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이별 속에 깊고 넓어지는 삶[책과 삶]
자미
오드리 로드 지음·송섬별 옮김
디플롯 | 484쪽 | 1만8000원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문학가인 오드리 로드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정체성을 거듭 확인했다. 1920년 미국 뉴욕 할렘가에서 태어난 로드는 흑인 학생이 세 명뿐인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곳에서 백인 친구들과 자신 사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느꼈다. ‘펨’이나 ‘부치’ 같은 일반적 역할이 정해져 있는 레즈비언 친구들 사이에서도 괴리감을 느꼈다. “말은 물론이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무거운 고통 때문에 말하지 못한 수많은 것들마저도 그 어떤 설명도 없이 다 이해하는 것 같았”던 연인 뮤리얼과의 관계에서도 그랬다. 뮤리얼이 흑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극복할 수 없는 차이를 느꼈다. 그는 같은 여성인 것, 레즈비언인 것, 흑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고 말한다.
‘영원한 아웃사이더’인 로드가 자신을 이뤄온,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들에 관해 쓴 에세이가 출간됐다. 책 제목이기도 한 ‘자미’는 로드 가족의 출신지이기도 한 서인도제도의 속어로, 레즈비언을 지칭하는 단어다. 로드는 자미들과의 관계가 자신을 만들어왔다고 쓴다. 강인한 어머니, 학창시절 깊은 우정을 나눈 제니, 성정체성을 깨닫게 해준 유도라, 연인이었던 뮤리얼 등과 만나고 이별하면서 로드는 성장한다.
로드는 어디에도 영원히 머물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사랑받고 승인받으려는 욕망 때문에 맞지 않는 정체성에 자신을 구겨넣지 않는다. 거짓 자아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하며 머무를 ‘집’을 찾아간다. 사랑하고 이별하며 점점 깊고 넓어지는 우아한 삶이 책 속에 있다. 록산 게이, 앨리슨 벡델 등 페미니스트 저술가들은 물론 권김현영, 은유, 이라영, 하미나 등 국내 작가들이 극찬했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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