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아메리카 대륙에 어떻게 전파됐을까 [경기장의 안과 밖]

최민규 입력 2023. 1. 27. 07:07 수정 2023. 3. 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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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의 안과 밖] 오는 3월 WBC가 열린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북중미 8개국, 남미 2개국이 참가한다. 이 지역에서 야구의 전파 과정은 ‘미국의 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는 3월8일 타이완 타이중의 인터콘티넨탈 구장에서는 네덜란드와 쿠바 국가대표 야구팀 경기가 열린다. 제5회를 맞는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이다. WBC는 미국 메이저리그가 ‘야구의 세계화’를 위해 2006년 창설한 대회다.

최초의 야구 규칙은 1845년 제정됐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축구 규칙을 제정한 해가 1863년이니 야구가 축구보다 18년 먼저 태어난 셈이다. 하지만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야구는 후발주자 축구에 한참 뒤진다. 한 추산에 따르면 전 세계 축구팬은 35억명 규모다. 야구는 그 7분의 1인 5억명이다.

세계화 수준에서 야구와 축구의 차이는 곧 종주국인 영국과 미국의 차이다. 축구가 탄생한 시점에 영국은 식민제국이었다. 영국 문화의 전파 역시 광범위했다. 반면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연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다. 미국은 1823년 먼로 독트린 이후 유럽에 대해서는 간섭을 거부하는 고립주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해서는 제국주의적 태도를 취해왔다.

올해 WBC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멕시코·쿠바·도미니카공화국·푸에르토리코·파나마·니카라과 등 북중미 8개국, 콜롬비아·베네수엘라 등 남미 2개국이 참가한다. 이 지역에서 야구의 전파 과정은 미국의 대외관계를 떼놓고 볼 수 없다. 야구가 ‘평화롭게’ 전파된 나라는 영국 식민지 경험을 공유한 북쪽 이웃 캐나다 정도다.

멕시코는 전체 참가 20개국 가운데 야구가 가장 먼저 전파된 나라로 꼽을 수 있다. 야구는 전쟁과 함께 멕시코에 왔다. 야구가 탄생한 1845년, 미국은 멕시코 영토였던 텍사스를 자국 연방에 병합한다. 이듬해 4월 미국-멕시코 전쟁이 발발한다. 미군은 스웨덴 팝그룹 아바(ABBA)의 노래 가사처럼 “리오그란데강을 건너(crossed the Rio Grande)” 멕시코의 “페르난도(Fernando)”들을 공격했다. 3년을 끈 미국-멕시코 전쟁이다. 당시 진주한 미국 군인들이 야구를 퍼뜨린 게 멕시코 야구의 가장 오래된 기원이다.

쿠바는 플로리다반도 바로 아래에 있는 섬나라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1864년 미국에서 유학한 네메시오 기요트가 야구를 소개했다. 쿠바는 지도로만 봐도 미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다. 미국은 1859년 스페인에 쿠바 매입을 제안했을 정도로 관심을 기울였다. 쿠바 사람들은 1868~1878년 스페인과 1차 독립전쟁(10년 전쟁)을 벌여 자치권을 획득한다. 전쟁이 끝난 해 쿠바에는 미국 외 지역으로는 처음으로 프로야구 리그가 생겼다. 전쟁을 피해 옆 히스파니올라섬으로 이주한 쿠바인들이 섬 동부의 도미니카공화국에 야구를 전파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지난해 메이저리거 171명을 배출했다. 미국을 제외하곤 가장 많다.

반미 감정 강한 쿠바에서도 최고의 스포츠

10년 전쟁 20년 뒤인 1898년에 미국-스페인 전쟁(미서전쟁)이 일어난다. 그해 2월 쿠바 아바나항에 정박한 미국 해군 메인함이 의문의 폭발로 침몰했다. 이 사건 직후 미국은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한다. 그 이전부터 미국은 스페인 축출을 위해 쿠바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미서전쟁은 히스파니올라 오른쪽에 위치한 섬 푸에르토리코에 야구가 전파된 시기와 가깝다. 쿠바 이주민들이 현지인들과 함께 구단을 만들고 협회를 조직했다. 푸에르토리코는 2013년, 2017년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미서전쟁 승전으로 미국은 스페인으로부터 카리브해의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아시아의 필리핀과 괌을 획득한다. 쿠바는 미군정을 거쳐 독립하지만 푸에르토리코는 지금까지 미국령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필리핀과 괌에서 야구는 쇠퇴했다. 하지만 필리핀은 1954년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주최국이자 우승국이었다. 20~30년 전까지 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야구였다.

세 번째로 WBC에 참가하는 파나마에서 최초의 야구 경기는 1883년에 열렸다. 하지만 그 이전인 1850년대 미국 철도 노동자들이 야구를 전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지협에 위치한 파나마는 미국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미서전쟁 이후 태평양의 필리핀과 괌을 지배한 미국은 운하 건설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당시 파나마는 콜롬비아연방을 구성하는 한 주였다. 콜롬비아 의회가 운하 건설 비준을 연기하자 미국은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했다. 그 결과 1903년 파나마는 콜롬비아에서 독립한다. 미국은 1914년 완공된 파나마운하를 1999년까지 소유했다.

대회 첫 출전인 니카라과는 파나마와는 코스타리카를 사이에 두고 있는 나라다. 야구는 1880년대 미국 사업가 앨버트 애들스버그에 의해 소개됐다. 1891년에 최초의 야구 경기가 열렸다. 미국은 파나마와 같은 이유로 니카라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니카라과는 19세기부터 파나마와 함께 유력한 운하 건설지로 꼽혔다. 하지만 1902년 마르티니크 화산 폭발로 계획이 좌초됐다.

남미의 콜롬비아는 이번 WBC가 두 번째 출전이다. 미서전쟁을 전후해 미국이 중앙아메리카와 카리브해에 영향력을 강화하는 시기에 야구가 도입됐다. 지금 콜롬비아에서 야구가 성행하는 지역이 카리브해 연안이라는 점은 이 나라에서 야구가 도입된 과정과 이유를 잘 보여준다. 베네수엘라는 ‘축구의 대륙’ 남미에서 드물게 야구가 성행하는 국가다. 지난해 도미니카공화국 다음으로 많은 메이저리거를 배출한 나라가 베네수엘라(106명)였다. 베네수엘라도 콜롬비아와 마찬가지로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나라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야구의 전파와 확산은 20세기 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산업적으로도 그렇다. 멕시코는 이 지역에서 가장 잘 조직된 프로야구 리그를 운영한다. 하지만 여름에 열리는 멕시칸리그는 2021년까지 트리플A 수준 마이너리그에 편제돼 있었다. 선수 급여는 월 1만2000달러가 상한선이다. 멕시코와 도미니카공화국,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리코에서는 메이저리그가 중단되는 겨울에 윈터리그가 열린다. 윈터리그는 이들 지역에서 운영되는 베이스볼아카데미와 함께 메이저리그 선수 공급처 구실을 한다.

제인 라우시 매사추세츠 애머스트 대학 역사학과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 “미국은 미서전쟁 이후 신생 파나마공화국과 쿠바공화국을 간접 지배(quasi-control)했고, 도미니카공화국, 니카라과, 베네수엘라의 독재정권을 지원했다. 그 결과 이 지역에서 미국이 의도치 않았던 민족주의가 고양됐다”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지역의 많은 이에게 야구는 삶의 일부분이다. 가장 반미 감정이 강한 국가인 쿠바에서 최고의 스포츠가 야구라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2016년 사망한 피델 카스트로는 생전 WBC 대회가 열리면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에 야구 관련 기고를 하기도 했다. 뮤지컬 영화 〈인더하이츠〉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뉴욕으로 온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메이저리그가 아닌 자국 리그 야구를 보며 “돌아가고 싶다”라고 말하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라우시 교수는 “반미 감정이 높아지면서도 미국 문화를 수용하는 모순적 현상이 나타났다”라고 기술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야구가 인기 스포츠가 된 한국에서도 나타났던 현상이다. 식민지 시대 야구는 지배자들의 스포츠이자, 지향해야 할 근대의 한 상징이었다. 1950년대 슈퍼스타 야구선수 장태영은 일제강점기인 1944년 경남중에 입학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일본 또는 일제에 대한 반발과 동경이라는 이율배반, 그 틈서리에서 나는 앓아야 했고 그럴수록 야구와 일본 문학에 빠져 들었다”라고 썼다.

최민규 (한국야구학회 이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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