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국회 문턱에 선 ‘확률형 아이템’…법제화 ‘신중론’ 나오는 이유
게임정책 전문가들 “법적 규제는 과도한 제한” 지적
확률형 아이템 범위 불명확, 규제로 인한 실효성 낮아
높아진 이용자 인식에 게임사들 BM 변화, 자율에 기대봐야
지난 26일 숭실대학교에서 열린 한국게임정책학회 주최 토론회에서 나온 선지원 광운대 교수의 말이다. 게임은 창작과 표현의 산물로 국가의 간섭이 최소화해야 되고, 확률형 아이템으로 인한 구체적인 리스크 사례가 많지 않다면 우선은 자율규제로 풀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확률형 아이템’. 이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은 ‘게임법 개정안’ 5건이 오는 3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상헌(이하 민주당), 유정주, 유동수, 전용기, 하태경(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했다. 현재로선 법안소위 통과 가능성이 높다. 게임 업계에서는 이미 우려와 함께 체념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확률형 아이템 방식은 정가가 아닌, 게임사가 정한 확률에 따라 이용자들이 일종의 ‘뽑기’ 방식으로 아이템을 구매하는 형식을 뜻한다. 가치가 높은 아이템일수록 뽑는 확률은 매우 낮다.
확률형 아이템은 국내 게임 업계로서도 딜레마다. 회사에 많은 매출을 가져다 주는 탁월한 비즈니스모델(BM)로 자리잡았지만, 낮은 확률 문제로 이용자들 사이에선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이 있어서다. 국회에서 공격적으로 법 통과를 추진하고 있지만 업계가 대놓고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분명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과도하다’는 얘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만큼, 문제점은 있다. 하지만 법제화는 다른 문제다. 법으로 한번 규제화되면, 이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다시 되돌리기 쉽지 않다. 때문에 현재 확률형 아이템 운영 방식이 이용자들에게 어떤 불이익을 주는지를 명확하게 짚은 후에 법제화해야 한다.
게임정책학회 토론회에서 발제자들이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대한 ‘신중론’을 내세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선지원 광운대 교수는 “현재 발의된 개정안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모호하고 불명확한 용어를 채택하고 있고, 이에 따른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선 교수는 “어디에서 어디까지 확률형 아이템에 해당하는지, 확률정보 공개 대상인지에 대해 판단하고 규정할 필요가 있는데, 타 법안에선 비슷한 사례에서 전문평가와 심의주체 등을 법으로 규정했지만 개정안엔 이런 부분이 생략돼 있다”고 꼬집었다.
즉,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정의부터 대상, 규제에 따른 실효성이 모두 불확실한 상황에서 법제화부터 진행하는 건 성급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국내 게임사들이 진행 중인 자율규제로도 충분히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는데, 국가가 법으로 간섭하는 건 과도한 제한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국회에선 이번 게임법 개정안에 대한 의미를 ‘이용자 보호’에서 찾는다. 물론, 확률 조작 등 게임사들이 이용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를 한다면 이는 분명 제지돼야 한다. 다만 이는 게임법 개정안이 아니더라도 다른 법들을 통해 규제되고 있다. 조문석 한성대 교수는 토론회에서 “게임물 등급 분류 규정, 소비자보호법 등을 통해 이미 규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가 미성년자들을 보호할 수 있을지, 게임내 과도한 현금 결제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두 현재로선 불명확하다. 또 이미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법제화하는 것 자체가 때늦은 움직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이전에 게임 이용자들의 권익과 눈높이가 높아진만큼, 법제화 이전에 게임사들 자체적으로 BM 등을 손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최근 넥슨은 신작 ‘카트라이더:드리프트’를 공개하면서 확률형 BM을 도입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라인게임즈의 ‘대항해시대 오리진’도 확률형 아이템 대신 확정형 아이템 중심으로 BM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모두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이용자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많아지자 자체적으로 움직인 사례들이다. 법 규제가 없어도 이용자들이 게임사를 변화하게끔 한 것이다.
어느 분야이든 법제화는 신중해야 한다. 하나의 법이 만들어지면 어떤 파생 효과를 불러올지 모두 예측하긴 어렵다. 규제는 국민 후생을 증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단순히 표심을 이끌기 위한 법제화가 아닌, 이용자와 기업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자율적인 협의에 먼저 기대를 걸어봐야하지 않을까.
김정유 (thec9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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