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가치의 공존을 위해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3. 1. 28.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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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 〈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과학에서 가치란 무엇인가
케빈 엘리엇 지음, 김희봉 옮김, 김영사 펴냄

“가치는 과학적 추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다’라는 명제는 헛된 이상이다. 과학이 적용되는 현실 사회가 가치중립적인 무균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적인 추론이 가치에 의해 영향을 받는 방식을 살펴보고 특히 그중에서 부적절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여러 단계에 걸쳐 설명한다.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무엇을 달성하고자 하는가? 불확실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가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 가치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과학철학자인 저자는 말한다. “중요한 판단을 더 잘 드러나게 하고 비판적인 조사가 가능하게 하려는 의지야말로 객관성의 증거다.”

 

 

 

 

항전별곡
김학철 지음, 보리 펴냄

“혁명자를 마치 타고난 천재처럼, 초인간처럼 묘사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조선의용군은 일제강점기 말 설립된 조선인 독립 부대로 처절한 항일 무장투쟁을 펼쳤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국에선 사회주의 단체였기 때문에, 북한에선 김일성 독재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독립운동사에서 지워지다시피 했다. 〈항전별곡〉은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으로 일제는 물론 이승만과 김일성, 마오쩌둥 등의 독재자에게 대항해 투쟁했던 ‘혁명자’ 김학철의 자전적 소설이다. 항일전쟁 시기 저자와 전우들이 몸소 겪은 사실들을 유머와 익살, 낙천성으로 그려냈다. 의용군 설립 이전 개별적 무장 테러 활동, 항일 근거지인 태항산에서의 전투 등이 주요 소재다.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쓰지야마 요시오 지음, 정수윤 옮김, 돌베개 펴냄

“서점 운영자로서는 실격인지도 모르겠으나, 손님 얼굴을 좀처럼 기억하지 못한다.”

도쿄 독립 서점 ‘타이틀(Title)’을 운영하는 저자가 전하는 사람들, 책, 서점 노동자들의 작은 이야기다. ‘책에 대한 것, 서점에 대한 것’ ‘스쳐 지나간 것들’ ‘팬데믹 시대의 서점’을 담았다. 읽다 보면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 주인장 ‘마스터’ 이미지가 떠오른다. 대형 서점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다 독립해 작은 서점을 연 저자는 책을 큐레이션하고, 서평을 쓴다. 청각장애인 사진작가 사이토 하루미치가 찍은 독립 서점과 골목을 담은 사진마저 따뜻하다. 주제마다 2장 안팎의 작은 이야기들이 엽편처럼 술술 읽힌다. 〈심야식당〉 마스터가 선보인 계란말이를 흉내 내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비루’를 꺼낸 뒤 다시 책을 폈다.

 

 

 

 

 

유대인, 발명된 신화
정의길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기독교는 유대인을 창조했고,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인을 창조했다.”

유대인과 이스라엘 문제는 복잡하다. ‘태극기 집회’에서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가 나란히 등장하는가 하면, 진보 진영에선 유대인이 중동 분쟁에 불을 지른다고 비판한다. 이 책은 여기에 ‘극단적인 편향 인식’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유대인 문제는 기독교 세계가 자신들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타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국제부 기자인 저자가 치열한 중동 문제에 관해 쓰기로 한 건 차별과 혐오, 타자화의 논리를 고발하기 위함이다. 기독교 세계의 소수자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의 민족주의는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졌다. ‘우리’와 ‘저들’의 구분이 한국 사회엔 없는가?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다.

 

 

 

 

 

바바야가의 밤
오타니 아키라 지음,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 펴냄

“알통이 불끈거리는 팔과 빨래판 같은 복근을 쓰다듬는다.”

폭력이 유일한 재능이자 취미인 신도 요리코는 거리에서 시비를 거는 남자들을 때려눕히다 야쿠자들에게 납치당한다. 마침 야쿠자 두목의 딸 쇼코를 결혼 전까지 보호해줄 싸움꾼 여자가 필요했던 터. 하지만 신도는 야쿠자 본진에서도 “멧돼지 같은 강렬한 박치기”와 목젖 후려치기, 걷어차기, 휘두르기 등으로 거침없이 싸운다. 170㎝가 넘는 키에 “거목을 조각하여 만든 듯한” 근육질 몸을 가진 신도는 순수한 야생성 그 자체. 하지만 ‘아가씨’ 쇼코와 함께하며 두 사람의 작은 일탈은 운명을 바꾸는 우정으로 바뀐다. 어떤 여성 독자는 이 책을 읽고 주짓수를 시작했다고 한다. 페이지가 너무 빨리 넘어가 아쉬운 책이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은유 지음, 김영사 펴냄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도 다들 엄청난 자기 서사를 품고 있어요.”
 
먹는 즐거움은 글이 되지만, 밥하는 괴로움은 글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가사노동에는 지면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절박한 문제였다. 밥이 글이 될까 스스로도 의심하면서 누구도 청탁하지 않은 글을 묵묵히 썼다. 그러자 “저처럼 밥하는 일로 힘들고 고통받는 분들이 우르르 나타나서 공감했다며 같이 눈물 흘려주는 독자가 되었다”라고 저자는 쓴다. ‘나’만큼 좋은 글쓰기 재료는 없다. 나에 대해 정확히 쓴다는 것은 내가 속한 사회와 공동체를 이해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 재밌는 글쓰기를 나만 할 수 없어서” 그동안 받은 질문을 추려 답했다. 읽는 사람은 결국 쓰는 사람의 자리에 도착한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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