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우주는 우리를 기쁘게 하지도, 해치지도 않는다"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1. 27. 16: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펴낸 세계적인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1941~)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초등학생 시절 있었던 일.

하루는 선생님이 사람들은 왜 병에 걸리는지를 물었다. 아이들의 대답은 놀랄 만큼 비과학적이었다.

어떤 아이는 죄를 많이 지어서라고 답했고, 신이나 조상을 화나게 해서라고 답하는 아이도 있었다.

이 일을 회상하면서 도킨스는 초자연적인 원인을 떠올리는 것부터가 비과학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주에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감정도 인격도 없다. 그러므로 우주는 누구를 해치거나 기쁘게 하려고 도모하지 않는다. 단지 어떤 '일'이 그냥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킨스는 "어떤 신화도 중력이나 내연기관, 세균과 핵융합, 전기와 마취제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고 일갈한다. 이것을 찾아내고 증명한 인간의 '현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신화'보다 더 마법이고 감동적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신을 탓하거나 조상을 탓할 시간에 과학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게 그다.

"우리는 멈추지 말고 계속 과학을 개량해 끝내 적절한 설명을 제공해야 한다. 초자연적 현상이라거나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연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것이 유일하고 정직한 답이다."

원래 초자연적인 마법은 과학적 기법이 발달하기 전 세상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황당한 이야기들이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누트 여신이 태양을 삼키면 밤이 온다고 생각했다. 바이킹들은 무지개를 신들이 땅에 내려올 때 쓰는 다리라고 믿고 있었다. 또 일본 사람들은 세상이 거대한 메기의 등에 얹혀 있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메기가 몸을 뒤틀 때마다 지진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것이 모두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는 걸 안다. 그 대신 우리는 '현실'이라는 마법을 만났다.

수많은 생명체가 엄청나게 복잡한 배경 속에서 아름답게 진화해왔고, 하늘에 있는 무수한 행성들은 모두 각자의 광채를 가진 채 지구와 거리를 두고 움직이고 있고, 어마어마한 산과 극지방, 바다에서 매일매일 벌어지는 거대한 현실의 마법을 알게 된 것이다.

도킨스는 이렇게 말한다.

"소름이 돋게 하고, 내가 정말로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만드는 현실세계가 바로 마법이라는 걸 나는 여러분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의 말은 타당하다. 조상들은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았지만 과학은 무지개 하나에서도 많은 원리를 찾아내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도킨스는 말한다.

"무지개에 대한 탐구는 별의 위치와 구성 성분을 알아내는 데까지 이르렀다.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우주의 팽창 속도를 측정할 수 있었고 우주의 시작을 알게 됐다. 무지개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무지개는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을 포함한 만물의 시작을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현실과학이 찾아낸 일이다. 마법이지 않은가?"

[허연 문화선임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