있는 목화꽃. 2020년 9월 25일 촬영

덜 익은 열매는 먹을 수 있는데, 달큰한 맛이 다래와 비슷하다 해 목화다래, 실다래라고도 한다. ‘면화다래’나 ‘청면’(덜익은 면)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풋내가 나고 특유의 섬유질이 입 속에 많이 남기 때문에 식감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그래도 달달한 먹거리를 찾기 힘들던 1950~1970년대에는 목화 열매가 군것질로 사랑받았다. 당시만 해도 시골에서 목화를 키우는 건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목화(木花)의 정확한 명칭은 목면화(木綿花·Cotton)로,‘목면’‘면화’‘초면(草綿)’이라고도 부른다. 열대지방 원산이 많으나, 섬유작물로서 온대지방에서도 널리 재배되고 있다.

목화는 아욱과이기 때문에 접시꽃, 무궁화, 아욱과 꽃모양이 유사하다. 열매가 꽃처럼 피어나고, 꽃은 열매처럼 익어가는 재미있는 식물이다. 여름에 피는 진짜꽃은 몽우리일 때 흰색에서 연노란색으로 바뀐다. 수정이 되고 나면 다시 점차 붉은색으로 익어가다가 땅에 떨어진다. 꽃 진 자리에는 밤톨만한 열매가 열리는데, 덜 익어 말랑말랑할 동안에 따먹으면 달짝지근하고 쫀득한 식감이 별미다. 시월 하순 경이면 씨방이 열십자로 갈라지면서 팝콘이 터지듯 들판 한가득 하얀 꽃이 몽실몽실 피어난다. 열매가 성숙하면 긴 솜털이 달린 종자가 나오는데, 털은 모아서 솜을 만들고 종자는 기름을 짠다.씨앗을 맺을 때 생기는 털을 이용해 솜과 무명천을 만든다. 씨앗으로는 기름을 짜는데, 면실유라고 한다. 시중에 파는 식용유 중에 있으며 한때 참치캔을 채우고 있는 기름이었으나 유채꽃씨유(카놀라유)로 대체됐다.

목화 만큼 인류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식물은 드물다. 목화는 역사상 가장 가치가 높은 ‘비식량작물’이다. 다른 비식량작물인 관상용이나 미용 식물과는 차원이 다르다. 목화는 사회 혁명과 운동, 전쟁, 이를 소재로 한 동화까지 만들어냈다. 목화를 구해온 인물은 역사적 위인으로 숭앙받았다. 목화는 뭐니뭐니해도 의복 혁명으로 인류를 추위로부터 해방시켰다. 인류는 목화 덕에 겨울 추위를 극복, 비로소 사계절 모두 활동할 수 있게 됐다. 그로 인해 생산성의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솜털이 맺히기 시작한 목화꽃. 2019년 7월20이 서대문 농업박물관

목화는 산업적 측면에서도 전세계 경제패권 지도를 바꿔놓기도 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미국이 거대한 부를 축적한 것도 따지고 보면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을 이용한 면화 생산이 원동력이 됐다. 한때 일본경제 전성기를 이끈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 도요타도 면화방적기 시업이 시발점이 됐다고 한다.

방탄소년단(BTS) 뷔가 목화솜을 입에 물고 2022년 3월 촬영한 모습. 내추럴한 목화솜이 꽃꽂이 등 다양한 용도로 사랑받고 있다. 빅히트뮤직

하지만 목화의 황금기는 석유로 인하 한 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석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를 가공해 만든 더 가볍고 값싼 화학섬유에 밀려 설자리를 잃었다. 늦가을이면 문전성시를 이루던 동네 솜틀집도 사라졌다.실을 한올한올 엮어서 천을 짰는데 이를 ‘길쌈’이라고 했다. 길쌈질로 만든 천을 ‘무명’이라 불렀다. 훗날 등장한 방적기계로 짜낸 폭넓은 무명을 ‘광목’이라 불렀다. 광목이 나오면서 의복의 대량생산이 이뤄졌다. 갓 튼 이불솜의 포근하고 뽀송뽀송한 촉감의 기억도 함께 잊혀졌다.

고려말 선각자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붓뚜껑에 숨겨 ‘밀수’해온 목화 씨앗 몇 알이 이 땅의 민중들을 추위로부터 해방시켰다고 한다. 세종대왕은 나라 시책으로 전국에 면화 재배를 장려해 면화 대중화가 이뤄졌다. 왕족이 아니더라도 무명천으로 옷을 지어 입을 수 있게 됐고, 목화솜으로 누빈 외투로 추위에 떨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2010년 백제 시대의 면직물이 출토되면서 목화 도입 원조 논란이 제기됐다. 문익점 이전에도 한반도에 목화가 존재했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됐다. 명심보감 염의(廉義)편에도 신라사람 인관과 서조의 이야기 속에 솜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2019년 7월24일 서울 서대문구 농업박물관. 목화꽃은 하얀색 분홍색에서 적색으로 바뀐다.

고고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목화는 온난하고 건조한 기후인 인도의 고원지대가 원산지인 만큼 장마와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 기후와는 잘 맞지 않아 극소수만 재배에 성공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런 희소성으로 인해 목화는 높으신 분들의 사치품이나 의례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면직물 유물이 출토된 곳은 주로 절터로, 왕실이나 귀족의 원찰로, 의례용으로 사용됐을 확률이 매우 놓다는 것이다. 백제 이후로도 삼국사기 색복지를 보면 통일신라 중기 사람들의 복식으로 견직물, 삼베, 소가죽 등이 주로 언급돼 문익점 이전에 면직물이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다지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않았다.

이후 동북아시아 기후에 맞게 개량된 퍼진 중국제 종자를 들여온 것이 문익점의 공이었다. 성군 세종대왕의 목화 대중화 정책과 겹쳐 문익점은 공신 반열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조선 영조대왕이 왕비를 뽑는 시험을 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모두 장미, 모란 같은 꽃을 언급할 때 정순왕후 김씨가 백성을 따뜻하게 하는 목화꽃이 가장 아름답다고 대답해서 왕비로 채택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하튼 목화 전래로 기존의 삼베옷보다 백성을 따뜻하게 해준 건 사실이지만, 목화로 만드는 무명천은 비쌌고, 조선시대에는 이 무명천으로 화폐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평통보가 등장하기 전까지 조선의 기축통화나 다름 없었다.일반 평민들은 겨울나기 옷 한두벌 정도밖에 가질 수 없었다.

21세기 들어 목화는 또다른 형태로 부활하고 있다. 꽃꽂이 소재로 대인기를 누리면서 대박을 쳤다. 방탄소년단(BTS) 뷔는 지난해 유튜브 채널 방탄티비 다이어리 꾸미기 촬영에서 목화솜 입에 물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변신, 설렘을 유발하는 등 내추럴 이미지의 목화꽃·목화솜이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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