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명에 2명 뿐…‘엄마 성’은 언제까지 ‘예외’여야 할까? [뉴스AS]

이주빈 2023. 1. 2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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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엄마의 성·본 쓰기’ 성본변경청구 허가 결정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성평등한 세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가정이기를 바란다.” (자녀에게 엄마 성을 물려준 김수민 전 아나운서)

호주제가 폐지된 지 1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엄마 성’은 특별한 일이다. 민법에서 아빠 성은 기본, 엄마 성은 예외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민법 781조1항에는 ‘자녀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돼 있다. 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고 싶으면 ‘부모가 혼인신고를 할 때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해야 한다. 혼인신고서를 제출할 때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조항에 ‘예’라고 표시하고 별도의 협의서를 제출하는 방식이다. 엄마 성을 따르는 것은 아빠 성을 따르는 것보다 절차가 번거로운데다, 혼인신고서를 꼼꼼히 보지 않는다면 놓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 탓에 엄마 성을 택하는 부부는 극히 적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녀의 모성 신청 건수’를 보면, 257건(2018년)→380건(2019년)→448건(2020년)→610건(2021년)으로 증가 추세였다가 지난해에는 594건으로 소폭 감소했다. 하지만 전체 혼인 건수에 비하면 약 0.2%에 불과해 증감을 따지기도 미미한 수치다. 현재는 혼인신고 때 ‘엄마 성 물려주기’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아이의 성을 바꾸기 쉽지 않다. 이혼한 뒤 다시 혼인신고를 하면서 해당 조항에 동의하거나, 법원에 성·본 변경 허가를 청구하는 두 가지 방법뿐이다.

‘부성 우선주의’ 원칙은 사실혼·한부모·비혈연 등 다양한 가족의 존재를 ‘비정상화’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에서 태어난 아동에게도 차별적이라는 지적이 여러차례 나왔다. 국내외에서도 여러 차례 부성 우선주의를 폐기하라는 권고가 이어졌다.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2020년 5월 “가족생활 내 평등한 혼인관계를 구현하고 가족의 자율적 합의를 존중할 수 있도록” 부성 우선주의 폐지를 권고했다. 2018년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부계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부성 우선주의’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여성가족부는 2020년 4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년)을 발표하며 “(법무부와 협의해 자녀 성에 대해) 자녀의 출생신고시 부모가 협의해 부 또는 모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전환하겠다”고 밝혔으나, 법무부가 1년 만에 부성 우선주의 폐기 방침을 사실상 중단해 계획은 백지화됐다. 법무부는 지난 18일 양이원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가족의 성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후 결정할 중차대한 문제이므로 신중하게 추진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관련 법 개정도 더디다. 2020년 8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부성 우선주의를 폐기하는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세 차례나 발의됐지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정부의 우려와 달리 ‘엄마 성 물려주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있다. 여가부가 2021년 7월 발표한 ‘다양한 가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72%가 ‘자녀 출생신고 시 부모가 협의해 자녀의 성과 본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 속에 시민들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설아(29)·장동현(32)씨 부부는 2021년 3월 ‘부성 우선주의 원칙이 헌법상 혼인·가족생활 기본권과 인격권,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해당 심판을 기각해 달라며 위헌이 아니라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이설아씨는 26일 <한겨레>에 “개정안이 제대로 처리됐다면 헌법 소원을 낼 일도 없을 것이다.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에서 제대로 심사조차 된 적 없다. 국회에서도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대 여론이 있다면 의원들이 나서서 설득해야 하는 문제인데, 설득 대신 포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된다. 국회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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