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늘도 벌써 떨어졌네” 美 마트 계란 코너마다 한숨
값 작년의 3배 ‘에그플레이션’
계란 뺀 요리법 유행, 밀수까지
지난 25일 오전(현지 시각) 미국 뉴욕의 한 대형 식료품점. 계란 코너로 헐레벌떡 달려온 40대 남성이 텅 빈 매대를 보고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오늘도 못 샀네.” 바로 앞서 뛰어온 여성이 상기된 얼굴로 카트에 담아간 계란 두 판이 이날의 마지막 계란이었다. 40대 남성은 기자에게 “여긴 계란 24개가 7.59달러(약 9340원)로 주변에서 제일 싸다. 다른 데선 12개에 5달러(약 6150원)가 넘는다”며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와야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계란 값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한 해 전 1.79달러 정도였던 계란 12개의 전국 평균 가격은 현재 4.25달러로 137% 올랐다. 캘리포니아주 등 일부 지역에선 7~8달러까지 치솟았다. 실제로 미 고용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지난해 12월 소비자 물가상승률(CPI)은 전년 대비 6.5%로 둔화됐지만, 필수 식료품인 계란은 급등하며 다른 식품은 물론 내구재·주거비 등 모든 항목을 제치고 상승률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재료비가 오르면서 뉴욕 식당에서 지난 가을 6~7달러 하던 오믈렛 가격은 요즘 20~30달러까지 뛰었다. ‘엑스펜시브(eggspensive·계란+비싸다)’ ‘에그플레이션(eggflation계란+인플레이션)’이란 신조어도 유행하고 있다.
미국 계란값 폭등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세계를 휩쓴 조류 인플루엔자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에서만 조류 인플루엔자로 닭이 5000만마리 이상 폐사했다. 더욱이 이상기후와 우크라이나전에 따른 비료 값 폭등으로 중서부 ‘옥수수 벨트’ 작황이 악화돼 닭 사료 가격이 크게 올랐다. 동물 복지 차원에서 닭을 풀어 기르도록 규제가 확대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일부 양계 농가와 소비자들은 “계란 도매가(3달러)에 비해 소매가가 지나치게 높다”며 유통 업계의 가격 담합 의혹을 제기, 감독기관인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조사에 착수했다.
계란 값이 고공 행진하며 “부활절에 계란 대신 감자에 색칠해야 할 판” “계란판 들고 청혼하려 한다”는 ‘웃픈’ 농담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등 주요 매체와 유명 요리사들은 빵이나 케이크를 구울 때 계란 대신 우유나 두유, 아마씨 등을 이용하는 새 요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CNN에 따르면 일부 국경 지역 주민이 차를 몰고 멕시코나 캐나다로 넘어가 미국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계란을 사오다 국경수비대에 적발된 사례가 최근 3개월 새 2~4배 폭증했다. 날계란을 밀수하다 적발되면 농축산물관리법 위반으로 최대 1만달러 벌금을 물어야 함에도 ‘계란 밀수’를 감행하는 것이다.
매일 먹는 계란을 안정적으로 얻기 위해 뒤뜰에서 직접 닭을 치는 가정도 늘고 있다. 중부 농촌이나 교외 지역은 물론 뉴욕 외곽에서도 닭 4~5마리를 닭장 설비와 함께 판매하거나 빌려주는 서비스가 성업 중이다. 이와 관련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작년 전국에서 1200명이 닭을 치다 살모넬라균에 감염됐고, 2명이 숨졌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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