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 마시고 길가에 버리고…그 많던 쓰레기통은 다 어디 갔을까

김창현 기자, 박수현 기자 2023. 1. 2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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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전 10시10분 서울시 송파구 방이2동에 위치한 방이먹자골목 구석에 쓰레기가 쌓여있는 모습. /사진=김창현 기자.

#지난 25일 오전 10시10분쯤. 서울시 송파구 방이2동에 위치한 먹자골목 구석으로 담배꽁초와 일회용 컵이 쌓여 작은 언덕을 이뤘다. 환경미화원이 이른 새벽 거리를 치워 대로변은 깨끗했지만 골목 뒤편으론 쓰레기가 가득했다. 길에서 며칠 묵어 잿빛이 된 담뱃값 위로 버린지 얼마 되지 않은 흰색 종이컵이 포개졌다. 이곳은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하루 평균 13만여명이 방문하는 거리지만 쓰레기통은 하나도 없다.

서울 길거리에서 쓰레기통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정부와 지자체가 도시 미관과 미화 인력 부족, 쓰레기 종량제 제도의 안착을 위해 거리의 쓰레기통을 줄여나가면서다. 하지만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가 쌓이는 일이 반복되며 무작정 쓰레기통 수를 줄이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환경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시내 '가로 쓰레기통' 수는 1994년 7607개에서 쓰레기 종량제 시행 뒤인 2000년 3300여개로 줄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재활용 쓰레기 회수를 위해 쓰레기통 수가 늘었다가 △2019년 6940개 △2020년 6242개 △2021년 5613개 △2022년 4956개로 최근 4년간 꾸준히 감소했다.

'가로 쓰레기통' 수는 1995년 정부가 쓰레기 수수료 종량제를 시행하며 줄기 시작했다. 쓰레기 처리 비용을 배출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 생활 쓰레기를 길가에 버리지 못하도록 가로 쓰레기통을 줄였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자치구는 쓰레기 무단투기와 배출량 감소를 위해서 가로 쓰레기통을 줄였다는 입장이다. 서울 종로구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가로 쓰레기통을 늘릴 계획이 없다"며 "주민들이 생활 폐기물을 투척하거나 쓰레기통 주변이 더러워지는 등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쓰레기통을 줄이는 대신 순찰과 감시를 늘렸다는 자치구도 있었다. 서울 송파구청 관계자는 "가로 쓰레기통을 늘리면 청소 인력도 늘려야 하는데 환경미화원은 부족하다"며 "순찰과 감시로 쓰레기 문제에 대응 중"이라고 했다. 서울 성북구청 관계자도 "쓰레기통을 줄이는 대신에 순찰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오전 10시10분 서울시 송파구 방이2동 먹자골목에 일회용 커피 컵이 버려진 모습. /사진=김창현 기자.

시민들은 가로 쓰레기통을 줄이려는 정책 방향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2021년 서울시에서 시민 311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3.3%가 현재 서울 시내에 설치된 쓰레기통 대수가 적은 편이라고 답했다. 가로 쓰레기통 수가 적정하다는 응답은 25.2%에 불과했다. 응답자 62.8%는 가로 쓰레기통 주변이 대체로 깨끗하다고 답변해 쓰레기 무단 투기 문제를 우려하는 지자체 관계자와 시각을 달리했다.

대학생 김성준씨(23)는 "쓰레기를 줄이려고 쓰레기통을 없앤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은 대책"이라며 "일회용 컵을 들고 대중교통을 타야 할 때 쓰레기통이 없어서 길가에 쓰레기를 두고 간 적도 있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주모씨(59)도 "쓰레기를 줄이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쓰레기통을 없앤다고 시민들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건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서울 중구 명동관광특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60대 구모씨도 "쓰레기를 치우는 인력을 늘렸다고 하지만 사실상 체감이 되지 않는다"며 "명동을 찾은 관광객들이 수시로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고 쓰레기를 길가에 버리고 가는데 감시와 계도로 해결할 수 없다. 차라리 아파트 단지 등 주택 밀집 동네에서 쓰레기통을 줄이고 명동처럼 상가나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곳에서는 쓰레기통 수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쓰레기 배출량을 줄인 뒤에 가로 쓰레기통을 줄이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의견이다. 서울시 쓰레기수거 현황에 따르면 서울 시민이 배출하는 일일 평균 쓰레기양은 △2018년 4만6188톤 △2019년 4만7643톤 △2020년 5만1887톤으로 3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포장 주문이 가능한 카페 전문점을 비롯해 길거리에 쓰레기가 발생하는 요인은 많은데 쓰레기통을 없애면 시민들은 쓰레기를 길거리에 투기한다"며 "쓰레기를 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오히려 가로 쓰레기통을 설치해 공공에서 관리하는 게 맞다"고 했다.

송지현 세종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시민들에게 쓰레기를 버릴 때 불편함을 주는 게 정부가 쓰레기를 줄이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라며 "쓰레기를 줄이는 건 옳은 방향이지만 서울 시내 곳곳에 불법 투기한 쓰레기가 쌓여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같은 과도기적 상황에서는 지자체와 시민들 간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부 차원에서 가로 쓰레기통을 줄이는 정책을 직접적으로 편 적은 없다"며 "1995년부터 쓰레기 종량제를 시행하며 지자체에서 제도의 안착을 위해 가로 쓰레기통을 줄여나갔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담배꽁초 전용 쓰레기통을 만들거나 분리배출 쓰레기함을 설치하는 대안을 내놨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26일 오후 2시. 서울시 성북구 정릉2동 거리.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적혀있는 팻말 주변에 쓰레기가 쌓여있는 모습. /사진=김창현 기자.


김창현 기자 hyun15@mt.co.kr, 박수현 기자 literature102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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