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 나노 세계에 0차원이 있다

김태희 기자 2023. 1.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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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도구가 발전해 아주 작은 입자의 모양을 볼 수 있다. 과학동아 DB

김일두 KAIST신소재공학과 교수가 메모지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며 물었다. “이건 (나노) 입자인가요?” 기자가 대답했다. “네 입자처럼 보입니다.” 그러자 김 교수는 포켓몬스터의 메타몽처럼 생긴 도형을 그리며 다시 물었다. “그럼 이건 입자인가요?” 살면서 이런 점은 본 적이 없어 말했다. “이건 애매합니다.” 대답을 들은 김 교수가 빙그레 웃으며 얘기했다. “이것도 입자라 얘기합니다.”

-임인년 매듭 달 이틀 사정시 KAIST에서

탄소, 비금속인 화학 원소로 기호는 C. 원자번호는 6. 탄소 원자로만 이뤄진 물질은 대표적으로 다섯 가지가 알려져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흑연, 그래핀, 탄소나노튜브, 그리고 풀러렌입니다.

같은 원자지만 구조가 다른 이들을 ‘동소체’라 부릅니다.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가 3차원 정사면체 구조를 이룹니다. 반면 흑연은 탄소 원자가 얇은 판 모양으로 여러 층 결합해 있습니다. 결정 구조를 들여다보면 마치 그물처럼 생겼죠. ‘꿈의 소재’로 알려진 그래핀은 원자 한 층의 두께를 갖는 얇은 판 모양 구조입니다. 그래핀 두께는 0.2㎚~0.35㎚(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수준입니다.

신문지 한 장의 두께는 약 10만㎚ 정도 됩니다. 하지만 신문지를 두고 나노 소재 혹은 나노 물질이라 하지는 않습니다. 나노 소재가 되려면 길이 혹은 크기가 100㎚보다 작거나 얇아야 합니다. 100㎚보다 큰 물질은 나노가 아닌 ‘벌크’라고 부르죠. 바로 여기 아주 작은 나노 세계에서 두 번째 0차원의 문이 열립니다.

판상 형태로 두께가 얇은 그래핀(하늘색)은 2차원이다. 이 그래핀을 빨대처럼 말면 1차원 탄소나노튜브(보라색)가 된다. 축구공처럼 만든 풀러렌(초록색)은 0차원이다. 과학동아 DB

● 흐린 눈으로 보면 점처럼 보입니다

공학에서 차원은 하나의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길이, 높이, 너비, 지름과 같은 크기 특성, 즉 생김새를 표현하는 방법이지요. 수학(정확하게는 기하학)에서 차원은 공간 내에 있는점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 필요한 축의 개수입니다. 공학은 이를 차용해 물질의 모양의 기하학적 특성을 점과 선, 면, 입체로 구분해 차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노 세계에서 처음 차원을 나눈 것은 1994년 리처드 시겔 미국 렌슬래르폴리테크닉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정의는 지금과 다릅니다. 시겔 교수는 양자구속효과를 보이는 입자를 0차원으로 정의했습니다. 이 현상이 발생할 만큼 ‘아주 작은 입자’를 지칭한 단어였죠. 이후 나노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도구가 발전해 ‘아주 작은 입자’의 모양을 볼 수 있습니다. 차원은 ‘아주 작은 입자’가 가진 형태적 특성을 설명하는 개념이 됐습니다.

0차원 나노 물질은 나노 입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구조가 둥근 공처럼 생기고 부피를 갖는 나노물질은 0차원으로 분류됩니다. 풀러렌은 속이 비어있는 구조지만, 속이 꽉 찬 형태의 구형 0차원 입자도 있습니다. 풀러렌 안에 풀러렌이 있고 또 그 안에 풀러렌이 있는 다층 풀러렌 구조도 있습니다. 양파 껍질처럼 말입니다.

전자현미경으로 자세히 보면 나노 입자가 완벽한 구형은 아닐 수 있습니다. 김일두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나노 물질의 가로세로 비율이 비슷하면 0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가로 혹은 세로를 조금씩 더 늘려보면 0차원 물질이 언제 1차원이 될까요? 김 교수는 “종횡비가 1 : 2 수준까지 0차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이것이 무 자르는 칼처럼 명확한 기준이 있지는 않다”고 답했습니다.

나노 세계에서 차원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2차원 그래핀을 말아 1차원 탄소나노튜브를 만들고, 그래핀을 오려 0차원 풀러렌을 만들 수 있죠.

물질을 나노 크기로 만들면 새로운 물리화학적 특성이 나타납니다. 나노 물질로 만든다는 건 표면적을 늘리는 일입니다. 나노 물질 표면적은 벌크에 비해 1000만 배 이상 늘어납니다. 이때 기존의 원자 결합이 끊어지며 구조나 활성이 달라져 새로운 특성이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0차원 나노 입자의 모양이다. 위로부터 금속산화물, 탄소, 풀러렌.과학동아 DB

● 눈 앞에 펼쳐질 0차원 입자

나노 입자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탄소가 덩어리진 0차원 입자 ‘카본블랙’은 자동차 타이어 등 고무 제품의 필수 보강제로 사용되고, 페인트나 잉크에 착색제로도 사용됩니다. 다층 풀러렌 구조인 ‘탄소 나노양파’는 우리 몸 속 세포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직접 볼 수 있는 바이오 이미징 기술에 사용됩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2000년대 초부터 연구를 시작해 2022년 1월 미국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 2022’에서 최초로 상용화 기술을 선보인 차세대 TV, 퀀텀닷 디스플레이는 0차원 나노 물질인 ‘퀀텀닷(양자점)’으로 빛을 냅니다. 퀀텀닷은 무려 스스로 빛을 내는 0차원 반도체 소재입니다. 같은 물질로 만들어진 퀀텀닷이라도 크기에 따라 발광하는 색이 달라집니다. 디스플레이에서 원하는 색의 빛을 만들려면 특정한 파장의 빛만 뿜어내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기존 물질로는 특정한 파장만 만들기 어렵습니다. 빨간 빛을 만들었는데 빨강과 함께 진한 빨강, 주황 등이 섞여서 나오는 상황이죠.

반면 퀀텀닷에서 방출되는 전자기파 파장은 매우 좁습니다. 근처 파장 빛이 섞이지 않고 순수한 빨간 빛만 만들 수 있는 거죠. 이는 퀀텀닷을 구성하는 원자 수가 수십~수백 개로 매우 적어 서로 방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퀀텀닷은 현재로선 진정한 삼원색을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소재로 꼽힙니다.

이제 0차원 세계로의 여정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앞으로 TV를 보면 0차원 입자를 생각하게 되겠죠. 자 이제 다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갑시다. 우리가 사는 세계로요.

0차원 나노 물질 퀀텀닷은 원하는 빛의 파장을 만들어 진정한 삼원색을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소재로 꼽힌다. 과학동아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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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1월,  나노 세계에 0차원이 있다

[김태희 기자 tae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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