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만 있던 고려시대 절터 첫 실체 확인

제주방송 김태인 2023. 1. 26.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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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상 '절왓' 또는 '불탄터'라고 불리던 고려 시대 '오등동 절터'의 실체가 최근 해당 부지 조사 결과 확인됐습니다.

제주 '오등동 절터'로 알려져왔던 부지의 실체가 최근 확인됐는데, 이 소탑과 기와, 자기, 화폐 등 다수의 유물들이 발견됐습니다.

김태인 기자"이번에 조사된 이곳 면적만 800여 제곱미터에 달하는데요. 그동안 문헌에 기록상으로만 전해져왔던 이 일대 고려 시대 절터의 실체와 위치가 파악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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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문헌상 '절왓' 또는 '불탄터'라고 불리던 고려 시대 '오등동 절터'의 실체가 최근 해당 부지 조사 결과 확인됐습니다.

조사지에서 나온 '금동다층소탑'은 대부분 소탑과 달리 출처지가 명확해 역사적 유물로서의 큰 가치가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김태인 기잡니다.

(리포트)
은은한 금빛이 새어 나오는 성인 손바닥 크기의 '금동다층소탑'

지붕 위 용머리와 기와 모양, 처마장식이 잘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청동소탑은 고려시대의 목조 건물양식을 알 수 있어 가치가 뛰어난 유물로 평가받고 있는데,

스님의 사리를 보관하는 데 쓰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주 '오등동 절터'로 알려져왔던 부지의 실체가 최근 확인됐는데, 이 소탑과 기와, 자기, 화폐 등 다수의 유물들이 발견됐습니다.

연구원들은 화폐 제작 시기와 '해무리굽' 자기 문양 등을 토대로 절 창건 시기를 고려 시대인 11세기 전기에서 중기 사이로 보고 있습니다.

박형열/(재)대한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
"해무리굽이 있는 (자기는) 11세기 때 사용되었던, (전남) 강진 사당리나 용운리에서 나오는 그러한 청자와 유사해서.."

그동안 구전돼왔던 이번 절터는 토지주가 지난해 창고시설을 새로 짓기 위해 조사를 의뢰하면서 확인됐습니다.

해당 부지는 문화재 유존지역으로 등록돼 있어 개발을 하려면 반드시 발굴조사를 거쳐야 했습니다.

김태인 기자
"이번에 조사된 이곳 면적만 800여 제곱미터에 달하는데요. 그동안 문헌에 기록상으로만 전해져왔던 이 일대 고려 시대 절터의 실체와 위치가 파악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건물지는 총 다섯 동.

건물지에서는 석재부뚜막식 아궁이와 기단석 등의 시설도 확인됐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지어진 3호 건물지에서 중국 북송시대 화폐 '함평원보' 등 동전 3종류와 금동다층소탑 등이 집중적으로 발견됐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유물들은 전문가 회의와 문화재청 추가 조사 등을 거쳐 문화재 지정 여부가 결정됩니다.

이영철/(재)대한문화재연구원 원장
"도 지정이라도 신속하게 지정한 다음에 국가 차원의 보호 관리 대책을 같이 논의하는 방향이 앞으로 전개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절왓', '불탄터'라는 이름만 남은 채 베일에 싸여있던 고려 시대 '오등동 절터'.

첫 실체가 확인된 가운데 '오등동 절터'의 유존지역 범위가 넓은 만큼 지속적인 추가 연구로 문화재 지정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JIBS 김태인입니다.

영상취재 고승한

JIBS 제주방송 김태인(sovivid91@jibs.co.kr) 고승한(q890620@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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