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시렁] 야밤에 산에서 명상하면 귀신 들린다고?

윤성중 2023. 1. 2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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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함께 산에서 또 명상했다. 초보자가 산에서 함부로 명상을 하면 안 된다는 충고 때문이다. 이번에 눈을 감고 있을 땐 따뜻한 방 안에 누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난달 야밤에 산에서 명상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자랑하듯 떠벌렸다. 그랬더니 그중 몇 명이 주의를 줬다.

"밤에 산에서 명상하면 안 돼. 귀신 들려!"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귀신이 방귀 뀌는 소리일까? 나는 그날 귀신 발자국 소리는커녕 그런 기운조차 느끼지 못했다. 몸을 감싸는 따뜻한 기운이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혹시 그것이 귀신이었을까? '헐, 소름!' 충고해준 사람(이하 형)에게 물어봤다.

"형, 저는 그때 머릿속에서 석가모니를 봤는데, 혹시 그것도 귀신이었을까요?"

그러자 형이 답했다.

"음, 그건 유체이탈의 가장 기초적인 상태 같은데."

유체이탈? 점점 더 미스테리하게 흘러가는 분위기! 내가 했던 명상이 명상이 아니었던 걸까? 형은 명상 경력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이 형과 다시 산으로 가서 명상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서울 상암동 매봉산에서 형과 만났다. 시간은 오후 4시쯤. 귀신과 만나기엔 어정쩡한 시간이었고 산 높이도 낮았지만 일단 가보기로 했다. 형은 글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했다. 왜냐하면 산에서 귀신을 만나고, 어쩌고 저쩌고 했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당부하는 게 수상쩍어서 형에게 물어봤다.

"형, 혹시 무당이세요?"

"아니야. 나 원래 천주교 신자야."

천주교 신자라고 명상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뭔가 이상했다. 중간에 능선이 뚝 끊어진 산을 본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궁금한 걸 쏟아냈다.

"제가 지난달에 쓴 '야밤에 산에서 명상하기' 기사 보셨죠? 어땠어요?"

"응, 좋았어. 그런데 큰 산이 아니고 공원이라서 그나마 다행인 거고, 초보자가 깊은 산에 들어가 명상하면 위험할 수 있어."

"이건 형 생각인가요? 아니면 명상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알려진 법칙 같은 건가요?"

"대체로 그렇게 통용되고 있는데, 모두 같은 의견을 가진 건 아니야."

"그럼 형이 수련하는 명상 센터에서는 밤에 혼자서 산에 가서 명상하는 걸 추천하나요?"

"초보자의 경우 절대 하지 말라고 해. 수련을 오래 해서 자기 한 몸 지킬 수 있는 단계가 되었을 때는 괜찮은데, 그렇다고 해서 그때도 그걸 권하거나 그러지는 않아. 이건 영적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기사 익명으로 나가는 맞지?"

그가 진지하게 명상을 시작한 시기는 2013년쯤이다. 그 전 2005년에 어떤 단체를 따라 백두산에 갔다가 이 사람들이 천지에 앉아 명상하는 것을 본 것이 계기다. 그는 이 단체가 사이비종교 모임인 줄 알았다. 그들은 이상한 종교단체 소속이 아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그는 직장생활 중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사람 때문에 피로감이 컸다. 상사들이 자신에게 상처되는 말을 많이 했다. 그 말들이 스트레스 주는 것을 넘어 자존감까지 흔들었다. 몸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에 견딜 수 없어진 그는 명상 센터로 갔다. 명상이 효과가 있다는 걸 안 건 아내 덕분이다. 아내는 그에게 성격이 부드러워졌다면서 명상을 더욱 권했다. 그 역시 명상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 마음이 잠잠해지는 걸 경험했다. 어떤 일을 겪어도 '그럴 수 있지'라고 대처하게 됐다.

"형! 명상의 정의가 뭐죠?"

"명상은 일반인들이 거부감 느끼지 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단어일 뿐이야."

"그럼 실제로 명상은 뭐예요?"

"일종의 선도수련!"

형은 선도수련이 뭔지 한참 설명했다. 너무 길어서 여기에 옮겨 적지는 않는데, 짧게 말하면 단전호흡의 종류라고 할 수 있다. 단전호흡은 또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냐? 설명하면 또 길다. 형이 말한 걸 한 단어로 요약하면 그것은 '수련'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수련일까? 형이 설명했다. "깨달음을 위한 훈련?" 여기서 깨달음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나 우주의 원리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아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궁금한 걸 또 물어봤다.

"수련을 하는 건 훈련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마음을 무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러는 와중에 감히 귀신이 달려들어 나를 괴롭힐 수 있을까요?"

"수련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사람이 명상을 할 경우 자신을 둘러싼 영적인 방어구가 열릴 수 있어.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명상을 하면 영적인 존재들을 초청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귀신들한테 '나 수련한다! 와서 봐라'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건가요?"

"꼭 그렇다고 할 순 없는데, 초보자의 명상은 자신을 둘러싼 어떤 방어막을 자신도 모르게 열게 하는 행위일 수 있어. 육신이 없는 영적 존재들은 육신을 갈구하기 때문에 일단 다 몰려들지."

"음, 모든 영적인 존재들이 다 육체를 갈구할까요? 제가 귀신이라면 육체에 갇히는 것보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편이 더 낫다고 여길 텐데요."

"모든 영가들이 다 육체를 갈구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저 사람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귀신들도 많다는 거지. 이런 얘기는 뫼비우스띠처럼 끝이 없어. 또 대체로 사람들은 이런 얘기 좋아하지 않아. 그냥 초보자가 명상을 하면 영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 그 정도로 마무리하는 게 좋아."

나는 귀신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한 탐구다. 세상 어디에도 정의된 이론이 없기 때문에 상상력을 마구 자극한다. 나는 형에게 더 묻고 싶었지만 그가 지도하는 대로 명상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혹시 귀신을 만난다면? '어, 안녕. 너 누구니? 여기서 뭐해? 너 귀신이야?'라고 물어봐야지. 우리는 매봉산 꼭대기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명상하기 적당한 장소를 찾아 나섰다. 햇볕이 가득한 장소를 가리키면서 형이 말했다.

소나무는 햇빛을 좋아한다. 그래서 양수로 분류된다. 즉 소나무가 많은 곳은 햇볕이 잘 드는 곳이고 양기가 가득한 곳이다. 이런 곳이 초보자가 명상하기에 알맞다고 형이 알려줬다.

"여기 좋아.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빛이 가득할 테니까. 양기가 넘쳐. 주변에 소나무도 많아. 소나무가 '양수'거든. 햇볕을 엄청나게 좋아한단 말이지. 소나무가 많은 곳은 볕이 잘 든다는 뜻이야. 소나무가 많은 곳은 기운이 좋아. 향기도 좋고. 음한 것들이 자리잡기 힘들어. 하지만 여긴 사람이 많다. 다른 곳으로 가자."

능선 위를 걷다가 왼쪽 기슭의 공터를 발견했다. 낙엽이 수북한 그곳에 우리는 자리를 깔았다. 형은 매트리스와 담요, 따뜻한 물을 배낭에서 꺼냈다. 나는 신발을 벗고 매트리스 위에 앉았다. 형이 담요를 무릎에 덮어 줬다. 나는 빨리 명상을 해보자고 형을 채근했다. 그는 먼저 호흡법을 알려줬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그 호흡을 배꼽까지 가져가는 거야."

나는 그대로 따라했다. 별 다른 기분은 들지 않았다. 살짝 추웠다. 호흡을 몇 차례 하고 나서 그는 나에게 어떤 동작을 취할 것을 요구했다.

"이제 행궁을 몇 가지만 해볼게. 요가처럼 특정한 동작을 하면서 수련을 위한 근육을 단련시키는 거야."

형이 들고 있던 휴대폰에서 물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어떤 여자가 "행공~"이라고 말했다. 나는 형이 시키는 대로 따라했다. 주먹을 쥐고 고개를 45도 위로 들거나 다리를 오므리고 왼쪽 발을 오른쪽 종아리에 올리거나 하는 식이었다. 몸을 억지로 비트는 동작이었는데, 꽤 힘들었다. 명상은 언제 시작하는지 궁금했는데, 분위기가 진지해서 물어보지는 않았다. 이윽고 동작이 끝났고 형은 이제 그만 누우라고 했다. 나는 매트리스에 누워 눈을 감았다. 형이 중얼거렸다.

"잡념은 놔둡니다. 잡념은 떠올라야 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겁니다. 지우려고 하지 마세요. 그 잡념을 바라봅니다.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감정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불안을 가져옵니다. 걱정의 끝이 무엇인지 바라봅니다."

형의 말에 개의치 않았다. 나는 불안하지 않았으니까. 걱정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살짝 졸린 것 말곤 특별한 기분이 나지 않았다. 10분 정도 지나자 형이 의식을 되찾으라고 말했다. 나는 눈을 떴다. 눈을 뜨자 회색 하늘이 보였다. 이상했다. 눈을 감고 있을 땐 내가 누운 곳이 노란색 장판이 깔려 있는 따뜻한 방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형에게 이런 기분을 말하자 형은 내게 "기감이 좋다"고 했다. 이번에도 귀신의 기척은 없었다. 형은 우리 주변에 어떤 '결계'를 쳤다고 했다. 형이 결계 치는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형, 제가 지난달 명상할 때 본 석가모니가 유체이탈의 결과라고 했잖아요. 이걸 '내면 아이'라고 한다는데, 맞나요?"

"음, 도道적인 영역에서는 '참 나'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거기서 더 나아가면 선도수련에서는 '원신합일' 단계까지도 가지. '원래'할 때 원이고 '신'은 귀신 신자야. 결국에는 내가 신이 된다는 건데."

"형은 참 나를 만난 적이 있어요?"

"완전한 참 나를 만난 적은 없어. 참 나의 이끌림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내면 아이, 참 나는 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즉 명상은 내 안에서 신이 되기 위한 방법이다.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마음속에 구름을 만들거나 해를 띄우거나 비나 눈을 내리거나, 태풍을 만들거나 하면서 지금의 몸 상태에 맞게 마음을 다스리는 것, 이것이 명상의 핵심 아닐까?

"형은 명상을 많이 하잖아요. 그럼 지금 불안한 게 없겠네요?"

"불안한 건 항상 있지. 그런데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 예전보다 훨씬 편안해."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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