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담배가 차라리 낫다 중독의 절정 '가공식품'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1. 2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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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주범은 60여종 설탕첨가물
담배 연기, 뇌 자극하는데 10초
설탕은 0.6초면 보상회로 작동
미국인 15%가 심각한 음식중독
과거 탐닉했던 기억과 맞물리면
급기야 간판만 봐도 배고픔 느껴
【게티이미지뱅크】

명절 음식을 실컷 먹고 돌아온 차에 죄책감을 안겨주는 책이 나왔다. 뉴욕타임스 등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퓰리처상을 수상한 탐사보도 기자 마이클 모스의 신작이다. 가공식품 업계를 고발한 '배신의 식탁'(2013)의 후속편이라 할 이 책은 식품 업계뿐만 아니라 수요자인 우리들의 식탐을 정조준한다.

음식 중독 마이클 모스 지음, 연아람 옮김 1만8000원, 민음사 펴냄

햄버거와 사랑에 빠진 소녀가 있다. 재즐린 브래들리는 집 근처 맥도널드 매장을 발견한 일곱 살 이후 햄버거에 중독됐다. 엄마의 밥은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렀지만 포장해 온 패스트푸드는 아무리 먹어도 양에 차지 않았다. 몸무게는 110㎏을 넘어섰다. 학교에선 난독증과 우울증을 앓았다. 가족과 가까운 변호사 새뮤얼 허슈는 2002년 재즐린 브래들리에게 맥도널드를 상대로 한 소송을 권유했다.

거물 변호사 벤자프와 손잡은 허슈는 3만1000개 매장에서 연 150억달러를 벌어들이는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담배 회사와의 대형 소송에서 벤자프가 승소한 결정적 계기는 흡연을 중독으로 간주한 것이었다. 이 개념 전환을 햄버거 소송에도 가져왔다. 맥도널드가 파는 제품이 단순히 소금, 설탕, 지방 함량만 높은 것이 아니라 신체적·심리적으로 중독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수년이 걸릴 소송이었고 맥도널드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지만 중요한 건 최종 판결이 아니었다. 이에 따라 비정상적 식습관을 초래하는 가공식품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 책의 1부는 음식이 술, 담배, 약물보다 훨씬 더 중독성이 강할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를 나열한다. 연구에 따르면 음식에 끌리는 건 우리의 본능이다. 선사시대 화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간은 코부터 장, 체지방에 이르기까지 몸 전체가 단순히 음식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더 많은 음식을 원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인간이 값싼 음식에 쉽게 중독되는 건, 생물학적 특성상 노력이 적게 들수록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식 중독이 오히려 해가 된 것은 불과 최근 40년의 일이다. 이유는 음식이 변해서다. 거대 가공식품 기업은 설탕, 소금, 지방을 무기로 삼아 뇌의 원시 영역을 자극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식품 기업은 과거 달지 않았던 음식에 60가지가 넘는 설탕을 첨가했고, 우리는 모든 음식이 아주 달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인간의 뇌에는 강박적 행동을 유발하는 자체적인 화학물질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도파민이다. 신경 자극으로 측정한 결과 도리토스 스낵만으로 코카인이 일으키는 정도의 갈망을 일으키진 못한다. 그러나 중독의 한 가지 특징은 물질이 뇌를 자극하는 속도다. 뇌를 자극하는 데 가공식품보다 빠른 것은 없다. 담배 연기가 뇌의 보상 회로를 작동시키는 데는 10초가 걸리지만 설탕은 0.6초면 충분하다.

동시에 중독은 기억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음식과 관련한 기억은 다른 어떤 물질보다 강력하고 오래 지속된다. 어릴 적 식습관이 평생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 그 예다. 저자는 직접 뇌 스캔 실험에도 참여했다. 피험자가 음식을 맛보는 순간 쾌락의 정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했더니 살이 찐다고 해서 아이스크림을 예전보다 더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그 대신 그것을 참지 못하고 먹는 일이 많아졌다. 왜냐하면 과거의 탐닉을 기억하며 더 갈망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맥도널드 간판만 봐도 배가 고파진다.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먹는 게 아니라 자신이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2017년 예일대의 애슐리 기어하트는 미국인 대상 조사에서 15%가 음식 중독 기준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부분은 심각한 중독이었다. 비만 같은 과식 장애까지 포함하면 음식은 우리가 자제력을 잃는 물질 중 약물과 술의 중독성을 능가한다는 뜻이다.

편의성도 무서운 함정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4분의 3은 그대로 혹은 가열만 하면 먹을 수 있다. 편리한 음식은 자제력을 잃기 쉽게 만들고 제품을 훨씬 더 많이 팔리게 만든다. 소송에 휩싸이면서도 기업들은 연구자의 실험을 통제하면서까지 저항한다. 고자극 음식 시장은 너무나 크다.

거대 식품 기업은 다이어트 사업도 장악했다. 정크 푸드는 정크 다이어트 식품으로 탈바꿈한다. 충동적 식사 장애의 치료제로 묘사한 위약을 제품에 첨가하는 꼼수를 통해서다. 심지어 미뢰의 신경 작용을 조종해 가공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려 애쓰기까지 한다. 거대 기업 네슬레의 직원회의에 들어간 저자는 가장 인기 많은 60가지 제품의 개발자들이 제품 일부가 중독의 생물학적 원리에 어긋나는 문제를 해결하려 끝장 토론을 벌이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저자는 음식과 식습관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는 전략으로 흡연, 약물, 스마트폰 중독 문제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이용하자고 권한다. 우리 안의 고대 인류 DNA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있다. 공장이 흉내 낼 수 없는 음식과 조리법에 관심을 기울이고, 음식의 풍미를 인식하고 음미하는 것, 식사에 대해 보다 건강하고 즐거운 기억을 만드는 것. 이런 실천이 식사를 위한 자유 의지 회복의 첫걸음이 될 거라 조언한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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