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記憶의 방식’이 달라져야 나라가 成熟한다
격차 좁혀진 한국·일본, 누가 먼저 성숙한 역사 시대 여나
‘너 자신을 알라’는 말만큼 쉬워도 실천하기 힘든 일도 없다. ‘내’가 먼저 있고 ‘나’와 다른 ‘남’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순서(順序)가 거꾸로다. 누구나 ‘남’과 부딪히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민족의식과 국가 의식의 형성 과정에서 중요 계기가 되는 것이 다른 민족, 다른 국가와 벌인 전쟁이다. 일본 역사는 일본을 묶어주는 ‘일본 의식’이 급속히 강화된 시기로 고려-몽고 연합군이 일본을 침공한 1200년대 말(末)을 꼽는다. 사실은 그보다 훨씬 전 한반도 정세 변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규슈(九州) 지역엔 들판에 성(城)을 쌓는 일본 성과 달리 산에 쌓은 산성(山城) 유적이 많다. 산성은 한반도 형식이다. 삼국 통일 이후 일본에 감돌던 대(對)신라 위기의식의 결과라고 한다. 일본의 가장 중요한 사서(史書)인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삼국 통일(676년) 몇 년 후인 680년 무렵 편찬을 시작했다. ‘일본서기’에는 백제 역사서인 ‘백제기’ ‘백제본기’ ‘백제신찬’에서 인용한 부분이 숱하게 등장한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대사 연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라는 디딤돌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삼국사기’에는 고려가 거란·여진 등의 거듭된 침공으로 시달림을 당한 후, ‘삼국유사’에는 6차례 29년에 걸친 몽고 침략으로 국토의 상당 부분이 잿더미가 된 이후 형성된 ‘국가 의식’과 ‘민족의식’이 함께 반영돼 있다.
유럽 역사에는 다른 민족과 접촉·교류·전쟁을 통해 ‘우리 민족’ ‘우리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런 흔적을 보존하고 있는 ‘살아 있는 화석(化石)’이 언어다. 오늘날 영어에는 영국을 침략했던 로마·게르만·바이킹이 남긴 단어와 영국이 침략·점령했던 민족과 국가에서 묻혀온 단어가 숱하게 많다. 언어 흔적은 나무의 나이테와 같아서 아무리 빨고 헹궈도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Society)·경제(Economy)·자유(Liberty)·개인(individual)·종교(religion)·존재(being)·권리(right)·그(he)·그녀(she)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다. 모두가 19세기 말 20세기 초 일본인들이 낯선 영어·네덜란드어·독일어와 씨름하며 한자어를 사용해 번역한 것이다. 법학·정치학·경제학·수학·물리학·화학·생물학·지질학 등 근대 과학 용어 거의 전부에 일본 손때가 묻어있다.
죽창가(竹槍歌)를 불렀던 조국씨도 이런 번역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선 형사법(刑事法)이란 자기 전공 분야 논문을 한 줄도 쓰지 못할 것이다. 숨길 일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일본 농기구(農器具) 이름에는 한반도 언어의 파편들이 남아있다고 한다. 1500여 년 전 선진(先進) 벼농사 방법과 농기구가 한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흘러갔다는 뜻이다.
성숙(成熟)이란 ‘나’와 ‘남’ ‘우리’와 ‘그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발전의 한 단계다. ‘남’과 ‘그들’은 ‘나’와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일본관광국은 2022년 12월의 137만명 외국 관광객 가운데 한국 관광객이 46만6000명이라고 발표했다. 2위 국가의 2.7배를 넘는다. 한국이 정말 잘사는 나라가 됐다는 느낌과 함께 살짝 걱정이 된다. 일본인이 해외로 나간 전체 숫자는 43만명이었다. 2019년 한국인과 일본인이 해외로 나간 숫자는 2871만명과 2008만명이었다. 인구 5143만명 나라 해외 관광 숫자가 인구 1억2558만명인 나라보다 많다면 ‘상당히 과(過)하다’.
상대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아는 것은 나에게 득(得)이 된다. 상대를 부정확하게 아는 나라는 지형(地形)을 모르고 뛰어내리는 낙하산병(落下傘兵)과 같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국가의 성숙과 직결돼 있다. ‘기억의 감옥’에 갇히면 ‘기억의 포로(捕虜)’가 된다.
영국 경제가 어렵던 2000년대 초반 어느 영국인은 ‘매일 밤 독일군 상대로 전투와 상륙 작전을 벌이느라 낮엔 일할 기운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영국에선 TV 방송들이 2차대전을 다룬 프로를 13개나 내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영국은 EU를 탈퇴했고, 그 이후 3년 만에 영국 국적을 버리고 독일 국적을 취득한 사람이 10배 증가했다.
국력 격차가 좁혀지는 상황에서 협력하며 경쟁하는 한국과 일본은 징용공 문제로 다시 시험대에 섰다. 누가 성숙한 역사의식에 먼저 도달하느냐의 경쟁이다. 한국이 이번만은 반드시 이겨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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