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의 왕이 된 남자’ 1만 득점 향했던 라건아의 여정

최창환 2023. 1. 2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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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창환 기자] KBL 역대 최다 리바운드 기록을 세웠던 라건아(34, 199.2cm)가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기록을 달성했다. 역대 5호 1만 득점. 외국선수 신분을 감안하면 더 세우기 어려운 금자탑이다. KBL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라건아의 여정이 항상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2옵션으로 밀리며 자존심을 구겼던 적이 있었지만, 절치부심하며 마침내 KBL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 특별귀화 전 이름은 리카르도 라틀리프였지만, 혼동을 피하기 위해 라건아로 통일했음을 알립니다.

PIT에서 찾은 또 하나의 원석

현대모비스는 한때 대학을 갓 졸업한 외국선수를 선호해왔다. 프로 첫 시즌을 해외에서 보내는 것에 대한 위험부담도 따랐지만, 상대적으로 연봉이 적어 리그 적응만 마친다면 2, 3년 후까지 함께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브라이언 던스톤이었다. 현대모비스는 미국의 유망주들이 초청받아 출전하는 포츠머스 인비테이셔널 토너먼트(이하 PIT)를 통해 대학을 갓 졸업한 던스톤의 잠재력을 확인했고, 2008년 외국선수 드래프트에서 실질적 2순위로 던스톤을 지명했다. 현대모비스는 던스톤과 함께한 2시즌 모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2009-2010시즌에는 함지훈 입단 후 첫 통합우승도 달성했다. 로렌스 엑페리건, 말콤 토마스와 같이 결과가 좋지 않았던 사례도 있었지만, 대학을 갓 졸업한 유망주는 분명 긁어볼 만한 복권이었다.

이번 글에서 소개할 라건아 역시 현대모비스가 PIT에서 찾아낸 원석이었다. 미주리대 출신 라건아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기동력, 파워를 겸비한 빅맨으로 주목받았다. 4학년 시절 평균 13.9점 7.5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야투율은 무려 69.3%에 달했다. 이는 전미 1위에 해당하는 야투율이었다. 라건아는 PIT에서도 평균 12.7점 9.7리바운드로 활약, 베스트5에 선정됐다. 당시 현대모비스 사무국이었던 이도현 대한양궁협회 사무처장은 “검증된 선수는 너무 비쌌다. 그래서 2, 3년 후까지 내다볼 수 있는 선수를 찾았고, 그 산실이 포츠머스였다. PIT에 초청됐다는 자체가 1차적으로 검증된 유망주라는 의미다. 라건아 역시 힘이 좋고 빠르며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던 선수였다. 졸업반 시절 야투율도 60%가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득점루트가 골밑, 속공 위주였지만 슛 셀렉션도 나쁜 건 아니었다. 모험이긴 했지만, 좋은 대학도 나왔기 때문에 괜찮을 것 같다는 기대가 더 컸다”라고 돌아봤다. NBA를 노리기엔 언더사이즈 빅맨이라는 한계가 분명했지만, KBL에서는 충분히 롱런할 수 있을 거란 평가도 뒤따랐다. 라건아는 “NBA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에 선발될 수도 있었는데 뽑히지 않았다. NCAA 첫 경기에서 지는 바람에 2라운드에 선발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G리그를 권유한 분들도 많았지만 금전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전트를 통해 여러 외국리그를 추천받았고, KBL도 언급됐다. 그래서 KBL을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는 PIT를 찾았을 당시 211cm 장신 빅맨 개럿 스터츠도 리스트에 올려뒀지만, 맞대결에서 스터츠를 압도하는 라건아를 보며 결심을 굳혔다. PIT를 통해 라건아의 잠재력을 확인한 현대모비스는 2012년 외국선수 드래프트 전체 6순위로 그를 지명했다. 스터츠 역시 10순위로 안양 KGC에 지명됐지만, 2012-2013시즌 개막 전 퇴출됐다.

천하의 라건아도 퇴출 후보였다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KBL 데뷔 초기 라건아의 경쟁력은 기대치를 밑돌았다. 기동력과 파워는 예상대로 위력적이었지만, 1대1 능력이 떨어져 1옵션이라는 걸 감안하면 무게감이 떨어졌다. 프로 데뷔 시즌이다 보니 노련미도 두드러지는 약점으로 꼽혔다. 현대모비스는 라건아에게서 떨어지는 노련미를 크리스 버지스, 아말 맥카스킬로 메우려 했지만 이들 역시 이미 경쟁력이 떨어진 경력자들이었다. 유재학 당시 현대모비스 감독은 남은 외국선수 교체 카드 한 장을 두고 맥카스킬, 라건아 모두 퇴출 후보로 올려두기도 했다. 공식적인 코멘트는 “맥카스킬이 신장의 이점이 있고 기술과 수비가 괜찮다. 하지만 느리고 적극성이 떨어진다. 라건아는 파워와 스피드는 좋은데 기술이 없다”였지만, 한 번 토라지면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당시 라건아의 성격 역시 현대모비스의 고심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현대모비스는 고심 끝에 맥카스킬을 퇴출하며 커티스 위더스를 영입했지만, 이 역시 대안이 되진 못했다. 결국 현대모비스는 창원 LG와의 빅딜을 통해 로드 벤슨을 영입, 팀 전력을 개편했다. ‘제2의 던스톤’으로 기대를 모았던 라건아가 2옵션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실제 트레이드 전까지 35경기 평균 26분 25초를 소화했던 라건아는 벤슨 합류 후 19경기 평균 18분 58초를 뛰는 데에 그쳤다. 당시 통역이었던 차길호 현대모비스 매니저는 “데뷔 첫 시즌이다 보니 잘하고 싶은 의욕이 많았지만, 생각처럼 안돼 속상했을 것이다. 한 번도 직접적으로 불만을 얘기한 적은 없었지만, 교체됐을 때 위로해주려 해도 그의 반응은 항상 ‘Go Away’였다”라고 돌아봤다.

자존심이 상했던 건 한순간이었다. 라건아는 현대모비스가 디펜딩 챔피언 신분으로 맞이한 2013-2014시즌부터 동료이자 선의의 경쟁자인 벤슨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며 내면을 살찌웠다. 출전시간은 더욱 줄었지만 팀에서 강조하는 2대2 수비력을 키웠고, 점차 중거리슛을 시도하는 빈도도 늘렸다. “벤슨은 2대2 수비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 데에 능했다. 골밑에서의 기술도 나보다 좋았다. 왜 벤슨의 출전시간이 더 많았는지 알게 됐다. 그는 KBL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외국선수였고, 그걸 깨달은 후 자존심을 버렸다. 출전시간에 욕심부리는 것보다는 팀이 원하는 역할을 확실하게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라건아의 회고다. 실제 2년 차 시즌에서 라건아의 평균 출전시간은 KBL 데뷔 후 가장 적은 평균 17분 24초였지만, 선발 출전한 경기(34경기)가 교체 출전한 경기(20경기)보다 훨씬 많았다. 1옵션은 벤슨이었지만, 현대모비스는 아직 라건아가 지닌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의미였다.

폭풍성장기
라건아가 KBL에서의 3번째 시즌을 앞둔 2014년 9월. 현대모비스는 큰 변화를 맞았다. 트레이드로 합류한 이후 줄곧 1옵션으로 활약해왔던 벤슨이 코칭스태프의 지시를 어기고, 동료들을 무시하는 등 훈련에 불성실한 자세로 임한 것. 유재학 감독이 2014 인천아시안게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잠시 팀 일정에서 제외된 기간 동안 있었던 일들이다. 벤슨은 급기야 코칭스태프의 지시에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며 공을 걷어찼고, 현대모비스는 유재학 감독에게 사태를 보고한 이후 벤슨의 퇴출을 결정했다. 시즌 개막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현대모비스는 믿을 구석이 있었다. 2시즌 동안 경험치를 꾸준히 쌓은 라건아의 성장이었다. 현대모비스는 오프시즌에 열린 대만 윌리엄존스컵에 출전했는데, 당시 현대모비스는 유재학 감독과양동근이 대표팀에 차출된 터였다. 또한 함지훈과 이대성은 부상으로 국내에 머물렀고, 벤슨은 별도의 출전 수당을 요구하며 윌리엄존스컵 참가를 거부했다(벤슨이 훈련에 불성실한 자세로 임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결국 돈이었다). 현대모비스는 전지훈련에 의미를 두고 윌리엄존스컵에 출전했지만, 한국남자팀으로는 1999년 이후 15년 만의 우승을 달성했다. 라건아의 잠재력이 마침내 폭발했다. 라건아는 윌리엄존스컵에서 8경기 평균 34분 28초를 소화하며 24.3점 15.7리바운드 1.9블록슛으로 활약, 대회 MVP와 베스트5에 선정됐다. 대학 시절부터 장점으로 꼽혔던 기동력과 파워에 준수한 중거리슛 능력이 더해진 덕분이었다. 라건아는 이와 같은 성장세를 토대로 2014-2015시즌부터 1옵션 자리를 꿰찼고, 현대모비스를 KBL 역사상 첫 챔피언결정전 3연패로 이끌었다. 라건아는 ‘외국선수는 한 팀에서 3년 이상 계약이 불가하다’라는 당시 규정으로 인해 2014-2015시즌 종료 후 다시 외국선수 드래프트에 나섰고,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손에 넣은 서울 삼성의 선택을 받았다. 팀내 비중이 크게 늘어난 만큼, 득점을 쌓는 페이스도 이때를 기점으로 가속도가 붙었다. 라건아는 통산 2000점을 올리기까지 142경기가 필요했지만, 3000점과 4000점까지는 각각 47경기 만에 달성했다. 좀처럼 암흑기를 벗어나지 못했던 삼성 역시 라건아와 함께 한 첫 2시즌 동안 6강, 챔피언결정전에 오르며 잠시나마 봄 축제를 즐겼다. 물론, 2017-2018시즌에는 라건아를 보유하고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최초의 팀이라는 흑역사를 남겼지만….

라건아의 KBL 정복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변함없는 골밑경쟁력을 보여준 라건아는 삼성에서 뛰는 동안 신분에 큰 변화가 생겼다. 2018년 특별귀화 제도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2011년 문태종과 문태영, 2013년 김한별에 이은 4번째 특별귀화 사례였다. KBL 내에서는 외국선수로 분류되는 만큼, 라건아는 2017-2018시즌 종료 후 특별귀화선수 드래프트 제도를 통해 새로운 팀을 찾았다. KBL이 정한 기간 동안 참가신청서를 제출한 팀들만 대상으로 드래프트를 진행, 추첨을 통해 행선지가 결정되는 방식이었다. 2018-2019시즌 48만 달러, 2019-2020시즌 50만 4000달러, 2020-2021시즌 51만 6000달러 등 3시즌 연봉도 미리 책정이 됐다. 에이전트 수수료, 세금 등을 감안하면 한 시즌 동안 약 10억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부담도 따랐으나 친정팀 현대모비스, KCC, SK 등 3개 팀이 라건아 영입 의사를 밝혔다. 추첨 결과는 드라마틱하게도 KBL과 인연을 맺게 해준 현대모비스행이었다. “(라)건아와 다시 만나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사실 ‘예전과 똑같을까?’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결혼 후 아이도 생겨서인지 굉장히 성숙한 선수가 되어 돌아왔다.” 차길호 매니저의 회고다. 라건아가 돌아온 2018-2019시즌, 현대모비스는 일명 ‘모벤져스’라 불렸다. 기존의 양동근, 함지훈, 이대성, 이종현에 문태종, 라건아, 오용준까지 더해져 호화전력을 구성, 일찌감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기대대로 현대모비스는 개막 5연승으로 시즌을 시작했고, 특히 개막 3경기에서는 모두 100점 이상 득실점 마진 29점 이상의 압도적인 전력을 발휘했다. 결국 현대모비스는 개막 후 줄곧 1위를 지킨 끝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은 물론,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를 꺾으며 통산 7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이 시즌에 라건아가 기록한 평균 24.7점은 그의 커리어하이로남아있다. 라건아는 이후 잠시 부침을 겪었다. 2019-2020시즌 도중 빅딜을 통해 이대성과 함께 KCC로 이적했고, 2020-2021시즌에는 타일러 데이비스에 1옵션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KBL 데뷔 초기 겪었던 위기를 잘 극복했듯, 결국 KCC가 다시 찾은 1옵션은 라건아였다. 2020-2021시즌 종료 후 다시 특별귀화 드래프트를 통해 새로운 팀을 찾아야 하는 신분이 됐지만, KCC는 한 번 더 라건아를 택했다. 그리고 2022년 12월 29일, KCC의 제2 연고지인 군산월명체육관에서 대망의 1만 득점을 달성했다. 역대 5호이자 외국선수로는 애런 헤인즈에 이어 2번째 사례였다. 예년에 비해 경쟁력이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라건아는 여전히 속공 가담이 가능한 빅맨으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점진적으로 슛 거리를 늘려 장착한 3점슛은 국가대표팀에서도 쏠쏠한 옵션으로 활용됐다. 부상과 같은 특별한 변수만 아니라면, 라건아는 2022-2023시즌 막바지에 김주성을 제치고 통산 득점 3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KCC와의 계약 마지막 시즌인 다음 시즌에는 헤인즈를 넘어 외국선수 역대 최다득점을 달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생’에서 ‘완생’으로 거듭난 라건아의 KBL 정복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라건아가 돌아본 1만 득점 여정 “다른 리그 진출도 고민했지만…”


1만 득점을 달성한 소감
굉장한 성과이자 명예라고 생각한다. 리그에서 오래 뛰면 뒤따라오는 기록이다. 다만, 나는 무엇보다 우승을 원한다.

리그에서 오래 뛰는 게 어려운 일이다. 롱런하고 있는 비결은?
외국선수 시점에서 얘기하자면 문화 적응이 첫 번째 관건이다. KBL은 다른 리그와 비교해 스타일이 다르다. 리바운드, 수비, 국내선수들에게 스크린을 걸어주는 케미스트리가 중요한 것 같다.

KBL에 처음 올 때 이만한 족적을 남길 거라 예상했는지?
KBL에 올 때부터 오랜 기간 동안 있을 거란 예상은 했다. 타 팀에 있을 때도 재계약을 잘해왔기 때문에 KBL에 정착할 수 있었다. 한국문화나 생활도 편안했기 때문에 KBL에서 오랫동안 뛰고 싶었다.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다른 외국선수들은 다른 리그를 오가며 커리어를 쌓지만 나는 한 리그에서 장수하는 게 개인적인 목표였다.

대학 졸업 후 첫 프로리그로 KBL을 택했던 배경은?
NBA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에 선발될 수도 있었는데 뽑히지 않았다. 내가 뛰었던 대학(미주리대)이 NCAA 첫 경기에서 지는 바람에 2라운드에 선발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G리그를 권유한 분들도 많았지만 금전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전트를 통해 여러 외국리그를 추천받았고, KBL도 언급됐다. 그래서 KBL을 선택했다. KBL에 있는 동안 다른 리그 진출도 고민했지만, 한국문화가 나와 잘 맞아떨어져서 이렇게 장수할 수 있었다.

홈 팬들 앞에서 기록을 달성해 더 의미가 큰 것 같다.
항상 홈 팬들이 많은 동기부여와 성원을 보내준다. 홈 팬들 앞에서 달성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1만 득점을 달성한 5번째 선수로 알고 있다. 홈에서 축하받을 수 있어서 굉장히 기분 좋았다.
 
#사진_점프볼DB,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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