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우리금융 차기 회장 논란, 핵심은 관치가 아니다

하진수 금융부장 2023. 1. 28.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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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국회 정무위원회를 지켜보던 한진해운 관계자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정부 관계자들은 한진해운 측 대주주들이 회사를 살리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고 질책했다.

이동걸 현 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국회에서 "그 부분(한진해운 파산)은 굉장히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하며 지난 정부의 판단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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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수

2016년 10월. 국회 정무위원회를 지켜보던 한진해운 관계자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정부 관계자들은 한진해운 측 대주주들이 회사를 살리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고 질책했다. 당시 한진해운은 유동성 위기로 법정관리 상태였다.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사재를 출연하고 계열사들이 1조원 이상을 지원했지만, 이들의 노력은 정부에 닿지 않았다.

이듬해 2월 한진해운은 결국 파산했다. 파산 전 한진해운은 세계 7위, 국내 1위 규모의 선사였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한진해운을 현대상선(현 HMM)과 합병시켜 살리는 게 좋다는 의견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이러한 계획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당시 한진해운을 둘러싼 칼춤의 중심에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있었다. 임 전 위원장은 “정상기업(현대상선)과 부실기업(한진해운)을 섞는 것은 어렵다”며 한진해운이 차고 있던 산소호흡기를 걷어냈다.

한진해운 청산은 금융당국의 대표적인 구조조정 실패 사례로 기록됐다. 2017년 11%에 육박했던 한국 해운의 아시아·미주 점유율은 2022년 5%를 간신히 턱걸이하는 수준으로 곤두박질 쳤다. 이동걸 현 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국회에서 “그 부분(한진해운 파산)은 굉장히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하며 지난 정부의 판단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임 전 위원장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수도 있다. 한진해운 파산이 임 전 위원장 혼자 판단해 결정한 문제도 아닐 것이고, 결과만 가지고 비판하는 것의 정당성을 따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임 전 위원장은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다른 기업의 구조조정에는 정반대의 기준을 들이댔다.

한진해운이 문을 닫은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임 전 위원장은 언론사 부장들과 만나 대우조선해양 추가 지원안에 대해 설명했다. 이미 4조원가량을 지원했던 대우조선해양에 돈을 더 넣어 총 7조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앞서 한진해운은 갚아야 할 7000억원 중에서 3000억원이 모자라 망했다. 부실기업과 정상기업을 냉정하게 나누던 임 전 위원장은, 대우조선해양 앞에서는 한없이 너그럽게 변했다.

임 전 위원장이 나서서 살려야 한다고 항변했던 대우조선해양 직원 수는 협력업체를 합쳐 5만여명이었다. 한진해운은 2000명에 불과했다. 한진해운의 운명이 대우조선해양과 달랐던 이유를 어떠한 말로 포장하던, 여론과 후폭풍을 고려한 대마불사(大馬不死)식 처분이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 이유다.

임 전 위원장은 현재 우리금융그룹의 차기 회장직을 노리고 있다. 새로운 금융권 수장을 뽑을 때는 늘 관치 논란이 있었다. 금융사 직원 중에서는 일 잘하고 정부와 소통이 잘 되는 외부 인사가 이런저런 파벌을 형성하는 내부 인사보다 낫다는 의견이 다수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후보를 둘러싼 논란이 없을 때 꺼내볼 수 있는 말이다.

십여 년 전만 해도 관가에서는 ‘어디 감히 술 따르던 사람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관치와 반대로 금융계 출신 인사가 관가로 진출하는 것을 두고 했던 말인데, 그만큼 벼슬아치들은 금융권을 한 단계 아래로 낮춰 봤다. ‘여기가(공직사회가) 어디라고, 네가(비 관료 출신 금융계 인사가) 우리 틈에 끼어들려 하느냐’는 일종의 무시이자 경고였다.

우리금융그룹은 총자산 규모가 500조, 계열사 32개 등 관계회사만 220여개에 이르는 기업 집단이다. 왕년의 경력을 바탕으로 덜컥 회장 자리를 차지하기엔 챙겨야 할 식구도, 고객도, 일들도 넘쳐난다. 실(失)을 가진 사람이 욕심낼 자리는 더더욱 아니다. 관치 논란이 되려 우리금융그룹 회장 선거의 본질을 해치고 있다. 본질은 관치가 아닌 후보의 자질이다.

[하진수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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