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풍향계] 尹 ‘경제사법기관’ 주문에 으쓱해진 공정위…“검찰 이중대 되나” 우려도

세종=박소정 기자 2023. 1. 2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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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경제부처가 아니다. 경제사법기관이 돼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업무보고에서 공정거래위원회에 당부한 주문을 두고 부처 안팎이 들썩이고 있다.

올해 공정위는 당초 금융위원회와 대통령에 업무보고를 할 예정이었는데, 돌연 법무부와 함께하도록 일정이 변경되기도 했다. 현 정부 실세인 한동훈 장관과 한기정 위원장이 나란히 윤 대통령에게 주요 추진 업무를 보고하는 상황에 대해 여러 관측이 나왔는데,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의구심을 해소하게 만든 셈이다. 공정위가 경제부처 특유의 좌고우면하는 모습에 갇히기보다는 준사법기관으로서 단호한 법 집행 의지를 보여달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적용의 1심 재판 역할을 수행하는 공정위는 ‘경제 검찰’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현 정부 최고 실세 부처인 법무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조직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우쭐함과 동시에, 공정위가 검찰 이중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뒤섞인 반응이 나온다. 개별 사건 처리에 있어 검찰의 영향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2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틀 전 공정위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에게 “공정위는 경제부처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예측 가능성이야말로 시장을 효율화하고 기업들이 더 열심히 뛸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며 “조사할 때도 사건 처리 적용 규범과 기간, 결과의 수준 모두 예측 가능하도록 공정위는 경제 사법기관이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왼쪽)이 지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가운데), 이완규 법제처장과 2023년 업무계획보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더욱이 올해 업무보고 방식을 통해 감지된 기류 변화와 겹쳐서 발언의 의미가 더해지고 있다. 공정위의 ‘2023년 대통령 업무보고’ 일정은 당초 금융위와 묶여 이달 마지막 주 진행될 것이라는 게 1월 초까지의 구상이었는데, 갑자기 지난 26일로 다소 앞당겨지면서 함께 보고하는 부처도 법무부·법제처로 바뀌었다. 과거 법무부와 함께 업무보고를 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처럼 경제부처와 함께 업무보고를 했던 요즈음 관행을 생각하면 이례적이었다는 반응이 흘러나왔다.

당장은 윤석열 정부 들어 공정위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 아니냐며 반색하는 분위기다. 검·경이나 감사원과 같이 칼을 휘두르는 ‘사정(査定) 기관’으로서 공정위가 부각되는 한편, ‘실세 장관’으로 언급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한기정 위원장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한 공정위 직원은 “‘공정위가 출세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동료들 사이에서 오간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의 ‘경제사법기관’ 발언을 두고, 그간 공정위의 사건 처리 절차 등을 비춰봤을 때 ‘준사법기관으로서의 수준을 맞춰가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는 반응이 일반적이나, 일부 내부 직원을 비롯한 공정위 출신 선배(OB)들은 간단하게만 받아들이진 않는 분위기다.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이 공정위의 준사법기관으로의 기능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는 신호라는 점에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정부 업무보고(법무부·공정거래위원회·법제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시장경제를 위한 파수꾼’이라는 지향점을 갖고 있는 공정위는 과거부터 ‘경제 검찰’이란 표현으로 불리는 것마저 매우 꺼려 왔다. ‘시장 경제 원리’에 부합한 정책을 수립하고, 법 적용 기준을 만드는 경제부처의 역할을 강조해온 것이다.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돼 임기 3년을 채우고 퇴임한 조성욱 전임 공정거래위원장도 평소 강연 등에서 “공정위는 경제 검찰이 아니라, 심판자인 동시에 정원사”라는 말을 했다. 소비자를 보호하고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혁신을 도우면서도 경쟁 제한적 행위에 대해선 심판자 역할을 하는 ‘관리자’에 가깝다는 취지였다.

공정위의 ‘지원·중재’보다는 ‘사정’의 기능이 부각되면서, 일각에선 사실상 ‘검찰의 이중대’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불거지는 모습이다. 한 전직 관료는 “우리나라 공정위는 미국의 연방거래위원회(FTC)와 법무부(DOJ) 반독점국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면서 “공정거래법을 만들고 법 적용 범위를 넓히면서 기업 전반에 공정거래 가치를 확산시키는 것은 FTC의 기능에서 나타나는 것인데, 이런 기능이 약화할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다른 전직 관료도 “공정위 공무원들은 시장경제 원리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경제부처’라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집단”이라며 “시장경제니, 뭐니 따지지 말고 검찰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칼을 휘둘러라는 의미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공정위 직원은 “공정위의 역할이 많아질 거라는 기대감이 있긴 하지만, 한편으론 공정거래법 사건의 주도권이 다시 검찰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실제로 공정위가 고발을 결정한 사건은 서울 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로 넘어가 형사 처벌 여부가 결정된다. 최근 총수 기소가 이뤄진 SPC 일감몰아주기 사건의 경우 검찰 수사 과정에서 처벌 범위가 확대된 사례에 해당한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공정위 조사가 미진했다는 판단되는 경우는 추가 고발을 요청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공정위가 사건을 갖고 오고, 검찰이 최종 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를 빗대 ‘찍새와 딱새’ 관계로 표현하기도 한다. 윤 대통령 지시로 개별 사건에 대한 검찰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공정위가 서울중앙지검 세종사무소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공정위는 현재 ‘조사’와 ‘정책’을 전격적으로 분리하는 조직 개편을 추진 중인데, 이런 분위기라면 조사 분야를 대폭 강화한 개편안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 과정에서 법무부와의 협의가 일부 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공정위의 조직 개편 작업은 현재 마무리 단계로, 조만간 개편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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