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엔 화이트지…우주 유영하듯 기분 좋은 맛 [ESC]

한겨레 2023. 1. 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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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타이 치앙마이에 직접 가서 배워온 이 소지지에는 레몬그라스, 갈랑가, 라임잎, 강황 같은 향신료를 넣은 타이식 소시지다.

나는 동남아 향신료를 좋아해서 이 소시지를 배우러 치앙마이를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기대했다.

하지만 섬세한 맛과 향을 가진 수제 소시지는 오크통에 숙성한 샤르도네와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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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권은중의 생활와인]권은중의 생활 와인 테더 샤르도네
테더 샤르도네와 수제 소시지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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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별 생각 없이 라벨 디자인이 멋져서 와인을 충동적으로 고르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이런 와인은 사놓고도 잊어버려서 가끔 와인을 정리하다가 ‘내가 이런 와인을 언제 샀지’하고 놀라기도 한다. 테더 샤르도네(Tether Chardonnay)가 그랬다. 우주비행사가 유영하는 특이한 디자인에 정신을 빼앗겨 샀던 기억이 났다. ‘마시면 우주로 간다?’ 피식 웃음이 났지만 뭔가에 홀린 듯 2병이나 담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 이 와인을 얼마 전에 드디어 땄다. 후배 중에 언론사를 그만두고 육가공을 배워 수제 햄과 베이컨을 만드는 친구가 있다. 물론 수제인 만큼 몸에 좋지 않은 인산염이나 아질산나트륨 같은 게 없다. 이탈리아식 햄이 그리울 때 찾아가는 나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장소다.

그런데 다들 이 후배의 델리에 갈 때 레드 와인을 들고 오는데 나는 이 테더를 들고 갔다. 테더 샤르도네를 들고 간 까닭은 후배가 만든 ‘치앙마이 부어스트’라는 수제 소시지 때문이었다. 후배가 타이 치앙마이에 직접 가서 배워온 이 소지지에는 레몬그라스, 갈랑가, 라임잎, 강황 같은 향신료를 넣은 타이식 소시지다. 나는 동남아 향신료를 좋아해서 이 소시지를 배우러 치앙마이를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기대했다.

후배가 만든 소시지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소시지가 또 있다. 평안도가 고향인 후배 외할머니가 어릴 적 만들어주신 피순대 스토리를 입힌 스페인과 한국의 퓨전 소시지인 ‘모르시야 델 귀종’이다. 귀종은 외할머니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맛도 모양도 피순대를 닮아 구수하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햄과 소시지를 레드 와인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섬세한 맛과 향을 가진 수제 소시지는 오크통에 숙성한 샤르도네와도 잘 어울린다. 특히 열대 과일과 향신료 풍미가 강한 미국 나파밸리 샤르도네와 궁합이 좋다.

테더는 내가 마셔본 미국 샤르도네 가운데 이국적 향이 강한 와인의 하나다. 멜론, 구아바, 파인애플과 함께 꿀, 바닐라, 꽃향기를 느낄 수 있다. 치앙마이 부어스트나 모르시야와 잘 맞았던 것은 물론이고 다음 안주였던 수제 살라미나 소스를 곁들인 스테이크와 함께할 때도 와인이 밀리지 않았다. 그래서 함께 마셨던 레드 와인보다 페어링이 더 좋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요즘 프랑스 등에서 생산되는 샤르도네는 오크 터치의 복합적인 향을 줄이고 샤르도네의 자연적인 산도와 향을 강조하기 위해 절반은 1차 알코올 발효, 나머지 절반 정도를 오크 숙성하는데 테더는 반대다. 전부를 프렌치 오크에 넣는데 그 가운데 50%는 가격이 비싼 새 프렌치 오크통에 18개월이나 넣어둔다. 화이트 와인으로는 다소 과한 대접이다. 그렇지만 이 과정으로 포도 고유의 날카로움이 부드럽게 바뀌고, 파인애플·바닐라 같은 다양한 향이 또렷이 입혀졌다.

테더의 레드도 샤르도네와 똑같은 디자인의 라벨을 쓴다. 레드 역시 마시면 둥둥 우주 유영을 하는 기분을 선사할까? 궁금해진다.

글·사진 권은중(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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