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턱 밑까지 찬 미 '부채한도'…우리나라는 안전할까

남승모 기자 입력 2023. 1. 28. 09:15 수정 2023. 1. 2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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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정부의 부채가 법정 한도에 이르자 미국 정부가 채무 불이행을 피하기 위해 특별 조치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현지시간 지난 19일부터입니다. 미 연방정부의 법정 부채 한도는 31조 4천억 달러, 우리 돈 약 3경 9천조 원입니다. '경'이라는 단위가 생소한 우리로서는 어느 정도 금액인지 잘 와닿지도 않는 규모이지만 이 거액을 빌려 쓰고도 돈이 모자라다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의료비 지출 등 복지 정책, 인프라 구축 같은 각종 투자에 돈을 쏟아부은 결과입니다.

미국의 정부 부채 한도 제도는 1917년부터 시행됐습니다. 연방정부가 의회의 제어를 받지 않고 지출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얼핏 바이든 정부가 동맹국 지원과 복지 정책 등에 무리하게 돈을 쓴 탓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미국 역대 정부에서 부채 한도 상향은 늘 있어 왔습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1960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 정부의 부채 한도는 78번이나 상향 조정됐습니다. 거의 매년 연방정부는 세수보다 많은 지출을 해 왔고 국채 발행 등으로 이를 메워왔습니다.
 

협상 대상 아니다 vs 지출 삭감이 먼저



백악관과 재무부를 비롯한 바이든 정부는 연일 의회에 전제 조건 없는 부채 한도 상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19일 CNN에 출연, "이건 경제적인 안정이냐 혼란이냐의 문제"라면서 "미국이 어쩌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다른 사안과 연계해 협상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대규모 정부 지출 삭감을 부채한도 상향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공화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정부는 예산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백악관이 1페니의 낭비도 찾을 수 없다(며 지출 삭감에 반대하는)는 것은 우리를 파산시키려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매카시 하원의장은 바이든 대통령과 회동을 제안한 상태입니다.

사실 이는 정책적 판단의 문제로 어느 한 쪽이 옳다고 잘라 말하기 어려운 사안입니다. 좋게 말해 정책적 견해차, 나쁘게 말하면 정쟁에 가깝습니다. 공화당은 낭비를 막고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고 하지만 민주당은 민생 투자이고 부채한도 상향과 재정적자는 별개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 정치 지형상 양측이 접점을 찾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재선 도전 선언을 앞둔 백악관 입장에서는 지출을 줄이기 어렵고 매카시 하원의장 역시 15번 투표 끝에 의장에 선출됐을 만큼 당내 입지가 공고하지 않은 상황에서 강경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조치 시행했지만…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미 재무부가 특별조치를 시행하기로 해 6월 초까지는 연방 정부가 채무 불이행에 빠지는 일은 없을 걸로 보입니다. 특별 조치란 채권 발행 등으로 돈을 빌리는 대신 특정 사업의 지출을 줄여서 여윳돈을 마련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지출 조정이란 게 변수와 한계가 있다 보니 재정 여력이 얼마나 갈지 불확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옐런 재무장관도 '상당한 불확실성'이 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여야 모두 물러서기 힘든 상황인 데다 특별 조치로 벌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도 불투명하다 보니 '경제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현지시간 25일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상향을 둘러싼 갈등 속에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위기 조짐이 언제 보이기 시작할 것인지 시장이 주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옐런 재무장관은 현지시간 21일 트위터에 "미국은 1789년부터 지금까지 늘 부채를 모두 갚아왔으며 우리가 그런 식으로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인식이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떠받쳐왔다"면서 "디폴트(채무 불이행)는 미국 경제에 광범위한 피해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문제는 세계 경제, 특히 금융 시스템의 경우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미국의 혼란이 미국만의 피해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2011년 악몽 잊지 말아야



아무리 정쟁이 심해도 설마 미 연방정부가 채무 불이행까지 가기야 하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설사 채무 불이행까지 가지 않는다 해도 피해는 얼마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11년 오바마 정부 당시, 미 정치권은 장기부채 감축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해법이 달랐습니다. 공화당은 복지지출을 줄여 적자를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오바마 정부는 증세를 통한 세수 확충으로 적자를 줄이자고 맞섰습니다.

국가부채 상향을 놓고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사이 재무부의 특별 조치도 효력을 다하면서 사상 초유의 국가 채무 불이행 직전까지 갔습니다. 2011년 8월, 양당이 복지 지출 축소와 세수 확대라는 절충안에 합의했지만 신용평가기관인 S&P는 양당의 합의안이 재정 지출 감축에 충분하지 못하다면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낮췄습니다. 7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이후 금융 시장이 요동치면서 미국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습니다.

미국이나 중국에서 기침만 해도 감기에 걸린다는 우리 경제가 무사할 리 없었습니다. 미국 증시가 흔들면서 우리 코스피 지수 역시 며칠 연속 주가가 폭락했고 1,800선이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로존 국가의 국채 위기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렇게 악재가 얽히고설키면서 세계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번 미국의 부채 한도 상향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미국 내 정쟁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고 있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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