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1100m 고지에 등장한 '요강'…관광객들의 '탄식'

오현지 기자 2023. 1. 27.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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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고지 습지 화장실 '관로 동파' 겨울마다 반복
노출 관로 탓…1700m 윗세오름 화장실 멀쩡 '대조'
제주 한라산 1100고지 습지 화장실 앞에 붙은 동파로 인한 사용금지 팻말. 2023.1.27/뉴스1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화장실을 못 쓰니 근무 중에는 물 한 모금 마시기도 꺼려지죠."

폭설 후 제주 산간도로 통제가 모두 해제된 지난 25일 오후 한라산 1100고지 습지.

통제가 풀리자마자 물밀듯이 몰려드는 차량을 정리하고 있던 교통경찰 옆 화장실에는 '동파로 인해 사용불가'라는 팻말이 붙은 통제선이 쳐져 있었다. '어리목 또는 영실 등산로 화장실을 이용해달라'는 문구도 함께였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에 1100고지 화장실 관로가 얼어붙은 탓이다. 문제는 1100고지 습지에 화장실은 단 한 곳, 이곳에서 어리목이나 영실 등산로까지는 차가 막히지 않는다고 해도 1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다.

현장에서 만난 경찰 관계자는 "교대자가 없을 경우에는 낮 12시부터 사람들이 다 내려갈 때까지 근무하는데 물 한 모금 안 마실 때가 허다하다"며 "차가 이렇게나 많은데 다른 화장실까지 다녀오기가 사실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관도 경찰관이지만 관광객들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화장실 못 쓰냐고 묻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동파로 사용이 불가한 제주 한라산 1100고지 습지 화장실. 2023.1.25/뉴스1

휴게소 역할을 하는 1100고지 습지 전시관에도 따로 화장실이 없어 전시관 직원들은 동파 때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요강을 사용하는 상황이다.

1100고지 화장실 수도관 동파는 겨울마다 반복되고 있다. 올해도 벌써 한달째 사용 불가 상태다. 한라산국립공원 측은 기온이 서서히 오르는 3월이 지나야 화장실이 제 기능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곤혹스럽기는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습지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한라산 자락에 눈부신 은빛 설경이 끝없이 펼쳐졌지만, 여기저기서 탄성보다 탄식이 먼저 터져 나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장실 입구에 쳐진 통제선을 넘어 종아리 높이까지 쌓인 눈을 뚫고 간 관광객들은 굳게 잠긴 문 앞에서 울상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 관광객은 “차가 이렇게 밀리는데 어리목이나 영실까지 어느 세월에 가냐”며 발만 동동 굴렀다.

공용화장실 옆으로 간이 화장실 4칸이 마련돼 있었지만 역시나 굳게 닫혀있어 무용지물이었다.

◇ 해발 1950m 한라산 화장실 겨울에도 멀쩡한 이유

지난 25일 오후 한 관광객이 사용이 금지된 110고지 습지 화장실 앞에 쳐진 통제선을 넘고 있다. 2023.1.25/뉴스1

해발 1700m 윗세오름에 있는 화장실은 멀쩡한데 이보다 낮은 해발 1100m에 있는 이곳 화장실만 매번 얼어붙는 이유는 뭘까. 바로 화장실 용수가 흐르는 관로 일부가 땅속이 아닌 외부에 노출돼 있어서다.

1100고지 습지 화장실은 영실수원지에서 관로를 통해 물을 끌어와 화장실 용수로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용수관로는 동파 방지 등을 위해 땅속에 80㎝ 이상 깊게 묻어 시공하지만, 한라산의 경우 보전지역인 탓에 터파기 작업이 어려워 수㎞에 달하는 1100고지 화장실 관로 일부가 땅 위에 노출돼 있다.

한라산국립공원 직원들이 겨울마다 노출 관로에 테이프를 두르고, 스펀지 부착 작업을 반복하지만 강추위 앞에 역부족이다. 동파 방지를 위해 물을 가늘게 흘려보내도 족족 얼어붙는다.

국립공원 관계자는 “중간중간 조릿대 구간 등이 있어 땅을 파 관로를 묻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수도관이 얼지 않도록 여러 가지 수를 쓰고 있지만 매해 겨울마다 두세 달 가까이 동파로 화장실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라산국립공원 화장실.(제주도 제공)

어리목 화장실은 해발 1200m에 있는 어승생저수지의 유일한 수원인 한라산 와이(Y) 계곡에서 물을 끌어온다. 또 당초 관로가 땅속에 묻혀있어 한파나 폭설에도 동파 우려가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해발 1000m 이상 한라산 탐방로에 있는 화장실들은 수원지에서 관로로 물을 끌어오는 방식이 아닌 '무방류 순환' 수세식으로 운영돼 동파 위험이 적다. 무방류 순환 수세식은 화장실에서 발생하는 오수를 자체 오수처리시설에서 정화해 화장실 세척수로 재이용하는 방법이다.

국립공원 관계자는 “1100고지에 간이화장실을 마련해두긴 했지만, 용량이 워낙 부족해 화장실 동파 상황에서 열어두면 금방 못 쓰게 돼 폐쇄한 상태”라며 “간이화장실을 수시로 관리하는 것 외에는 동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아직 없다"고 설명했다.

oho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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