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판타지로 변주한 ‘일제강점기’[책과 삶]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이윤하 지음·조호근 옮김
허블 | 384쪽 | 1만6000원
가열차게 독립 운동을 전개하던 나라는 결국 첨단 무기와 군대를 보유한 이웃 나라에 점령 당했다. 이웃 나라는 효율적인 행정 체제와 발전한 과학 문명을 들여왔다. 물론 점령당한 나라의 사람들은 여러 측면에서 차별받고 창씨 개명 같은 일까지 감당해야 했다. 피점령국에는 울분을 간직한 채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과 점령국에 적당히 맞춰주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모두 있다.
일본의 식민지 시기를 겪은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서사다. 다만 피점령국의 이름이 화국, 점령국의 이름이 라잔 제국이라는 점은 다르다. 아울러 거리에서는 일본 순사 대신 피도 눈물도 없는 ‘자동인형’이 치안을 유지한다. 꼬리가 아홉 개 달렸지만 인간의 간을 빼먹지는 않는 ‘현대적인 구미호 종족’이 존재한다는 점도 다르다. 마법의 문양을 그려넣으면 생명을 얻는 기계 용도 등장한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는 일제의 조선 강점 같은 역사에서 모티프를 얻어 여기에 SF와 판타지 요소를 섞은 장편 소설이다.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진 주인공 제비는 화국 출신이면서도 라잔식 이름으로 개명해 예술성에 취직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이후 제비는 적국인 라잔의 검투사 베이와 사랑에 빠진다. 둘 다 여성이지만 이 소설의 세계관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박해받는 일은 없다. 동성애든 폴리아모리(다자연대)든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로 그려진다.
작가 이윤하는 9살 때까지 한국에 살다 미국으로 이주한 SF작가다. 데뷔작 <나인폭스 갬빗>에서는 ‘구미호 장군’과 김치를 연상시키는 ‘채소 절임’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윤하는 “서양에 알려지지 않은 이 시기(일제강점기)에 대해 더욱더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전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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