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견제도 거부하는 윤 대통령은 무소불위 권력자?
어디에서도 견제받지 않는 윤 대통령의 우려스러운 국정 행보
안녕하세요, <논썰>의 박현입니다.
대선과 취임 초기에만 해도 적극적인 소통을 약속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점차 불통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습니다. 그 어느 대통령보다도 자유를 많이 외쳤던 대통령이었기에 몇개월 사이에 권위주의적으로 변하고 있는 모습에 의아함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야당과는 처음부터 소통하지 않았고, 아예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모양새입니다. 처음엔 대면을 자주 했던 언론과도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거리두기를 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야당과 언론에 개의치 않는 것은 물론이고 행정부 내에서, 그리고 당정 관계에서도 독주를 하고 있습니다. 정치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이번 논썰에서는 견제받지 않는 윤 대통령의 국정 행보와 그 위험성을 짚어보겠습니다.
설 지나도 풀리지 않는 ‘UAE 적은 이란’ 발언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입니다.(윤석열 대통령, 15일 UAE 아크부대 연설)
윤 대통령의 실정은 최근 외교·안보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의 적은 이란”이라는 실언의 파장이 설을 지나고서도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외교부에선 “장병 격려 차원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발언이 비공개 자리에서 이뤄졌다면 이런 설명도 가능할 수 있겠으나 영상까지 공개된 상황에서는 그런 설명으로는 부족합니다. 실제로 이란이 이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이란에 신속히 유감을 표명하고 특사를 파견해 이해를 구하는 절차를 밟는 게 파장을 최소화하는 방안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오히려 “(해당) 발언은 한-이란 관계와는 무관하다”며 이란이 오해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설 이후에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사실관계에 맞는 발언이라며 한술 더 뜨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 적은 이란이라고 했는데 이 발언은 기본적으로 사실관계가 맞는 발언이다.”(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25일 원내대책회의) 그런데 정작 이란은 아랍에미리트가 자국의 두번째 교역상대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관계 발전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랍에미리트도 지난해 8월 주이란 대사를 6년 만에 다시 파견하며 관계 회복에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굳이 제3국인 우리나라 대통령이 두 나라가 적대국 관계라고 규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도 사람인 이상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외교적 실수는 상대국과의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참모들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예방조처를 해야 합니다. 만약 문제가 발생할 경우엔 파장이 커지지 않도록 신속히 해결에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는 이런 교정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누구도 대통령에게 실언을 했다는 점을 감히 얘기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면서 언론 탓, 야당 탓을 하며 일을 키웁니다. 대통령실과 여당 지도부의 말을 듣고 있자면, 지난해 비속어 논란 때처럼 윤 대통령의 말은 절대 틀리지 않고, 설사 틀렸다고 해도 실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고집스러움이 느껴집니다.
“지금 대통령실에서 나오는 발언들을 보면 이란이 오해한 것 같다, 이런 식의 발언들만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국내적으로도 옳지 않고 국외적으로도 옳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국내적으로는 다시 한번 국민들한테 듣기 평가를 시키는 그 기시감을 자꾸 느끼게 하거든요.”
“지난번 바이든 날리면의 그 기시감”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2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북 무인기 사태, ‘팃포탯’보다 안보리로 가져갔어야
안보 문제와 관련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보다 더 심각합니다. 자칫 북한과의 긴장을 고조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6일 북한의 무인기 침투 사실을 보고받고 ‘2~3배로 우리 드론을 북에 올려 보내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합니다. 우리 군은 실제로 무인기 ‘송골매’ 2대를 군사분계선 북쪽 5㎞ 상공까지 보냈습니다. 일부에선 ‘속 시원하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별 실익은 없고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는 행동이라고 봅니다. 우리 군이 무인기를 휴전선 너머로 사실상 공개적으로 보냈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글로벌호크 같은 고고도 무인 정찰기와 정찰위성 등으로 북한 전역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글로벌호크는 지상 20㎞ 상공에서 지상의 30㎝ 크기 물체까지 식별해낼 수 있습니다. 무려 1조원을 들여 미국에서 4대나 구입했습니다. 북한이 이런 고성능 정찰기나 정찰위성이 없어 무인기를 침투시키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는 무인기를 굳이 올려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북한에 우리의 강경 대응 의지를 보여준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실익이 없습니다. 특히 휴전선 이북으로 무인기를 침투시키는 건 정전협정 위반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유엔군사령부(유엔사)는 지난해 말부터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조사했고, 남북 모두에 대해 협정 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한겨레> 26일치 1면 기사 참조)
오히려, 무인기를 보내는 방식으로 맞대응을 하기보다는 북한에 대해 정전협정 위반 안건을 유엔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정식 회부하는 게 더 현명한 판단이라고 봅니다. 북한의 최대 후원국인 중국이 정전협정 당사국인 만큼 중국도 이 문제를 가벼이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북한을 압박했어야 합니다. 우리 국방부 수뇌부가 이런 정도의 판단은 능히 하고 있을 터인데,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따르기에만 급급했습니다. 국가안보실이나 합참 등 참모진이 대통령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자제를 시켰어야 했는데 그런 게 작동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공격을 당하면 100배, 1000배로 때릴 수 있는 KMPR(대량응징보복) 능력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이 공격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을…”
“도발에 대한 자위권 행사는 확고하게 한다. 그리고 거기에 대응, 똑같은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몇배, 몇십배의 수준으로 우리는 대응을 한다.(중략) 그것만이 우리의 정당한 자위권, 효과적인 자위권 행사가 된다.”
윤 대통령이 지난 11일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한 마무리 발언의 일부입니다. 정말 화끈합니다. 그런데 위험합니다. 이런 발언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와서도 안 되지만, 이것이 외부에 여과 없이 공개되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발언은 일부 지지층을 만족시킬지는 모르겠지만, 현행 국제법이나 유엔사 정전 교전규칙에 명백히 위배됩니다. 국제법에서 자위권 행사를 하려면 임박성·필요성·비례성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비례성은 예컨대 상대국이 대포 한발을 쏘면 대포 한발로 대응하는 식을 말합니다. 특히 비례성은 무력행사가 과도해서는 안 되고 위협 요인의 제거 목적에 국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화끈하지만 위험한 ‘100배, 1000배 보복’ 전략
일부에선 이걸 이른바 ‘광인 전략’(Madman Strategy·미치광이 전략)이라고 옹호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미치광이처럼 보이게 해 상대방에게 공포감을 유발하려는 전략입니다. 이런 식으로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제압하겠다는 것입니다. 1960년대 말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이 전략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트남전을 치르던 당시 그는 핵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식으로 소련을 위협해 소련으로 하여금 북베트남이 협상장에 나오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통령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식의 발언을 해서 이런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전시작전통제권도 가지지 못한 나라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북한이 곧이곧대로 믿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칫 전쟁을 유발할 수도 있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100배, 1000배 보복 전략을 미국이 과연 받아들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별 효과는 없고 긴장만 고조시킬 뿐이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제가 이거 비하하려는 게 아니고 실제 국제정치에 나오는 개념입니다. 매드맨 스트래터지. (중략) 미국은 패권국이고 핵전쟁을 준비하는 나라니까 그런 발언이 먹혀들었다고 보지만 우리 군을 우리 대통령이 작전 통제합니까? 못하지. 누가 해? 데프콘3 선포되면 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령관, 미군 장성한테 넘어간다. (중략) 자기 나라 군대도 작전통제 못 하면서 미친놈 전략을 쓴다면 그 결과가 허망한 거지. 윤석열 대통령이 그걸 입증하려면 지금 군대에 새로운 전쟁 준비 지시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미국하고도 한판 뜨겠다. 이런 결기가 나와야 이 광인 전략이 먹혀드는 거라고.”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 1월14일 김종대TV)
저는 여기서 대통령 참모들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괴짜 정치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광인 전략’을 쓰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핵심 참모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감에 의존해 즉흥적으로 내리는 결정들을 제어했습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그런 역할을 하다 대통령과 불화 끝에 중도 사임했습니다. 매티스 장관은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반대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들이 그나마 ‘균형추’ 역할을 했기에 트럼프 4년 재임 시기에 큰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 외교·안보 사안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 대통령실의 핵심 참모들이나 국방부·외교부 고위 관료들 중에 대통령의 잘못된 발언이나 결정에 ‘No’라고 용감하게 말하는 이가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윤 대통령은 연초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는데,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이 짧게는 9분에서 길게는 28분에 이른다고 합니다. 발언이 길어지다 보니 불필요한 발언도 적지 않습니다. ‘100배, 1000배 보복’ 등의 발언도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인식이 다른 것 같습니다. 대통령실 일부 인사들은 “대통령이 아는 게 얼마나 많으면 즉흥 발언을 20분 넘게 하겠느냐”고 추어올리기도 한다고 합니다.(한겨레, 24일 정치바 ‘배지현의 보헤미안’ 기사 참조) 마치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많이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현대 민주주의의 요체는 ‘견제와 균형’에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나 특정 세력이 독주를 하면 반드시 탈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몇개월간 대통령의 발언과 정책 행보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봅니다.
정당 민주화 20년 후퇴시킨 ‘나경원 파동’
대통령실 참모들이나 내각의 관료들이 대통령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이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현대 민주주의는 흔히 정당민주주의라고 합니다. 정당이 중심이 되어 책임정치를 하는 걸 말합니다. 정당은 자신들이 선출한 대통령 후보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실정이나 권한남용을 할 때는 이를 적극 견제하고 교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정당이 제역할을 못하면 책임정치 구현은 요원해집니다. 대통령은 임기가 끝난 뒤 떠나면 그만이지만, 그 과정에서 국정이 엉망이 돼도 유권자들은 다음 선거 때까지 오랜 시간 감내해야 합니다.
이번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 과정을 보면 여당은 대통령실의 여의도출장소쯤 되는 것 같습니다. 이래서는 정당의 책임정치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반윤’인 유승민 전 의원을 배제하려고 전당대회 규정을 18년 만에 ‘당원 대표 100%’로 바꾸고, 나경원 전 의원에 대해서는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대사직에서 해임시켰습니다. 여당 초선의원 50명은 나 전 의원을 비판하는 연판장까지 돌렸습니다. 나 전 의원이 부위원장직을 덥석 받은 뒤 석달도 되지 않아 당 대표 출마에 나선 것도 무책임한 일이지만 대통령실이 이렇게까지 나서는 건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정당민주주의를 군사독재 시기와 ‘3김 시대’로 후퇴시키는 것입니다.
“아니, 지금 대통령실이 윤 대통령을 포함해서 전당대회에 저렇게 개입하는 경우는 옛날에 아주 지명하던 시절, 3김 시대 이래로는 잘 없던 일이고 박근혜 대통령 때도 누구를 은근히 밀었지만 그렇게 은근히 했지 지금처럼 저렇게 내놓고 한 일은 없잖아요.”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저에게 오늘 이 정치 현실은 무척 낯섭니다.”
“정당은 곧 자유 민주주의 정치의 뿌리입니다. 포용과 존중을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질서정연한 무기력함보다는, 무질서한 생명력이 필요합니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 당대표 불출마 선언문)
윤 대통령은 국정 운영과 정치적 경험이 거의 없는 정치 아웃사이더 출신입니다. 그러기에 여당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런 일이 벌어져 더 우려스럽습니다. 대통령 주변에 예스맨들만 있고, 여당도 자신들이 영입한 대통령을 견제하지 못한다면 그 정권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그 실패의 대가를 국민들이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복잡하게 얽힌 이슈들을 대화와 설득, 타협으로 풀어가는 대의민주주의의 정치 과정을 하루빨리 이해하고 여기에 적응해야 합니다. 검찰총장 시절의 보스 기질로 돌파하겠다는 생각은 파열음만 낼 뿐입니다. 대통령이 야당을 정치 파트너로 인정하고, 언론의 감시 기능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대통령실 참모들이나 내각 관료들, 그리고 여당 지도부도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동시에 견제도 하는 균형추 역할을 적극 하기를 바랍니다.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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