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남한 말과의 전쟁”…멜로디는 빌리고

KBS 2023. 1. 28. 08: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앵커]

우리는 ‘표준어’라고 하는데 북한에선 이를 ‘문화어’라고 부릅니다.

박사임 앵커, 이 북한의 문화어는 평양말이 기준이죠?

네, 우리는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기준으로 하는데, 북한에선 ‘평양말을 중심으로 하여 노동자 계층에서 쓰는 말’을 문화어라고 합니다.

네, 최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평양 문화어 보호법’을 채택했는데요.

이유가 우리 드라마 등을 보고 따라하는 남한말, 즉 우리말이나 말투 사용을 통제하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네, 한편으론 북한 당국이 먼저 나서서 변화를 주도하는 분야도 있는데요.

바로 음악과 공연입니다.

기존의 노래들을 대대적으로 편곡하거나 남한 노래 멜로디도 차용한다는 분석도 나오는데요.

통제와 변화의 기로에 선 북한, '클로즈업 북한'에서 자세히 살펴봅니다.

[리포트]

어느 연구소 자재과장과 소장의 대화가 이어지는 드라마의 한 장면입니다.

["소장 동지 저 싸이클 선수들 좀 보십시오. (참 좋구만.)"]

그런데 이 과장, 유독 외래어를 많이 쓰는데요.

["아니, 저 처녀 선수 오이꼬시(추월) 하는 걸 좀 보십시오."]

["아니 저렇게 한도루(핸들)를 놓고 달려도 일 없는가?"]

결국 소장이 충고에 나섭니다.

우리 말처럼 알기 쉽고 표현이 풍부한 말이 없는데 하필이면 왜 다른 나라 말을 쓰면서 그럽니까.

하지만 자재과장은 습관처럼 외래어를 남발하는데요.

["아 실장 동무, 동무네 실에도 필요한 쓰레빠(슬리퍼)가 얼마나 되는지 좀 장악해줘. (쓰레빠요?) 방한신. 실내화 말이요."]

["병아리? 코스가 어데야 (호수요?) 호수가 아니라 코스, 코스."]

["(아니, 어디라고요?) 로타리. (아니, 로타리라는 건?) 네거리, 네거리 말이요."]

이렇게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돼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결국 과장은 우리말 사용을 다짐하면서 드라마는 끝이 납니다.

["내 이제부터 아니 이 시각부터 꼭 고치겠습니다."]

이처럼 외국어나 외래어 사용을 배격하며 민족 고유 언어를 쓸 것을 강조하고, 심지어 사투리를 쓰지 말 것도 어릴 때부터 가르칩니다.

["서이 (서이가 아니고 셋이에요.)"]

["아이들과 말할 때 사투리를 쓰지 말고 표준어를 써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학교에 다닐 때 국어교육과의 연관성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표준어가 바로 ‘평양 문화어’입니다.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평양 문화어는 북한의 표준어 체계이죠. 북한에서 얘기하고 있는 논리는 뭐였냐면 지금 남쪽에 쓰고 있는 언어가 많이 훼손됐고 잡탕말이 되었기 때문에 민족 언어의 순수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 체계를 만들어야 된다, 라고 얘기를 했었고 평양문화어가 중심이 되게 되면 그게 표준이 되고 다른 지역들이 방언이 된 형태로 바뀌었고요."]

이처럼 언어 사용에 엄격한 북한은 최근 우리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평양 문화어 보호법’을 채택했습니다.

["평양 문화어를 보호하며 적극 살려나가는 것은 사회주의 민족문화발전의 합법칙적 요구이라고 하면서 언어생활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는 사업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했습니다."]

문화어 보호법 채택이 사상과 제도, 문화를 수호하기 위한 법적 담보 마련이라고도 덧붙였는데요.

하지만 실제로는 북한에서의 남한말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입니다.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반동사상이 언어의 문화에 들어온다라고 보고 있어요. 언어가 훼손되게 되면 정신이 흐려지고 그 정신이 흐려지게 되면 나쁜 생각이 물든다고 하는 것이 북한이 언어가 가지는 기본적인 전제입니다. 외래어(남한말)를 쓴다라고 하는 것은 외부 사정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이거는 좀 짚고 가야 할 문제라고 하는 것을 법을 통해서 확고히 한 것이죠."]

국가정보원도 2021년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이 남한식 말투를 집중 단속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하태경/당시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 : "청년들 사이에서 남쪽 언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서 남편을 ‘오빠’라고 한다든지. ‘오빠’라고 쓰면 안 된다, ‘여보‘라고 써야 한다. ‘남친’ 쓰면 안 되고 ‘남동무’라 불러야 하고, ‘쪽팔리다’는 표현은 금지어고 ‘창피하다’고 써야 하고."]

그렇다면 북한에서 남한식 말투는 어떤 경로로 퍼질까?

[장미/2020년 탈북 : "제가 있을 때 ‘쪽팔리다’라는 말을 많이 썼어요. 그리고 ‘오빠야’라는 말도 많이 썼고. 이런 것들을 저희는 비디오를 통해서 접하잖아요. 그러면 저희는 어린 나이에 접하기 때문에 자랑하고 싶고 많이 알고 싶은 거예요. 많이 알면 또 친구를 통해서 자랑을 해야죠. 이러다 보니까 점점 퍼져나가게 되는 거고."]

중국이나 러시아, 미국 영화도 접할 수 있었지만 유독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남, 북이 같은 언어를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장미/2020년 탈북 : "제일 중요한 것은 언어가 갔잖아요. 다른 영화들과 달리 그래서 더 흠뻑 빠졌던 것 같고 영어 단어에 이렇게 빠지지는 않았어요. 솔직히 영어는 말 그대로 외국어잖아요. 한국 드라마에서나 영화에서 나오는 어떤 고급스러운 말들이 있어요. 그리고 말투가 예쁘잖아요. 그래서 그런 말투라든지 (한국)언어 같은 거에 굉장히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어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한류에 대한 통제와 단속, 처벌이 강도 높게 이뤄지고 있지만 이미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언어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는데요.

[장미/2020년 탈북 : "길 가는데 핸드폰 검사를 하자고 해서 핸드폰을 보여줬어요. 북한은 ‘~요’라는 말이 없어요. ‘~습니다’예요 무조건. 한 살 많아도 ‘~습니다’고 두 살 많아도 ‘~습니다’예요. 그런데 저한테 ‘왜 한국말을 쓰냐’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어디에 한국말이 있냐’ 라고 하니까 ‘~요’자를 썼다는 거예요. 사실 안 쓰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순간에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더라고요. 무의식 속에 튀어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아 진짜 이러면 안 되겠다 이러면 안 되겠다고 다짐을 몇 번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튀어나오는 단어가 있었어요."]

이처럼 ‘평양 문화어 보호법’까지 채택하며 한류 차단에 나섰지만 막상 당국 차원에서 한국 아이돌 그룹의 노래 일부를 차용했다는 의혹이 나왔습니다.

지난해 말 신년 경축 대공연에서 신인가수 정홍란이 부른 ‘우리를 부러워하라’라는 노랜데요.

[北 노래 ‘우리를 부러워하라’ : "세상이여 부러워하라~ 우리를 부러워하라~"]

1절과 2절 사이에 나오는 간주에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가수들의 군무와 함께 10초 정도 흘러나온 이 멜로디가 2017년 발표된 걸그룹 ‘여자친구'의 노래, ’핑커팁’의 한 부분과 같은 전개를 보인다는 겁니다.

[강동완/동아대학교 부산하나센터장 : "이 두 곡을 들어보면 누가 들어도 똑같은 곡이다라고 추정할 수가 있는데요. 리듬이나 박자, 심지어는 전자악기로 구성된 악기 부분까지도 똑같은데 저희가 전문 음악인에게 분석을 의뢰했는데요 두 곡의 음이름 코드가 백프로 일치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부러워 하라’는 1990년대에 등장한 노랜데요.

2016년 청봉악단이 불렀을 때와 비교해도 간주가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북한 당국의 한국 음악 차용은 이번에 처음이 아닙니다.

영상에 사용된 배경음악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멜로딘데, 바로 가수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도입붑니다.

원곡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약간의 변주는 있지만 멜로디 자체는 원곡 그대로를 따르고 있습니다.

또 기존 곡을 빠르게 편곡하고, 집단 군무를 등장시키는 등 남한 대중문화를 참고하는 모양샙니다.

이런 움직임은 선전 선동의 전환이란 분석입니다.

[강동완/동아대학교 부산하나센터장 : "북한 내에 지금 한류가 확산되고 있고 남한의 음악이 새 세대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북한 당국도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요. 또 남한 음악 자체가 굉장히 리듬이 빠르고 또 인간의 사상과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많이 새세대들이 즐겨 부르고 그것을 북한당국이 수용했다 라고 볼 수가 있죠."]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강한 문화 약한 문화가 있거든요. 이게 문화는 개인의 취향이고 여러 가지의 선택지라고 열려져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같은 세대의 문화라고 해서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이런 대응할 수 있는 문화적 수단이라든가 문화적 생산량 그리고 문화자체의 퀄리티라고 하는 것들이 많이 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대응문화를 만들어 내고 공급하고 한편으로는 문화적 차단을 하려고 하는 것이죠."]

한편으론 법까지 만들어 남한 말을 경계하고 그러면서도 필요에 따라 음악은 교묘하게 차용하고.

바깥세상에 대한 젊은 세대의 호기심을 억누르며 통제된 변화를 추구하는 북한의 실험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KBS

Copyright © K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