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뱃놀이’ 풍류 대명사… 왕도 부러워 한 조선 최고 외관직[박정혜의 옛그림으로 본 사대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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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혜의 옛그림으로 본 사대부의 꿈 <10> 평안감사향연도
횃불·괘등에 대낮같이 밝아진 그믐날 밤, 음식·기녀 태운 배들 즐비한 ‘월야선유도’… 관청 벽 채울만한 그림에 담겨
안석에 기대앉은 자신만만 관찰사, 모란봉 꼭대기 구경꾼까지 묘사한 ‘부벽루연회도’… 평양 절경과 조선 잔치문화 보여줘


우리에게 익숙한 속담 중에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본인이 내켜 하지 않으면 억지로 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평안감사, 즉 평안도 관찰사는 조선시대 관료라면 누구나 한 번쯤 누려보고 싶은 최고의 외관직이었다는 의미이다. 전국 팔도 중에서 유독 평안도의 관찰사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그 지역 행정과 군사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다른 지역의 관찰사보다 컸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문인 관료의 인생행로를 그린 평생도 병풍에도 ‘지방관 시절’에 해당하는 장면은 대동강을 건너 부임하는 평안감사로 표현되곤 했으니 말이다.
평양부윤을 겸했던 평안도 관찰사의 근무지는 평양이다. 평양은 옛 도읍이 있던 역사 도시이자 한양과 북경을 오가는 양국의 사행단이 쉬어가는 거점 도시였으며 풍부한 재원을 바탕으로 성장한 무역과 상업 도시였다. 게다가 평양은 사대부들이 동경하는 유흥과 풍류의 도시였다. 중국의 사신과 한양에서 파견된 고위 관료들을 위해 격식을 갖춘 연향이 자주 열리고 풍류를 잘 아는 문사들의 방문도 잦았다. 그러다 보니 뛰어난 기예를 가진 기녀들이 평양으로 모여들었다. 자연히 지방의 교방(敎坊) 중에서도 평양 교방의 규모가 컸으며 평양에서 수준 높은 악가무(樂歌舞)의 공연이 발전하였다.
이렇게 한양이 부럽지 않은 도시 평양에서, 관찰사의 권위와 풍요함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기 좋은 그림의 주제는 연향이다. 빼어난 자연경관을 가진 평양의 많은 명소 중에 연광정(練光亭), 부벽루(浮碧樓), 대동강(大同江)은 공적인 연향이 치러지는 단골 장소였다. 이 명소에서 평안감사가 주재하는 연향의 양상은 ‘연광정연회도’ ‘부벽루연회도’ ‘월야선유도’로 이루어진 ‘평안감사향연도’ 세 폭에서 시각적으로 잘 살필 수 있다.
‘부벽루연회도’에는 화면 왼쪽의 높다란 모란봉, 그 기슭의 부벽루와 남쪽의 영명사(永明寺) 일대를 대각선으로 배치하고 오른쪽에는 성곽 너머의 자연경관을 담았다(그림 2). 능라도(綾羅島)가 큼직하게 그려지고 강 건너 원경에는 대동강을 따라 10리나 이어진다는 장림(長林)이 길게 펼쳐져 있다. 감사는 임시로 설치한 군막 안에 수묵산수 병풍을 바람막이 삼아 안석에 기대앉았다. 옥으로 만든 정자(頂子)와 화려한 끈으로 멋을 낸 갓을 쓰고 푸른색 철릭을 입은 감사의 훤한 풍채에서는 자신감과 여유가 넘쳐난다. 호수를 꽂은 갓을 쓰고 화살통을 멘 비장(裨將)이 곁에서 감사를 호위하고 수령들이 차일 아래 감사와 같은 공간에 자리하였다(그림 1).
이 그림에는 감사의 권한과 지위를 상징하는 의물이 잘 표현되었다. 이를테면 감사가 허리끈에 차고 있는 밀부와 병부 주머니, 평안감사와 평양부윤의 관인이 든 인궤 두 개, 부벽루 중앙 기둥에 매달린 교서통과 유서통, 기둥에 세워진 절(節)과 월(鉞), 연회장 한쪽의 감사가 타고 온 말과 가마, 일산(日傘) 등을 말한다. 부벽루 마당에는 이날 공연된 여러 무용이 한꺼번에 그려졌는데, 삼현육각의 반주에 맞추어 헌선도(獻仙桃), 처용무(處容舞), 포구락(抛毬樂), 검무(劍舞), 무고(舞鼓)가 무대에 올려졌음을 알 수 있다. 장수의 상징인 복숭아를 바치는 헌선도 정재가 제일 앞쪽에 그려진 것은 감사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뜻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잔치 구경을 위해 운집한 사람들의 나이와 양태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시야를 확보하려고 모란봉 꼭대기에 오르거나 비석 위에 걸터앉기도 한다. 목판을 목에 건 장사꾼은 대목을 만난 듯하다. 한바탕 잔칫날의 무르익은 분위기는 술 마시고, 취해서 비틀거리고, 몸싸움하고, 질서 유지를 방해하여 사령에게 혼나는 구경꾼들의 떠들썩한 모습에서 절정에 이른 듯하다. 한편, 능라도에는 쟁기질하거나 밭 가는 농부, 물동이 이고 가는 아낙, 나룻배로 강을 건너려는 사람, 낚시하는 사람, 손님을 실어 나르는 뱃사공 등이 보인다. 감사가 벌이는 성대한 향연에 아랑곳하지 않고 생업에 종사하거나 일상을 영위하는 백성들의 평범한 모습은 성 안과 사뭇 다르다.
‘부벽루연회도’의 오른쪽 위 여백에는 ‘단원사(檀園寫)’라는 관서와 인장이 있고 인물 묘사에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 화풍의 여운이 조금 남아 있어서 ‘평안감사향연도’ 세 폭은 오랫동안 김홍도 작품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지금은 관서의 서풍, 화풍의 차이, 김홍도와는 거리가 있는 세부 필치에 근거하여 19세기의 그림으로 보고 있다.

대동강의 뱃놀이는 평양에 가면 꼭 해볼 만한 풍류의 한가지였다. 더욱이 관찰사가 주관하는 달밤의 뱃놀이는 한양의 국왕도 그 모습을 궁금해할 정도였으니, 평양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환상적인 행사로 여겨졌다. ‘월야선유도’에는 능라도를 지나 평양성의 가장 대표적인 문루인 대동문(大同門) 쪽으로 향하는 감사의 선단(船團)이 수평 구도 안에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그림 4).
감사가 탄 상선(上船)은 갑판을 넓게 깔고 그 위에 기둥과 이엉 지붕을 얹은 정자선(亭子船) 형태이다. 악공들이 달밤의 흥취를 돋우는 가운데 감사는 그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곁에는 기녀와 어린 통인(通引)들이 시중을 들고, 술상이 음식을 가득 실은 배로부터 상선 뒤쪽으로 전달되고 있다. 취고수를 실은 배, 영기(令旗)와 순시기(巡視旗)를 실은 배들이 상선을 인도하고, 나룻배 세 척을 연결하여 교방의 기녀들을 태운 배가 상선을 바짝 따르고 있다(그림 3). 조금 간격을 둔 작은 정자선에 탄 사람들은 이 지역의 향임(鄕任)으로 짐작된다. 관솔을 가득 실은 배에서는 계속해서 강 위에 방석불을 띄우고 있다. 그 외에도 각 지역의 수령, 감영과 군영의 아전, 사령들을 나누어 태운 배들이 상선 주위를 호위하듯 따르고 있다.
화면 왼쪽부터 성곽을 따라 대동문, 연광정, 경파루(鏡派樓), 장경문(長慶門), 영명사·전금문(轉錦門), 부벽루, 을밀대(乙密臺) 등을 오른쪽으로 갈수록 작게 표현하여 거리감을 강조했다. 대동문에는 여러 개의 현판이 달려 있는데 성 바깥쪽 위층에는 평안감사를 지낸 박엽(朴燁, 1570∼1623)의 해서 글씨가, 아래층에는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의 행서 글씨가 걸려 있다. 연광정과 경파루 사이로 지붕만 보이는 건물은 객관인 대동관(大同館)이며 멀리 작게 보이는 건물은 감사의 근무처인 선화당(宣化堂)이다. 성 안의 빽빽한 민가와 성 밖 문루 주변에 즐비한 가게는 평양이 상업적으로 번성한 도시임을 시사한다.
화면 왼쪽 위 그믐달은 온갖 종류의 등화구가 발산하는 불빛에 금색 칠이 무색할 지경이다. 성곽을 따라 홰꾼들이 들고 있는 횃불, 장림을 따라 백성들이 비추는 횃불, 집집마다 걸려 있는 괘등(掛燈), 꿩깃과 비단 깃발로 장식한 높다란 등간(燈竿), 좌등(坐燈), 사롱등 등이 밤시간을 대낮 같이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검게 변한 부분이 많지만, 원래는 흰색과 금으로 채색되었을 등불을 감안하면 화면은 훨씬 화려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을 것이다. 평안감사의 대동강 밤 뱃놀이는 주인공 한 사람의 유흥을 위한 행사가 아니었다. 평양 관민 모두가 합심하여 준비하고 참여하는 한밤의 축제였다. 전기가 없던 시절, 칠흑 같은 그믐날 밤의 뱃놀이에 대규모의 물자 조달이 가능한 재정적 안정을 확보한 자리라면 조선시대 관료들은 평양에서 영위하는 관찰사 생활을 꿈꿔볼 만하지 않았을까.
18세기 이후 조선시대 관료들은 자신의 관직 이력을 다양한 주제로 시각화하여 기억하였다. 대형 화면의 읍성도 병풍에 관찰사의 장대한 도임 행렬을 그려 넣기도 하고 특정 업무를 묘사하여 개인적인 기념물로 간직하거나 관청을 장식하는 공적인 용도로 사용하였다.
관찰사의 행렬을 포함한 읍성도 병풍은 평양 그림이 가장 많이 그려졌는데, 그만큼 번성한 도시 평양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증거이다. 다만 ‘평안감사향연도’는 손에 쥐고 조금씩 펼쳐 보는 두루마리와는 달리 전체를 펼쳐서 감상해야 하는 장방형의 대형 화폭인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평안감사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관청의 벽을 장식할 목적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평안감사향연도’는 감사의 권세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한 그림이지만 연향이라는 주제 표현 외에도 평양의 산천과 풍물을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근무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태평한 성시(城市)의 면모를 전달하는 데도 주력한 그림이다.
미술사학자·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 부벽루
창건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며 원래 이름은 영명루(永明樓)이다. 12세기 언제부터인가 ‘대동강 푸른 물에 둥실 떠 있는 듯한 누정’이라는 의미의 부벽루로 불리기 시작했다. ‘부벽루에서 달구경’은 평양팔경의 하나이며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누정에 꼽힐 정도로 부벽루의 입지는 평양성 안팎의 경관을 조망하기 좋은 장소로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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