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주유소가 사라졌다

조성순 수필가 2023. 1. 2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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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대전 서구와 유성구를 연결하는 도솔터널이 개통되면서 집 앞 사거리는 늘 주차장 같다.

부천 언니네 가기로 한 날, 집 앞은 잠시 주차도 어려워 근처에 있는 주유소에서 동생과 만나기로 했다.

철 들기 전에는 한번 정해진 것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줄 알았다.

평생 일을 해도 집 한 채 사기 힘들다는 현실을 모르던 순진무구하던 날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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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순 수필가

몇 해 전 대전 서구와 유성구를 연결하는 도솔터널이 개통되면서 집 앞 사거리는 늘 주차장 같다. 부천 언니네 가기로 한 날, 집 앞은 잠시 주차도 어려워 근처에 있는 주유소에서 동생과 만나기로 했다. 칼바람이 부는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 대형교회 입구에 있는 주유소까지 갔다. 어라, 감쪽같이 사라진 주유소.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런 흔적이 없다. 말끔하게 정리된 공간에 승용차 몇 대 세워져 있다. 얼마 전에도 본 것 같은데 좀 당황스럽다.

하긴 20년째 사는 동네에서 사라진 것이 주유소만은 아니다. 주거래하던 은행이 사거리에서 없어지더니 급기야 전국에서 사라졌다. 일층에 가족사진이 걸린 오래된 사진관 건물이 지난해 사라지고 5층짜리 주상복합이 들어섰다. 어디 눈에 보이는 건물뿐이랴. 사람도, 풍속도, 눈앞에서 기억에서 사라져 간다.

철 들기 전에는 한번 정해진 것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줄 알았다. 일년 내내 벽에 붙어 있던 한 장짜리 달력에 동그란 얼굴을 기억한다. 대통령은 000, 국회의원 000는 불변의 대명사였다. 마치 구구단처럼.

지금은 사라진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면서 바가지 들고 시장에 가서 콩나물 사오고, 석유곤로에 쓸 석유를 사러 가면 우물 같은 드럼통에서 손잡이가 달린 됫박으로 퍼 주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은 그냥 우리 집, 사고팔기도 한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평생 일을 해도 집 한 채 사기 힘들다는 현실을 모르던 순진무구하던 날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있는가.

사라지는 건 그나마 잊히지만 달라지는 것에 적응하기는 참 어렵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소통되는 세상에서, 어떤 사이트는 통합이란 과정에서 사용자들만 혼란을 겪어야 했다. 손바닥에 들어오는 휴대전화 속에는 또 얼마나 많은 미로가 있는지, 차라리 출발하지 않는 편이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이란 생각을 한다.

설 명절이 지났다. 색동옷 입고 연 날리던 추억은 민속촌에 박제돼 있고 외국여행을 갔거나 지리산을 찾는 지인들 이야기를 듣는다.

1월 1일은 사무적이고 이성적으로 다가오는데, 설날은 가슴으로 온다. 감성적이거나 감정적이다. 아직도 고유한 명절 풍속을 고수하는 집안에서는 명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많은 주부가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풍속도 달라지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댁'에서 명절을 치러내는 이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이 탓일 거다. 오지랖이지만 그 며느리들에게 위로와 감사를 전하고 싶다. 아파트 입구에서 할아버지 손잡고 아장아장 장난감 가게에 다녀오는 손자를 보는 것이 소소한 설날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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