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 뇌과학] 젊은 피 수혈받으면 회춘할 수 있을까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한국뇌연구원 신경혈관단위체 연구그룹장 2023. 1. 27.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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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피에 대한 속설은 역사가 오래됐다. 원시 인류는 피를 많이 흘리면 죽어가는 동료와 주변 동물을 보면서 피 속에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피에 대한 인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오래된 기록은 성경에서 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는 계율을 기록하거나 최후의 만찬 동안 예수가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건내며 ‘이것은 나의 피’라고 하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 민간요법 중 하나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방법으로 손가락을 끊어 피를 먹이는 것이 있었다. 

이러한 생각들을 확장하면 건강한 동물과 사람의 혈액에는 젊음과 생기를 유지하는 무엇인가 담겨져 있다고 상상하기 쉽다. 그래서 어리고 건강한 동물과 사람의 혈액을 마시거나 수혈 받으면 늙거나 병든 사람이 다시 젊음과 생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오랫동안 있었던 것 같다. 풍문에 의하면 1492년 로마 교황 인노첸시오 8세가 말년에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소년의 피를 마시라는 의사의 처방을 받았다고 하는데, 피를 생명력의 원천이라 생각한 오랜 역사를 생각해보면 기록되지 않은 사례들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혈액이 생명력을 담고 있다는 생각은 과학적으로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현대인들도 원시인들처럼 혈액이 부족하면 죽음을 맞고 수혈을 통해 보충하면 생명을 되찾는 원리를 쉽게 이해하고 있으며, 실제로 이러한 시도가 인간의 생명을 되살리는데 효과적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665년 영국 의사인 리차드 로워(Richard Lower)가 동물들을 대상으로 하나의 개체가 다른 개체로부터 피를 전달받을 수 있음을 증명하려 했고, 1818년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인 제임스 블런델(James Blundell)은 혈액이 부족해 죽어가는 산모가 건강한 가족의 혈액을 수혈받을 수 있도록 해 산모가 생명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파라바이오시스(parabiosis)를 통한 젊은 쥐와 늙은 쥐의 순환계 접합 및 그 효과를 나타낸 모식도. 네이쳐 제공

프랑스 생리학자 폴 베르트(Paul Bert)는 1860년대에 장기 이식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흰 쥐 두 마리의 피부를 서로 접합해 두 개체가 하나로 합쳐진 모습의 ‘파라바이오시스(parabiosis)’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접합된 피부를 통해 혈관이 이어짐으로써 두 쥐는 하나의 순환계를 이룰 수 있었으므로 이는 서로 다른 두 개체가 상대방에게 지속적으로 자신의 피를 수혈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 뒤 이 기법은 혈관을 직접 연결하는 식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1972년 캘리포니아주립대 프레데릭 루드윅(Frederic C. Ludwig)과 로버트 엘쇼프(Robert M. Elshoff)는 이 기법을 활용해 젊은 쥐의 피가 늙은 쥐에게 지속적으로 전달되게 하였더니 늙은 쥐의 수명이 연장되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10.1111/j.2164-0947.1972.tb02712.x). 

그 후 많은 연구자들이 ‘젊음의 피’가 노년의 동물에게 신체적 젊음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의 토마스 랜도(Thomas A Rando) 교수 연구팀은 파라바이오시스를 통해 젊은 피를 수혈받은 늙은 쥐는 여러 조직 내 세포들의 재생 및 분열이 다시 증가하는 등 젊은 생쥐의 조직과 비슷한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남을 보고했다(doi.org/10.1038/nature03260). 이는 젊은 개체의 혈액 내 무엇인가가 노화의 역전을 이룰 수 있는 생물학적 정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노화의 피’는 정 반대로 젊음을 역전시키는 무엇인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이든 동물의 피를 어린 동물에게 수혈하면 오히려 노화를 가속화 시킬 수 있을까라는 점이 궁금해진다. 2022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이리나 콘보이 교수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타볼리즘(Nature Metabolism)에 발표(doi.org/10.1038/s42255-022-00609-6)에 늙은 쥐의 피를 수혈 받으면 젊은 쥐의 세포 노화가 촉진되어 신체 노화가 전체적으로 빠르게 진행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러한 효과는 단순히 젊은 쥐의 피가 늙은 쥐의 피에 의해 희석되어 ‘젊음’의 힘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늙은 쥐의 피 속에 노화를 촉진하는 무엇인가가 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콘보이 교수 연구팀이 항노화제의 일종으로서 노화 세포들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 세놀리틱(senolytic) 약물을 미리 처리한 늙은 쥐의 피를 젊은 쥐에게 전달했더니 수혈에 의한 젊은 쥐의 노화 촉진 현상이 사라졌다. 이러한 여러 연구결과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몸 속 어디에서인가는 젊음과 노화를 유도할 수 있는 물질들을 분비되고 있으며, 이는 혈액을 통해 온 몸을 순환하며 노화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과학자들의 관심은 젊음과 노화를 조절하는 혈액 속 물질의 정체이다. 특히 젊은 개체의 혈액 내 무엇인가가 실제로 세포 및 유전자 변화를 통해 노화의 역전을 이룰 수 있다는 증거가 쌓이면서 젊은 사람의 피에 존재하면서 노화를 늦추거나 방지할 수 있는 혈액 내 물질의 정체를 찾고자 많은 과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혈액은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의 혈구들과 다양한 단백질과 무기질, 대사체 등이 포함되어 있는 혈장(plasma)으로 구성된 액체다. 이들 중 가장 큰 주목을 받는 혈액 내 성분은 ‘혈장’이다. 혈장을 구성하는 물질들은 다양한 단백질, 대사체 등이며 이들의 조성도는 신체 상태나 나이 등에 의해 크게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이미 와그너스(Amy J. Wagners) 미국 하버드대 교수 연구팀이 젊은 쥐의 혈장에 존재하는 성장인자 중 하나인 GDF11이 노화를 늦출 수 있는 ‘그것’이라고 주장했다(DOI: 10.1126/science.125115). 다른 한편, 토니 와이스-코레이(Tony Wyss-Coray) 스탠퍼드대 교수 연구진은 젊음의 피를 주입받은 늙은 쥐의 회춘 효과가 소수의 단백질 및 특정 조직 수준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분자 기전 및 세포들의 종합적인 결과라고 예측했다.

이에 따라 파라바이오시스를 통해 젊은 쥐의 피를 수혈받은 늙은 쥐의 20여개 조직들 내 세포들의 유전자 발현 패턴을 종합 분석한 결과(10.1038/s41586-022-04461-2) 지방유래줄기세포(adipose mesenchymal stromal cell), 조혈모세포(hematopoietic stem cell), 간세포 (hepatocyte) 등에서 유전자 변화가 가장 두드러졌다. 가장 큰 변화를 보인 유전자들은 주로 미토콘드리아 전자전달계(mitochondria electron transfer)와 관련되어 있었으며, 이는 주로 ATP 생성 등 세포호흡에 필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뇌의 노화도 젊은 피의 도움을 통해 늦춰지거나 역전될 수 있을까.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신체적인 능력 저하뿐만 아니라 인지기능의 저하를 체감하는 분들이 많을텐데, 뇌의 노화도 젊은 피의 도움을 받으면 당연히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뇌는 다른 신체 장기들과 다르게 혈액의 영향을 직접 받지 않는다.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 BBB)이라 불리는 특수한 구조 때문에 뇌세포는 혈액에 직접 영향을 받을 수 없으며 혈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는 혈장 내 특정 단백질 및 물질들만이 뇌에 직접 전달될 수 있다. 

혈액 내 osteocalcin이 뇌속으로 직접 전달되어 뇌기능을 조절하는 역할 모식도. 네이쳐 제공

최근 몇 년간 많은 연구들이 젊은 피에서 얻어낸 혈장이 뇌의 노화성 퇴행 및 인지기능 저하를 늦춘다고 보고하고 있다. 특히 혈장 내 포함된 단백질들 중 혈뇌장벽을 투과할 수 있는 단백질들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근육에서 분비되는 'cathepsin B', 'irisin' 등은 혈액을 통해 혈뇌장벽을 통과해 뇌로 직접 전달되고 신경영양인자 발현 및 신경세포 생성 증가를 유도할 수 있다고 보고된 바가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단백질들 중 일부는 식습관이나 신체활동(운동) 뿐만 아니라 노화에 따라 혈장 내 농도가 변하는 단백질들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오스테오칼신(osteocalcin)'이라 불리는 골아세포(osteoblast)에서 유래하는 단백질은 나이가 듦에 따라 점차 혈중 농도가 감소하는 반면, 운동 등과 같은 신체활동에 의해 농도가 다시 증가하는 특징이 있다. 근육에서 분비되는 인터루킨6(IL-6)이 골아세포에서 오스테오칼신의 분비를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부의 오스테오칼신은 뇌까지 도달할 수 있다. 2019년 프랑스 프랑크 오리 (Franck Oury) 박사 연구진은 혈액 내 호르몬이 뇌로 전달되면 신경영양인자의 발현을 증가시킴으로써 기억 향상 및 노화성 기억 감퇴를 회복할 수 있음을 생쥐모델을 활용해 증명하기도 했다(10.1016/j.cub.2018.12.021). 

노화 역전을 위해 피를 활용하고자 하는 연구는 아직도 활발히 진행 중이며, 일부는 인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임상실험이 진행되거나 준비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나이에 따른 혈장 단백질의 조성 차이를 분석하고 이들 중 노화와 관련된 단백질들을 구성해 노화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회사들(Ambrosia, Alkahest, Elevian 등)이 창업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실험동물을 통해 발견한 연구결과들을 기반으로 건강하고 젊은 사람의 혈장 자체를 이용하거나 그 혈장들에서 노화 방지 효과가 있었던 특정 단백질들을 활용해 우선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관절염 치료를 모색중이다.  

물론 많은 동료과학자들과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의 견제와 비난이 만만치 않다. 젊은 피에서 확보한 혈장 성분들의 항노화 효과 및 노화성 질환 치료 효과가 모든 연구에서 재현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기도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혈장 또는 혈장 내 단백질들의 효과가 과장되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FDA 등과 같이 의약품 허가를 심사하는 기관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인체 물질을 임상에 적용한다는 시도를 매우 조심스러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모든 난관들은 아직 우리가 노화 및 역노화의 분자 기전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한바탕 소동과 같다고 본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인류가 생명력의 정체를 혈액에서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면, 이제부터는 겨우 찾아낸 생명력의 정체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다시 노력할 때가 아닌가 싶다.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한국뇌연구원 신경혈관단위체 연구그룹장

※필자소개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신경혈관단위체 연구그룹에서 근무 중이며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인지과학전공 겸임교수다. 현재 생쥐 모델을 활용해 학습과 기억을 조절하는 세포간 상호작용의 분자 기전을 연구하고 있으며, 뇌 속 기억 형성 및 변화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 저술 작업도 같이하고 있다.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한국뇌연구원 신경혈관단위체 연구그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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