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계청장 없는 틈 타 청와대가 ‘비공개 통계 열람’ 조항 급조했다니

조선일보 2023. 1. 28.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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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조작 의혹을 받고있는 강신욱 前통계청장 - 현 정부 여당으로부터 통계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강신욱 전 통계청장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12월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브리핑하는 모습. 강 전 청장은 통계청장에 임명된 후“정책에 좋은 통계를 만드는 것으로 보답할 것”이라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통계 조작 의혹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당시 정권이 외부 유출이 금지된 비공개 통계 자료를 다른 기관이 손쉽게 빼갈 수 있도록 해주는 예외 조항을 신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 3월 통계청장이 해외 출장 간 사이 통계청 차장의 대리 결재로 이 조항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통계청장이 무리한 지시에 따르지 않는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 통계청장은 임기 중 해임됐다.

이렇게 급조한 예외 조항으로 맨 먼저 통계청에 비공개 자료를 요청한 사람은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결국 청와대가 예외 조항 급조 주역이었던 것이다. 문 정부가 밀어붙인 ‘소득 주도 성장’ 정책으로 빈부 격차가 최악으로 벌어졌다는 통계 발표가 나자 바로 다음 날 홍 수석이 비공개 자료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 비공개 자료를 넘겨받은 국책 연구소 연구원이 통계를 입맛에 맞게 왜곡한 보고서를 만들어 청와대에 올렸고, 그는 석 달 뒤 통계청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문 대통령은 이런 보고서를 토대로 “소득 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황당한 주장을 했다.

국가 통계와 관련한 상식 밖 일은 문 정부 내내 끊이지 않았다. 통계청이 공표하기 전의 통계 자료도 이전 정부에 비해 최고 4배 이상 미리 넘겨받았다. 정권 입맛대로 통계가 왜곡되고 좋은 것만 선별 공개될 위험성을 막기 위해 공표 전 통계도 정당한 사유 없이는 정부 기관 등에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법에 규정돼 있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법 취지를 무시한 채 마구잡이로 통계를 빼 갔다. 심지어 상·하위층 소득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통계가 나오자 소득 통계 조사 방식을 개편해 이전 통계와는 비교가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나쁜 통계가 나오면 정책의 문제점을 따져보고 그 정책을 고치는 것이 정상적 국정이다. 문 정부는 대신 통계를 빼내고, 왜곡하고, 통계청장을 바꿨다. 국정 운영의 원칙을 허문 것이 비단 통계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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