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개정, 삼성 출신 vs 판사 출신 ‘디테일 승부’[이런정치]
예방·처벌 강화에 방점 찍힌 개정안 10건 계류 중
판사 출신 이탄희, 정치적 합의로 인한 ‘양형규정 미비점’ 보완
삼성 출신 양향자, 기업 현실상 ‘예방시스템 구축 한계’ 해소
[헤럴드경제=이승환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논의에 불이 붙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600명에 가까운 근로자가 희생되면서 ‘사고예방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규정의 모호해 헌법상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위헌 논란까지 벌어지면서다. 근로자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고, 경영의 불확실성만 높였다는 지적인 셈이다.
최근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위해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티에프(TF)’를 발족하고 산재 사고 관련 처벌 대상과 수위 등 제재 방식 개선, 처벌 요건 명확화 방안 등을 논의 중이다. 국회에서도 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여야는 현행법의 모호한 기준에 대해서는 공통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다만 국민의힘은 중대재해 예방에, 더불어민주당은 처벌 강화에 방점을 찍고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은 총 10개다. 이 가운데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단순히 법 위반 기업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양벌규정의 미비점을 보완했다는 차원에서 주목 받는다. 과거 중대재해처벌법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여야의 정치적 합의로 양벌규정의 공백이 발생했는데, 판산 출신인 이 의원이 법리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에 맞게 양벌규정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의원의 개정안은 ‘벌금형의 하한’을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초 중대재해처벌법에는 ‘벌금형의 하한’이 규정돼 있었는데 국회의 법안 심사 과정에서 해당 조항이 삭제됐다.
시행 중인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법인 또는 기관에 대한 양벌규정으로 50억원 이하의 벌금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 만을 규정하고 있다. 이 의원의 개정안은 양벌규정에 각각 벌금형의 법정형 하한으로 ‘1억원 이상’이라는 조항을 추가하는 것이다. 산재사고와 관련해서는 처벌 수위가 유독 가볍다는 이 의원의 문제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판사 경험을 살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법원 판결에 견제구를 날린 셈이다.
이 의원은 “우리나라는 OECD 산재사고사망율 상위권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망사고에 대한 법원의 터무니없이 낮은 벌금 선고액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직 국회에 개정안이 제출되지는 않았지만 삼성전자 최초 여성 임원 출신인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발의를 준비 중인 개정안은 기업의 내부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초안이 마련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27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공청회’에서 사고 예방과 관련한 양 의원의 개정안 초안 내용이 일부 공개됐다.
초안에는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 하에 중대재해예방전문기관을 신설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전문성 있는 기관이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이행을 위탁받아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전문적이고 균질한 의무이행이 가능하고, 모호한 규정으로 인한 형사처벌의 불확실성도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방안이다.
특히 영세 사업장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번 초안은 양 의원의 기업실무 경험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50인 미만 사업장 혹은 영세한 사업장은 자체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상 의무를 이행할 만한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영세 사업장에서도 위탁 제도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이행이 가능하고 궁극적으로 사고 예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양 의원은 “처벌도 중요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일터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을 죽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예방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며 “특히 영세 사업장은 중대재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점을 지난 30여 년의 기업 생활을 통해 잘 알기 때문에 국가 주도로 전문기관이 예방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nic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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