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세계서 ‘공생의 메시지’를 읽는다

이강은 2023. 1. 28.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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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야생동물 관찰해 온 학자
코끼리·침팬지·늑대 등이 나누는
인사·사랑·애도 10가지 의례 포착
인사 피로·단절 세계 사는 현대인에
잃어버린 삶의 가치·유대감 강조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케이틀린 오코넬/이선주 옮김/현대지성/1만8000원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을 독방에 가두는 것은 커다란 박탈감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해 사회적 동물이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지 못하면 시들어 죽는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공동체 안에서 관계 맺기에 서툴거나 실패하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 점에서 갈수록 친밀감을 형성할 만한 대면 접촉 기회가 줄고 있는 것은 간과해선 안 될 문제다. 이로 인해 고립된 개인이 급증한다면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오늘날은 이념·계층·세대·성별·종교·인종 등 갖가지 이유로 나라 안의 집단 간에도, 나라끼리도 분열되고 대립하는 지경이다. 인정·배려·공감·유대와는 멀어지거나 담을 쌓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이를 염려한 저자가 30년 넘게 코끼리를 중심으로 야생동물을 연구하면서 체득한 통찰을 담은 게 이 책이다. 책은 저자가 직접 대륙을 떠돌며 야생동물을 관찰·연구해 성찰한 결과물을 집대성한 것이다. 코끼리와 침팬지, 늑대, 얼룩말을 비롯한 여러 야생동물의 인사·구애·선물·애도·놀이·회복·여행 등 10가지 의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례로 보여주며 현대 인류에게 경각심을 준다. 인류가 탄생 이래 행해오다가 외면해 가는 의례의 중요성을 통해 현대 인류가 놓치고 있거나 잃어버린 삶의 가치를 부각시킨다.
“우리는 친구” 남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야생 코끼리 두 마리가 코와 입을 맞대며 인사하고 있다. 코끼리들은 인사를 건네며 돈독한 유대 관계를 확인한다. 현대지성 제공, Caitlin O’Connell & Timothy Rodwell
예컨대, 사회적 동물이 일정한 형식의 인사 의례를 지키는 것은 이유가 있다. 책에 따르면, 인사는 상대를 ‘인정하고, 호의적으로 반기며, 환영한다’는 뜻을 드러내면서 소통을 시작하는 가장 안전한 출발점이다. 그런데 코끼리 등 야생동물이 나름의 방식으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친밀감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과 달리, 인간은 점점 인사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동료나 이웃과 인사하는 것조차 어색해하고, 인사하지 않으려 일부러 서로를 피해 다닐 만큼 ‘인사 피로 사회’가 돼가는 형국이다.

서로 코와 입을 맞대는 코끼리의 인사는 단순한 의사소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코끼리 코끝이 다른 코끼리의 입에 닿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코끼리의 코끝은 매우 민감하고 물리면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만큼 코끼리들의 인사는 상대에게 큰 믿음과 존중의 뜻을 내비치는 의례다.

코끼리들은 가족이나 친척, 친구 등 함께 지내던 코끼리가 죽으면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오랜 시간 곁을 지키고, 떠났다가도 사체가 남아 있는 동안 자주 찾아온다. 코끼리뿐 아니라 침팬지, 얼룩말 등 많은 사회적 동물이 질병이나 기생충 감염, 전염병 예방 등 현실적인 이유로 동료의 사체를 치우거나 매장한다. 또 동물들이 각자의 매장·장례 의례를 통해 애도를 표시하는 것처럼 인간 역시 애도 의례는 매우 중요하다.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큰 슬픔과 아픔을 겪는다. 그렇다고 애도의 과정을 회피한 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생활한다면 마음을 치유할 기회를 잃고 만다. 따라서 고인을 추억하며 슬픔을 다스릴 수도 있는 애도 의례는 고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데 지지대 역할을 한다.
케이틀린 오코넬/이선주 옮김/현대지성/1만8000원
저자는 “시대에 뒤처진 관습으로 보일지 몰라도 의례는 사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다”며 “의례는 더 원활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서로를 잘 보살핌으로써 공동체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열쇠”라고 힘줘 말한다.

그러면서 자연과 인간이 ‘공멸’하지 않고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지 나름의 해법도 제시한다. “인간이 잃어버린 지 오래된 의례 기술을 되찾으면 타인과 자신, 자연을 잇는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맺는다.

저자 부부가 함께 촬영해 실은 사진들은 생동감이 넘쳐 책 보는 맛을 더한다. 코뿔소가 뿔을 맞대며 인사하는 모습, 코끼리들이 구덩이에 빠진 새끼를 구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모습, 돛새치 무리가 진을 치고 사냥하는 모습, 기린들이 서로의 목을 감싸며 애정을 나누는 모습 등 저자 부부는 산과 바다, 사막을 가리지 않고 자연을 가르며 야생동물의 반짝이는 장면들을 순간 포착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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