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수의 삼라만상 99] 추억이 아닌 상처...그 겨울 '만두공장'

정리=박명기 기자 입력 2023. 1. 28.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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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지금까지 휘어져 구불거리며 노곤하고 피곤하게 따라오는 추억들이 따라온다.

그때 먹은 커다란 스테인리스스틸 용기에 담긴 라면의 맛은 지금도 잊지를 못한다.

어느날인가 나도 결국 종주하다 말고 이탈한 마라톤 주자처럼 셀프 노동수용소를 한 달 못 채우고 20일도 안 되어 그만두게 되었다.

그해 겨울처럼 가슴이 춥고 사라진 않지만, 기억에는 아직 청춘의 얼어버린 만두공장의 추위가 지금도 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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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 5000원 10시간’ 강제노동수용소 같은 아르바이트의 추억

 

삶에서 지금까지 휘어져 구불거리며 노곤하고 피곤하게 따라오는 추억들이 따라온다. 1982년 친구와 11월 만두공장에서 보름간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아침 8시 출근해서 저녁 6시 퇴근에 점심시간도 짧다.

서울 용산역사 왼쪽에 지금은 수입차 매장으로 바뀐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높은 단층 건물은 위로는 오래된 낡은 목재로 만들어진 보들에 얽혀있었다. 

지붕은 양철과 슬라브가 섞인 양철 판으로 올려진 막힌 공간이 없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쾌쾌한 공장 분위기였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이유로 일당 5000원에 10시간 근무를 했었다. 속된 말로 냉동 만두 상자를 트럭으로 쉬지 않고 옮기는 고된 중노동이었다. 

노란 완장을 찬 공장장은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어이 거기 빨리빨리 안 해!" 하며 노동자들이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도록 소리를 질러댔다. 

채찍만 안 들었지 정말 강제노동수용소나 다름없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공장장이 수첩에 이름을 기록하고 퇴근할 때도 수첩에 이름을 기록했다.

그리고 일했다는 증표로 노트에 사인을 하면 도장을 찍은 영수증 같은 것을 그날그날 끊어주었다. 작업이 힘들다 보니 짧게는 이삼 일 길게는 한 주일 이상 못 버티는 청춘들이 대부분이었다.

점심 때마다 근처 함바집에서 그날 처음 본 인생끼리 통성명을 나누며 300원짜리 라면으로 허기를 때웠다. 그때 먹은 커다란 스테인리스스틸 용기에 담긴 라면의 맛은 지금도 잊지를 못한다.

육체 소모라 했나? 자신의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었을 때는 버티지 못한다. 어느날인가 나도 결국 종주하다 말고 이탈한 마라톤 주자처럼 셀프 노동수용소를 한 달 못 채우고 20일도 안 되어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검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반질거리는 옷감에 풍채가 거대한 대표인 듯한 자에게 세종대왕 10장을 노동의 대가로 받은 후 목포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어 지긋지긋한 서울을 탈출했다. 

서울역에서 서로 얽혀있고 자리를 못 잡은 사람들은 서서 끝까지 12시간을 완주해야 했던 완행열차의 풍경이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열차 내부는 담배 연기로 밤새 뿌옇고 통로에 서 있는 사람들은 계란이나 과자를 파는 사람들이 이동할 때마다 비켜주느라 몸을 비틀고 비비적거리며 밤 새 괴로워했다. 

그해 겨울처럼 가슴이 춥고 사라진 않지만, 기억에는 아직 청춘의 얼어버린 만두공장의 추위가 지금도 얼어있다.

배짱이는 그해 겨울처럼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언젠가 배낭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젊은 시절 여행은 평생을 가지고 간다'라며 항상 이야기해준다.

알고보니 젊은 시절 돈은 못 모아도 추억은 모아서 가져간다. 가난하고 궁핍했던 시절 아픈 추억을 누구는 훈장이라 위로하고 누구는 추억이라 덮어준다. 하지만 그건 추억이 아니라 불에 데인듯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는 커다란 상처였다.

글쓴이=주홍수 애니메이션 감독-만화가 sisi9000@naver.com

주홍수 감독은?

30년 넘게 애니메이터로 만화가로 활동을 해왔다. 현재 자신의 원작 OTT 애니메이션 '알래스카'를 영화사 '수작'과 공동으로 제작 중이며 여러 작품을 기획 중이다. 그림과 글과 엮어낸 산문집 '토닥토닥 쓰담쓰담'을 2022년 1월 출간했다.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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