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클릭하기] 독백의 방과 파레시아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2023. 1. 2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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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진행되던 서사가 끊기며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고 출연자는 진솔하게 자기 속내를 이야기한다. 리얼리티 예능에서 자주 보는 '독백의 방'(staged confession)이라는 연출 기교다. 잠재적 연애 파트너에 대한 호감이든, 우승을 놓고 다투는 경쟁자에 대한 견제든, 내 맘을 몰라주는 가족에 대한 서운함이든, 카메라가 켜지고 '독백의 방'에 들어서면 출연자들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솔직해지며 차분히 스스로를 돌아본다. 마치 지금 하는 이야기가 카메라 뒤에 있을 연출자와 자신만이 아는 비밀로 남을 것이고, 그로인해 연출자는 자기를 지지하는 든든한 우군이 될 것이며, 말로 뱉은 이상 다시는 이전의 바보같은 행동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연출자는 종교인이 아니다. '독백의 방'에서 나눈 말들은 곧 조각조각 편집되어 시청자에게 선택적으로 공개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만큼 다른 이들도 '독백의 방'을 활용한다. 결국 '독백의 방'은 시청자를 내기로 솔직함이라는 화폐가 거래되는 협상과 거래의 무대이다. 누가 더 솔직함을 많이 지불하는가에 따라 시청자의 지지와 공감을 살 수 있다.

▲ 사진=gettyimagesbank

조선대 이희은 교수는 그의 논문 <텔레비전 버라이어티쇼의 사적인 이야기 서술>(2011)에서 '독백의 방'이 갖는 부정적 효과로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시청자들은 누구의 고백이 더 그럴듯한가를 비교 판단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개인이 털어 놓는 사적인 이야기의 진솔함이나 감정이 상품을 쇼핑하는 과정처럼 처리되는 것이다”라고 꼬집는다.

독백은 청자를 익명에 위치시키기 때문에 권력의 우열을 작동시키며 익명화된 청자는 공감자가 아니라 평가자로 탈바꿈한다. 출연자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좋은 평가는 그에게 높은 주목과 유명세를 안겨줄 것이다. 투기판을 제공한 제작자가 화제성과 시청률을 얻을 것임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다. 얼핏 리얼리티 쇼의 '독백의 방'에서는 모두가 승자가 되는 기회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자칫 출연자가 어설픈 고백으로 거짓말쟁이로 몰릴 위험은 있겠지만 이 또한 또 다른 '독백의 방'의 무대를 위한 소중한 자원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원래 '독백의 방'은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활용되던 기법이었다. 고발·고백·증언의 가치를 존중해 바스트 샷으로 인터뷰이를 담았고 더 잘 경청하기 위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그에게 집중시켰다. 이 속에서 그는 온전히 자신을 노출하는 위험을 감내하며 때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때로는 분노의 몸짓으로, 자신이 하고픈 불편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냈다. 진실은 제 3자에 의해 경험적이고 객관적으로 입증될 뿐만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이의 태도로부터 주관적으로 도출되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진실 말하기라는 뜻을 갖는 고대 그리스어 '파레시아'에서 근대적 합리성의 시대에는 희미해져버린, 주체가 진실과 맺는 윤리적 관계를 복원하려 했다. 진실을 말하는 자가 지녀야 하는 자유, 용기, 의무는 푸코에게는 진실과 짝을 짓고 진실성을 보증하는 주요한 윤리적 태도였다(미셸 푸코 저, <담론과 진실:파레시아> 참조).

'독백의 방'이 리얼리티 예능으로 옮겨진 가운데 희화화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진실의 윤리이다. 아니 단지 '독백의 방'이 문제가 아니다. '리얼리티'가 말초적인 짝짓기, 과시적 육아, 지엽적인 부부관계, 무의미한 경연과 게임으로 한정된 순간부터 진실의 현실적 무게는 한없이 가벼워져 더 이상 자유와 용기와 의무와는 무관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비단 대중문화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오늘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의 말 또한 경박하고 거칠며 조변석개하기 일쑤다. 감언이설과 교언이 다반사고 식언과 궤변이 횡행한다. 흡사 이들은 각자의 '독백의 방'에서 자기편을 결집하는 거대 리얼리티 쇼 출연자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들이 일회성 출연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 장기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며 그들이 가져갈 판돈이 단지 주목과 유명세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겠다. 말 같지 않은 말을 가려내고 말 같은 말에 자유·용기·의무의 책임을 지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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