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제 한국보다 못해” 폭망론에도...꿋꿋이 버티는 비결은 [한중일 톺아보기]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입력 2023. 1. 28. 06:03 수정 2023. 2. 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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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3-1] 와세다 대학교 국제학술원 박상준 교수
‘일본은 곧 후진국’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

근래 일본에서 발매된 책들의 제목 입니다. 장기 불황은 일본을 대표하는 수식어가 돼버렸고 잃어버린 20년, 30년 같은 신조어가 등장한지도 오래입니다. 국내에서 일본 경제에 대한 부정적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약속이라도 한듯 “한국이 일본 걱정을 하냐”는 식의 반응이 뒷따릅니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유사점이 많아 한국과 일본 경제는 곧잘 비교될 수 밖에 없습니다. 국내외 일본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 상황이 나쁘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한국도 안도할 상황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선임고문 브래드 글로서먼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3년전 “정점을 찍은 일본의 성장은 끝났다”며 향후 일본의 앞길에는 내리막길만 있을 거라고 단언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한국인들은 일본의 상황을 경고 메시지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죠.

일본 와세다 대학의 박상준 교수 역시 일본의 실패 경험이 한국에게 참고가 된다고 조언합니다. 그를 만나 현재 일본 경제의 실상과 이와 관련해 곧잘 제기되는 궁금점 등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발췌.

Q. 지금 일본 경제 상황, 얼마나 또 왜 안좋은건가?
A: 지금 한국도 그렇고 전 세계가 불황이죠. 그런데 일본은 불황이 오면 더 크게 타격 받는 나라이다보니 지금 상황이 매우 좋지는 않습니다.

가장 크고 어떻게 보면 유일한 원인은 인구 감소입니다. 지금 한국 경제가 40대 라면 일본 경제는 60대 느낌에요. 경제학자로서 일본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경험해보니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가 심화된다는 것이 경제 체력을 굉장히 약화시킨다는 걸 실감합니다. 일본 경제가 전체적으로 체력이 매우 약해져 있는 상황인데 이럴때 충격, 예를 들면 리먼 쇼크나 코로나 펜데믹, 미중 마찰,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게 오게되면 다른 나라들 보다 충격을 더 받게 됩니다. 6,70대 노인이 골절상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회복하는데 엄청 오래 걸리죠. 마찬가지로 일본은 한번 쇼크가 와서 충격을 받으면 회복 하는데 오래 걸립니다.

구체적으로 소비가 다른 나라들보다 확 줄어듭니다. 소비가 줄어드니 민간 주택, 투자 수요도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죠. 그러면 기업은 또 기업대로 여기에 맞춰서 설비투자를 줄이게 되니 경제가 갑작스럽게 위축돼 버릴수 밖에 없습니다.

Q. 일본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채권자 대부분이 자국민이라 괜찮다는 말, 사실인가?
A: 국가 부채 소유자가 일본 국내기관이 대부분이란 건 맞습니다. 하지만 결코 안전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가부채 수준이 정부가 부도 날 수 있는 수준이 됐거든요. 중앙정부 부채만 하더라도 이미 GDP의 250%(2022년 6월 기준 1255조엔)를 초과 했어요. 모라토리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일본은행이 일본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50%이상 보유 하고 있거든요. 아베노믹스 이전에는 이 비율이 13% 정도 였는데 양적 완화로 계속 일본은행이 국채를 사들이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정부 채권을 민간은행이 예전보다 덜 가지고 있어서 민간은행이 부담하는 위험은 낮아졌지만, 이 위험이 전부 중앙은행으로 옮겨갔죠.

일본은행이 특히 10년물 국채를 집중적으로 많이 샀는데, 그러다보니 10년물 국채가 시중에서 아예 거래가 잘 안되고 있습니다. 지금 외국인 이나 민간기관이 10년물 국채를 사고 있지 않아 국채시장이 실종됐다는 얘기가 나돌정도로 왜곡된 상황입니다.

또 2013년부터 집중적으로 10년물을 매입했으니 이제 곧 만기가 돌아올텐데 원금을 상환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일본 정부는 계속 적자 입니다. 그렇다보니 새로 국채를 발행해서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을 막아야 되는데 새로 발행한 국채를 누군가 사주지 않으면 일본 정부는 큰 타격을 받을수 밖에 없겠죠. 이런 위험요소들을 떠안고 있는 겁니다.

만약 일본 정부가 정말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게 된다면,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단하긴 어렵지만요. 북한 핵 미사일이나 대지진 처럼 확률은 크게 낮지만 발생한다면 말 그대로 엄청난 파괴력의 재앙이 될 겁니다.

Q.일본은 세계최대 해외자산 보유국이다. 유사시 이걸 팔면 되지 않나?
A: 해외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건 일본의 민간입니다. 주로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이죠. 일본은 워낙 개인들이 저축을 많이 하는 나라라서 개인의 순금융자산이 GDP의 300%에 육박합니다. 이들이 금융기관에 저축을 하면 기관들은 이 돈으로 국채도 사고 해외 투자도 한 거죠. 또 일본 기업들은 1985년 플라자 합의 때부터 해외 진출을 매우 많이 하면서 해외로 시설을 많이 옮겼어요. 그래서 기업들이 해외자산을 많이 갖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부도위기에 처했을때 해외재산을 팔아서 갚을 순 없습니다. 그 해외자산은 일본 민간 기관, 대기업이 갖고 있는 것이고 이들 뒤에는 또 일본의 가계가 있으니까요. 이걸 판다는 건 민간이 자신의 자산을 포기하고 정부에게 이양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민간이 해외에 있는 우리 돈이지만 정부 맘대로 쓰세요, 우리가 갖고 있는 당신의 채권이지만 만기가 와도 상환하지 마세요 라는 말과 똑같은 겁니다. 이건 어느 민간도 원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것 입니다.

다만, 일본은 그리스나 아르헨티나 같은 국가 부도사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겁니다. 이런 나라들은 민간에도 자산이 별로 없었거든요. 국가 전체가 채무국인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었지만 일본은 정부채권의 100%가 엔화로 발행이 됐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엔화로 갚으면 되고 달러가 필요 없는 겁니다. 아시겠지만 국가 부도와 정부 부도는 다른 말입니다. 국가부도는 나라 전체가 부도나는 것이고 정부 부도는 정부라는 기관에 한정되는 거죠.

물론 정부 부도가 일어나면 일본 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이 있을테니 민간도 원하지는 않겠죠. 그러니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탈출구를 마련하려고 할 때 민간이 협조를 하긴 할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부도가 났던 나라들 보단 가능성이 훨씬 낮아서 핵미사일이 터질 확률이라고 말씀 드리는 겁니다.

Q. 잃어버린 30년 동안 일본은 얼마나 후퇴한건가?
A: 일본 경제가 현재 나쁜 상태인 건 사실이죠. 하지만 저는 버블 붕괴 이후 일본경제에 대해 나쁘게만 보진 않습니다. 일본 경제도 그 동안 좋아지고 나빠지는 사이클을 반복했고 그러면서 그들 나름대로 깨달은 것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잃어버린 30년 대신,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말합니다. 왜냐면 최근 10년은 일본이 많은 걸 깨닫고 또 정리하는 시간이었거든요. 예컨데, 한국은 아직 최저임금을 어찌 할 것인가, 노동시간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부동산 규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문제에 대해 매우 대립된 의견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 말은 아직 어떤 해답을 못 찾았다는 말도 됩니다.

그런데 사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 일본도 그랬거든요. 예컨데, 현재 일본의 최대 문제인 고령화와 인구감소를 어떻게 해결할 거냐 했을 때 혼란스런 논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타개책으로 저출산 해결을 목표로 방법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결혼과 출산 유도를 위해 고용과 주거를 안정시키고, 임금을 올리고,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고 이런것들에 대해 정리가 되면서 지금은 별 혼란 없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고용율도 꽤 안정된 상태인데요. 노조도 임금 인상 보다는 고용 안정을 우선시 합니다. 고용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금이 오르면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이들이야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일자리를 잃게 돼서 되레 빈부격차가 커지거든요. 이런 상황을 겪어봐서 지금은 고용안정이 임금인상보다 먼저 라는데 노사가 의견 일치를 보고 있는 거고요. 또 그 덕분인지 사회지표상 자살율과 범죄율이 지난 10년간 많이 개선되기도 했습니다. 또 일본은 출산율이 한국 보다는 높은데 이것도 고용과 주거 안정 덕분입니다.

물론 임금인상도 중요하죠. 안 그래도 인구 감소, 고령화 때문에 위축된 가계 부문이 더 위축되면 안되니까요. 그래서 현재 일본에서도 임금 인상에 대한 콘센서스가 있습니다. 또 최근 3년간 일본 기업들 실적이 괜찮았다보니 임금 인상 여력도 생겼어요. 그래서 임금을 많이 올리자는 게 노조와 정부뿐 아니라 게이단렌의 얘기거든요. 게이단렌이 회원사들에게 5% 이상 인상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회원사들에서도 별 이견이 나오지 않고 있고요. 이것도 예전에 경험했던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이처럼 방향을 찾았다고 보기 때문에 그래도 최근 10년은 일본에게 아주 잃어버린 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Q.한국이 일본의 실패에서 얻을 시사점이 있다면?
A: 분명 일본 경제는 6,70대 노인마냥 매우 쇠약해져 있고 국가부채도 정부 부도가 날만큼 위험수준이죠. 하지만 그래도 어쨋든 30년 동안 선진국 지위를 유지해왔고 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건 결국 기업들 덕분입니다. 일본 시총 1위 기업이 도요타, 2위가 소니인데 이들 기업이 모두 최근 사상 최대 영업실적을 냈습니다. 저성장 시대에 진화하지 못한 기업은 도태됐고 진화에 성공한 기업만 살아 남았어요. 여전히 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어서 그래도 일본이 살아남고 있는 겁니다. 일본이 망한다, 망한다 하면서도 망하지 않는 건 뒤에서 기업들이 버텨주고 있기 때문이죠.

또 2010년대 이후 정규직과 비정규직 일자리가 모두 늘었습니다. 이것 역시 생존한 일본 기업들이 일자리를 지키면서 더 많은 직원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새 인력 일부가 경력이 단절되었던 여성과 정년이 연장된 고령 근로자로 채워졌어요. 인구가 감소하고 GDP 성장이 부진해도 기업이 살아남고, 그래서 일자리를 지키면 그 경제도 살아남는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일본의 상황이 완전히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말씀 드릴수 있겠고요. 한국에게도 참고 할 만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도 인구 구조가 일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추세가 계속된다면 저성장 터널에 진입할 수 밖에 없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 있게 진화를 계속 한다면 일본을 넘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다음 회에선 ‘역대급 엔저 시대 엔화 투자와 일본의 금리 인상 전망’에 대해 들어봅니다. 하단 기자페이지 ‘+구독’을 누르시면 쉽고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영상과 더 자세한 내용은 매일경제 월가월부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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