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이후…에너지 대란에 불편한 겨울나기 적응 쉽지 않네[다른 삶]

기자 입력 2023. 1. 27. 16: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혜광·이은혜의 ‘베를린 육아일기’

유럽의 이번 겨울은 유난히 길고도 힘겹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나타난 기록적인 인플레이션과 지난해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유럽은 전례 없이 어두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전염병, 테러, 전쟁 등 어릴 적 역사책에서나 본 듯한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뉴스로 매일 긴박하게 전해 들었던 소식들은 텔레비전을 넘어 우리의 현실, 모두의 일상 바로 앞까지 왔다. 그저 막연하기만 했던 ‘에너지’라는 개념이 이제는 눈치도 보지 않고 매달 꾸준히 전기요금, 난방비라는 이름으로 월급을 열심히 고갈시킨다.

2022년 한 해 동안 독일에서는 기름, 전기, 가스 등 모든 종류의 에너지 비용이 크게 올랐다. 팬데믹 사태가 시작되고 나서도 큰 변동이 없었던 자동차용 휘발유는 평소처럼 ℓ당 1.4~1.5유로(약 1800~2000원)를 유지했다. 그 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2022년 3월 2.2유로(약 3000원)를 상회했다.

전기요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기 공급 업체가 여러 군데인 독일에서는 그에 따른 가격도 다양하다. 어떤 회사는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기를 주로 공급하고, 어떤 회사는 풍력과 수력, 원자력 등 선택권이 다양한 만큼 이번 에너지대란을 맞는 소비자들의 체감온도도 다르다.

전기와 가스, 생산·유통 외면한채
그동안 통장서 요금 인출에만 관심
에너지 비용 높아지자 새삼 주목
‘욕조에 넉넉히 물 받아 목욕’ 옛말
우리 가족도 ‘한국 난방텐트’ 공수
껑충 뛴 요금 체감 속 “더 아껴야”
가혹한 일상이 될까 염려 되지만
환경문제에 예민한 독일 사람들
‘지구 위해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그럼에도 2022년 12월 기준, 독일의 kWh(킬로와트시)당 전기요금은 대략 25.7센트로 전년도 대비 16% 상승했다고 한다.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노르트스트림’이 원인 불명의 이유로 폭발한 2022년 8월에는 kWh당 요금이 47센트까지 치솟았다.

가스도 마찬가지다. 2022년 가정으로 공급되는 가스요금은 대략 16~17% 올랐다.

뉴스에서 쏟아내는 수치들보다 먼저 피부에 와닿는 것은 역시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다. 누구네는 20%가 인상된 고지를 받았다, 누구네는 난방비 때문에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등 에너지대란은 소리 없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굳이 뉴스에서 2022년 독일의 물가 상승률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라는 소식을 듣지 않아도 집 앞 마트에서 이미 빠르게 오르는 물가의 변화를 크게 느끼고 있었다. 그 와중에 생활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에너지 비용까지 대폭 오른다니, 대체 어떻게 겨울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졌다.

독일 정부는 그에 따라 다양한 지원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책 중 하나는 대중교통 비용의 ‘파격 할인’이다. 우리 집은 연간 정액권을 이용하는데, 1년 동안 계약을 지속한다는 조건으로 월간 정액권보다 더 할인된 가격인 월 60~70유로를 다달이 지불하는 형식이다. 작년 여름 3개월 동안 월 60~70유로대의 대중교통 정액권을 9유로로 파격 할인했다. 대략 8만~9만원 하던 비용이 1만원 언저리가 된 것이다. 심지어 이 대중교통 정액권으로 독일 전역을 다닐 수 있어서 잘만 연결하면 이웃 나라들까지 ‘9유로 티켓’으로 여행할 수 있었다. 팬데믹에 답답했던 사람들의 일상을 아주 풍요롭게 바꾸어 놓은 이 대책은 그 후에도 선거에서 회자될 만큼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은 그 당시 9유로 티켓으로 어디까지 가봤는지 소셜미디어에 인증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약속한 3개월이 끝날 때쯤 다시 원래의 가격인 60~70유로대로 티켓이 정상화되는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지방정부의 권한으로 할인이 이후 얼마 동안 계속되는 지역도 있었다고 한다. 베를린의 경우, 9유로 파격 할인 후 49유로로 올랐다가 지금은 3개월 한정 29유로로 할인되고 있다. 물론 3개월이 지나면 또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한 번 할인 혜택을 받아보니 정상 금액을 낸다고 생각하면 괜히 아깝게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물값과 전기, 가스비 등 기본 생활비가 비교적 저렴했던 독일에서 그 가격이 몇 배로 오른다는 것은 가정경제에 전반적으로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너나없이 모두가 이번 겨울을 걱정하며 최대한 난방을 안 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대부분의 기존 건물은 바닥 난방이 아니라(독일에서도 요즘 신축 건물들은 바닥 난방이 대세다) 창문 근처에 장착한 하이충(Heizung·한국식으로는 라디에이터)을 통해 공기를 데우는 방식으로 난방을 한다. 그러니 어떻게 난방을 하더라도 한국처럼 뜨끈하다는 느낌이 없는 곳에서 난방을 줄인다는 것은, 실내에서 옷을 더 입는 것은 물론 따뜻한 물주머니까지 끌어안고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대체 어디서 얼마나 더 아껴야 하는 걸까, 감이 오질 않는다.

한국에서 ‘난방텐트’를 공수해 왔다는 한국인 가정을 보고 우리 가족도 이번 한국행에서 하나 사 왔다. 본격적으로 추위가 몰려오기 전, 부랴부랴 텐트를 설치하고 요령을 익혔다. 난방비 상승은 난방뿐만 아니라 온수 사용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아이가 태어난 뒤, 욕조에 물을 넉넉히 받아 목욕을 시키던 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욕조에 물을 받는 횟수를 줄이게 되고,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간단한 샤워만 하는 날이 많아졌다.

벽난로가 있는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산책하는 동안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모은다고 한다. 브란덴부르크의 한적한 마을 주택에 사는 지인의 가족은 이번 겨울을 나기 위해 장작을 모으는 것은 물론 난방을 위해 집을 대대적으로 수리 중이라고 한다.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이라는 낭만적 표현보다, 전시 상황을 떠올릴 정도로 기름과 전기, 가스 등을 배제한 난방을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오히려 그는 베를린에 사는 우리 가족 걱정을 더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도 이 정도면 호들갑이 아니다. 겨울을 앞두고 연탄을 가득 채우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정말 과거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독일 정부는 2022년 12월 사용한 난방비를 지원한다고 한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놓고 아직도 갑론을박 중이지만 ‘가장 추운 한 달의 난방비를 지원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소식이다. 그리고 공공기관의 실내 난방 온도를 내린다고 한다. 온수풀이 있는 수영장은 문을 닫거나 예전보다 온도를 낮췄고, 일반수영장의 경우 네오프렌안축(Neoprenanzug·팔과 다리까지 덮는 수영복)을 입기를 권한다. 모든 공공기관의 실내 온도를 내리는 와중에 다행히 킨더가르텐(유치원)의 온도는 예전과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덕분에 아이들은 그 어느 곳보다 킨더가르텐에서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 우리 아이도 낮잠 시간에는 반소매 티와 팬티만 입고 잔다. 집에서 못해 주는 거 거기서라도 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에너지 절감을 위해 정해 놓은 적정 온도 적용 순서 중 아이들의 교육기관이 가장 나중이라는데, 아이들의 이 우선순위만은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렇게 쭉 쓰다 보니 불편하고 가혹한 일상처럼 느껴질까 도리어 염려가 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인류의 영장이자 적응의 동물 아닌가. 환경 문제에 예민한 독일 정서가 있다 보니, 지금이 오히려 지구를 위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일상 속, 간단한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에 겁내지 않는 것은 오히려 ‘지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플라스틱보다 무거운 유리병을 선택하고 환경을 위해 채식주의자를 선언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돌아보면, 에너지 문제는 하루 이틀은 물론, 몇 년 된 문제가 아니다. 다만 현실로 닥치니 뭐라도 당장 노력하지 않으면 앞으로 정말 어려워지겠구나 실감한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개발에 꾸준히 노력해 온 나라 중 하나다.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차곡차곡 실행에 옮긴다는 이들도 우리가 몇 년 동안 겪어온 ‘전쟁, 재해, 천재지변’ 등 보험 계약서에서나 본 듯한 상황들은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비단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부터 모두의 문제였다. 베를린 외곽으로 향할 때마다 고속도로에서 마주치는 풍력발전기는 그저 ‘풍경’의 일부였다. 평소에 보기 힘드니 호들갑을 떨며 사진을 찍고 구경했던 이 풍력발전기가 실은 재생에너지의 중요한 일부분이라니, 그간의 무지함이 부끄러워진다. 전기요금 역시 다달이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그 금액만 주목했을 뿐 그 전기가 어떤 경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제는 생활비를 위해서라도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우리만의 의견을 가져야 할 때가 진정으로 온 것 같다.

▶신혜광·이은혜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인 3인 가족이다. 닭띠 아빠는 건축설계사무실에 다니고, 돼지띠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돼지띠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단독주택에 사는 것, 자동차로 베를린에서 나폴리까지 여행하는 것이 꿈이다. <스페인, 버틸 수밖에 없었다>와 <어느 멋진 일주일, 안달루시아>를 쓰고 그렸다.

신혜광·이은혜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