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된 영상, 반드시 흔적 남겨… 보이지 않는 진실 끝까지 추적할 것”[M 인터뷰]

송유근 2023. 1. 2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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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황민구 법영상분석연구소장
범죄 고도화 범인들 지문 안남겨
유일한 증거물은 CCTV·사진뿐
저화질영상 등 분석 솔루션 제공
위변조, 시간조작 등 다양하지만
영상물도 사람처럼 ‘DNA’ 존재
누가 어떻게 바꿨는지 확인 가능
유죄서 무죄된 사례가 가장 보람
법영상에 관한 지식 책으로 엮어
후학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목표
황민구 법영상분석연구소장이 지난 9일 인천 연수구 송도동 법영상분석연구소 사무실에서 교통사고 장면을 시뮬레이션하며 영상분석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영상은 거짓말하지 않아요. 법영상 분석은 이미지를 해부하듯이 분석해 증거를 증거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거기에 손상된 영상, 저화질의 영상을 증거로 쓸 수 있게 치료까지 하는 사람이고요.”

황민구 법영상분석연구소장은 사진과 영상으로 범죄를 파헤친다. 저화질 영상을 고화질로 복원하고 원본 여부를 판독하며, 영상 속 특정 장면을 실제 상황으로 시뮬레이션하거나 등장하는 피사체들의 크기와 형태 등의 정보를 측정한다. 그는 법영상 분석을 ‘증거를 더 증거답게 만드는 과정’ ‘보이지 않는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황 소장은 또 영상의 DNA를 쫓는다. 최근 들어 영상 위변조를 걸러내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진과 영상에는 고유의 DNA가 있고, 변조된 DNA는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고 했다. 이미지 합성, 수정, 조작 등 사건의 진실을 왜곡하는 요소를 위변조 프로그램으로 감정하는 게 그의 또 다른 주업이 되고 있다.

황 소장과 인터뷰는 지난 9일 그의 인천 연수구 송도동 법영상분석연구소 사무실에서 대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법영상 분석에 대해 소개해달라.

“범행이 고도화된 요즘, 범인들은 지문을 잘 남기지 않고 족적도 잘 남기지 않는다. 유일한 증거물들이 CCTV, 사진 및 영상물이다. CCTV 경우 지금은 폭증한 상태잖나. 그만큼 수요가 늘어난 셈이다. 다만 이때 저화질 영상, 손상된 영상, 위변조 영상들이 나오면서 이걸 치료하는 사람이 필요해졌다. 나는 치료하는 사람이다. 진단하고 판단하고 그 결과를 수사기관 법원 등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내 일이다. 그래서 증거를 더 증거답게 만드는 것이다. 이 증거가 법정에서 사용되면서 무죄나 유죄를 받는 일이 될 수 있다.”

―법영상 분석을 ‘증거를 더 증거답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다면.

“특정 영상이 있는데 그 영상을 제대로 증거로 못 쓰는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왜곡됐다는 이유로 증거로 사용 못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의 화질을 개선해서 쓸 수 있게 되면 증거가 되는 것이다. 기존에는 버려지는 영상이 많았다. 그런데 과학기술 개선으로 숨겨진 진실을 찾아낼 수 있게 됐다.”

―세간에 알려진 대표적인 법영상 분석 중 하나가 법보행 분석이다. 대략적인 분석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면.

“영상에는 모든 행위가 기록된다. 발의 착지방법이라든지 보폭이라든지, 11자 걸음 혹은 바깥 걸음, 8자 걸음 등 여러 형태가 드러나게 돼 있다. 걸을 때 몸의 움직임 혹은 자세를 종합적으로 보고 동일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영상 속 생체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A가 진짜 A가 맞는지, B가 실제 B와 일치하는지 보는 것이다. 영상 안에 숨겨져 있는 정보들을 추출해서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영상 디지털 포렌식과 법영상 분석이 다른 지점은 뭔가.

“디지털 포렌식은 말 그대로 데이터를 복원하거나 해석하는 일이다. 법영상은 그것 외에 사진 영상 매체에 숨겨진 진실을 찾는 것이다. 법영상분석가들이 하드디스크나 휴대전화 등을 복원하진 않는다. 사진이나 영상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 분석한다. 예컨대 ‘김학의 성접대 사건’을 보자. 누가 봐도 본인이지만, 본인만 아니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부인하곤 한다. 수사하는 사람에게는 증명이 중요하다. 영상분석가가 안면인식과 신장 계측 등을 통해서 A가 A라고 판독해줘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영상의 진실을 말해줘야 한다.”

―법영상 분석 기술은 현재 어느 수준까지 올라온 건가. 영상 속 이미지를 3차원으로 복원하면 편차가 없나.

“거의 편차는 없다. 오차범위는 5∼10% 정도다. 케이스에 따라서 감정물의 영상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오차범위는 갈수록 줄어들게 돼 있다. 인공지능(AI)도 영상분석에 동원된다. 휴대전화에서 안면인식으로 잠금을 해제하는 것도 영상분석 기술의 일환이다.”

―영상 위변조가 있을 때 이를 검출해내는 과정이 궁금하다.

“위변조라고 하는 게 여러 케이스가 있다. 시간을 조작하는 사람, 구간을 편집하는 사람, 다른 사람 얼굴을 변형시키는 경우 등 케이스가 많다. 행태가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에, 케이스에 맞는 분석법을 적용해야 한다. 이럴 때 DNA 분석과 똑같은 기법이 있다. 사람마다 다 DNA를 고유로 갖고 있잖나. 사진 영상도 이 영상만 갖고 있는 DNA가 있다. 그게 휴대전화에서 나온 다음에 수정하게 되면 흔적이 남게 된다. 누가 뭘 어떻게 바꿨는지도 검출된다.”

―법원, 수사기관, 민원인 등 다양한 기관에서 영상 분석을 의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관별 특징은.

“수사기관의 경우 범인을 검거하는 게 목적이다. 자동차 번호판 식별, 용의자가 부인하는 경우, 용의자로 특정할 수 있는 어떤 증거물이 있는데 자꾸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경우에 의뢰한다. 민간인의 경우 목적이 굉장히 다양하다. 단순 재미로 항공사진을 판독해달라는 경우도 있고, 민사 목적으로 언제부터 이 땅이 밭으로 쓰고 있었는지 등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그에 따라 보상비용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또 내 건물에서 불이 났다면, 이 불이 어디서 발화됐는지 등을 알아봐달라고 한다. 민사적인 사건에서도 법영상이 많이 활용된다. 변호사 경우에는 피고인이 주장하는 바가 영상과 일치하는지 아닌지, 검찰이 기소한 경우 이 소견이 맞는지 아닌지 등을 따져달라고 한다. 최근 들어서는 학교폭력과 관련된 영상분석 의뢰도 많아졌다. A 학생과 B 학생 간에 다툼이 고의로 시작된 거냐 장난이냐 이런 걸 분석해달라는 의뢰다. 학교는 물론 유치원, 어린이집까지도 의뢰가 온다. 보통 학부모들이 의뢰한다. 선생들의 행동이 학대냐 아니냐 등이 논쟁지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딱 어느 사건을 말하긴 어렵다. 다만 억울함을 풀어줄 때 보람을 느낀다. 유죄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형을 살고 있다가, 내가 참여해서 무죄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사람의 인생을 구한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뜻깊은 의미가 있다. 실제로 본인은 성추행하지 않았는데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로 1심에서 유죄가 나온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증거 영상을 보니 피고인이 만진 게 아니고 주변 다른 사람이 만진 게 발견된 적이 있었다. 판사와 검사에게 설명하면서 판결이 뒤집혔다. 형사사건 항소에서 무죄가 나오는 게 5%도 안 된다고 하는데, 무죄를 받아낼 때 뿌듯하다.”

―왜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애초에 영상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건가.

“고민해봤는데, 사건이 너무 많아서다. 검찰이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국가기관은 전국에 있는 모든 사건을 다 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1개의 사건을 몇 개월 동안 하기도 한다. 재연도 해보고 현장도 직접 가보고 한다. 이런 것들은 수사기관이나 공공기관이 하기는 힘들다.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다.”

―방송 등에서 경찰이 CCTV 원본 영상을 확보하는 데까지 걸리는 절차가 너무 까다롭다고 밝혔다. 어떤 점이 개선돼야 수사기관이 증거를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개인정보보호법 등 걸리는 게 많아서 그렇다. 사건 현장에 있는 CCTV를 받아오려면 영장도 필요하고, 시간이 지나서 지워지는 데이터도 많다. 그래서 경찰들이 보통 모니터를 찍어 온다. 그건 법으로 괜찮다는 것이다. 말이 안 되는 법이다. 그걸 증거로 제출하다 보니 사건의 진실이 원데이터에 숨겨져 있는데 못 살리는 경우가 많다. 모니터를 찍은 사진은 치료할 수가 없다. 복구도 안 되고 왜곡도 심하다. 법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

―법영상 전문가로서 최종 목표가 있다면.

“주변에서 ‘우리나라 최초 영상 전문가’가 맞는지 많이들 묻는다. 난 내가 최초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분야에 필요한 사람이 많다. 공공기관에서 하면 안 믿는다. ‘수사기관과 공공기관을 어떻게 믿느냐’는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 나 같은 민간영역이 필요하다. 법영상에 관한 모든 지식을 책으로 만들어놓고 싶다. 법영상개론, 이런 책을 만들어서 후학들에게 제공하고 싶다.”

■ 세월호·이태원 영상분석 참여

“대형참사, 정치적 목적 휘말리기 쉬워… 전문가들 진영 상관없이 사실 알려야”

황민구 법영상분석연구소장은 세월호 참사부터 이태원 핼러윈 참사까지 대형 재난 관련 영상분석에도 참여했다. 학자로서 사회에 보탬이 되게끔 지식을 활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분열의 시대, 명확한 분석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특히 세월호 참사·이태원 핼러윈 참사 등 대형 재난의 경우, 분석에 참여하는 것 자체로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집단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황 소장은 “참사가 정치적으로 악용되면서 전문가들이 참사 원인이나 분석 결과를 말하기 어려워졌다”면서도 “전문가라면, 사회 진영과 상관없이 답해야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영상의 진실을 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참사 분석 결과는 어땠을까. 세월호 영상 분석 결과 그는 사고 발생 시작부터 배가 급격히 기울어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애초부터 급격했던 기울기 때문에 구조가 쉽지 않았을 거란 얘기다. 황 소장은 “언론이나 방송 매체에 세월호가 천천히 기울어졌을 텐데 왜 구할 수 없었냐는 얘기가 많았는데, 차량들 블랙박스를 수거해서 복원한 걸 보니 배가 5∼10초 만에 45도가 기울어졌더라. 이런 게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 길이가 100m가 넘기 때문에 45도 넘게 기울어지면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 영상을 본 입장에서는 5초 만에 45도 기울어져 그 뒤로 거의 낭떠러지인데, 거기에 들어가라는 건 자살하라는 거나 다름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 영상 분석 결과 “우선 생각과 달리, 선 채로 돌아가신 분이 많았다. 그 공간에서 팔을 들 수도 없고 몸으로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였다. 그냥 끌려다니는 상태다. 심지어 친구가 기절해 있으니까 한 손만 나와서 주먹으로 때리는 장면도 있다. 굉장히 슬픈 장면인데 그만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어느 극우단체에서는 누가 오일을 발랐느니 그런 주장이 나왔지만 저는 아니라고 얘기했다”고 했다.

황 소장은 이렇게 영상에 진실이 있음에도 진영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고, 사실이 왜곡되는 현상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중심을 전문가가 잡아줘야 한다고도 했다. 황 소장의 말이다. “한강 의대생 변사 사건 때도 유튜버들이 돈벌이를 엄청 했잖나. 사건의 진실보다도 포장해서 수익을 번다든지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으로 소모된다. 이런 것일수록 전문가들이 나와서 얘기해줘야 한다. 당시에도 ‘경찰이랑 한패다, 돈 먹었다’ 등의 악플이 많았다. 누군가는 영상에 대해서든 무엇에 대해서든 진실을 말해줘야 한다.”

송유근 기자 6silver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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