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죽인 엄마지만 선처를”…법원·검찰·시민까지 한목소리 왜

지홍구 기자(gigu@mk.co.kr) 2023. 1. 2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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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간 극진히 돌본 중증장애인 딸
암 걸려 고통 커지자 수면제로 살해
본인도 극단 선택 시도했지만 미수
법원 집행유예에 검찰은 항소 포기
검찰시민위 만장일치 “항고 부제기”
중증장애 딸 38년 돌보다 살해한 어머니 [사진 = 연합뉴스]
난치성 뇌전증에 좌측 편마비가 있고 지적장애까지 앓는 뇌 병변 1급 중증 장애인 딸을 38년간 돌보다 살해한 어머니에게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한 가운데 검찰도 이례적으로 항소를 포기했다.

인천지검은 중증장애인 딸을 살해한 피고인 A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1심 판결에 대해 검찰시민위원회 심의와 내부 검토를 거쳐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27일 밝혔다.

검찰은 “인간의 생명은 가장 존엄하고 타협할 수 없는 가치로, 부모라도 자녀의 생사를 대신 결정할 수 없고, 질병이나 가난 등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피해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하는 살인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면서도 “피고인이 범한 범죄의 사정, 판결에서 인정된 내용, 전문가 의견, 검찰시민위원회의 의결 내용, 유사 판결 사례 등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25일 교수, 주부, 시민단체 활동가, 가정폭력 상담사 등 10명으로 구성된 검찰시민위원회는 만장일치로 항소 부제기 의견을 냈다.

검찰은 피고인이 장기간 진심으로 피해자를 간병한 점, 피해자가 대장암 3기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 고통이 표현 마저 힘들 정도로 쇠약해진 점, 피고인 자신도 정신·신체적 고통으로 심신이 쇠약해져 대안적 사고가 어려웠을 것이란 전문의 감정서, 피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제한적이었던 점 등을 참작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지난 19일 인천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류경진)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실형이 아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징역 12년과 차이가 크고, 인신을 구속하지 않아 ‘선처’란 평가가 나왔다.

당시 재판부는 “장애로 인해 피고인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던 피해자는 한순간에 귀중한 생명을 잃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 의사는 고려되지 않았다. 아무리 어머니라고 해도 딸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면서도 중증 장애인 가족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국가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며 이번 사건이 피고인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동안 피해자와 함께 지내면서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큰 죄책감 속에서 삶을 이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며 선처성 판결을 내렸다.

A씨는 지난해 5월 23일 오후 4시30분께 인천시 연수구 한 아파트 주거지에서 딸 B씨(사망 당시 38·여)에게 수면제를 먹여 살해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A씨는 당시 B씨에게 다량의 수면제를 먹인 뒤 자신도 수면제를 복용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A씨는 딸을 살해하기 전까지 극진히 키웠다. 의사소통이 힘든 딸의 대소변을 거의 도맡아 받아냈다.

A씨 아들이자 B씨 남동생은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어머니는 다른 엄마들처럼 항상 누나 머리도 예쁘게 땋아주고 예쁜 옷만 입혀서 키웠다”면서 “대소변 냄새가 날까 봐 깨끗하게 닦아 주는 일도 어머니가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4개월 전인 지난해 1월, 딸이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으면서 38년간 이어지던 엄마의 지극정성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A씨 아들은 “어머니는 누나가 대장암 진단을 받자 많이 힘들어했지만, 항암을 희망으로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했다”며 “혈소판 수치가 감소하면서 항암마저 중단했고 누나 몸에 멍이 들기 시작하면서 더는 돌파구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짐작했다.

A씨 아들은 “누나도 불쌍하고 엄마도 불쌍하다”며 “저와 아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이때까지 고생하고 망가진 몸을 치료해 주고 싶다”고 재판부에 부탁하기도 했다.

A씨는 지난달 8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제가 그날 딸과 같이 갔어야 했는데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면서 “그때는 버틸 힘이 없었고, 60년 살았으면 많이 살았으니 여기서 끝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오열했다.

인천지검 전경 <자료=네이버지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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