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1호 한인 이민자는 1876년에 건너간 존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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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로 이민을 간 최초의 한국인은 양털깎이 출신 '존 코리아'(1859∼1924년)라는 주장이 나왔다.
멜버른대 한국학연구허브 소장인 송지영(현지명 제이 송) 한국학 교수는 최근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에 '19세기의 양털깎이가 우리에게 한국과 호주 관계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나'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호주로 이민한 최초의 한국인은 1876년 (호주에) 도착한 존 코리아(John Corea)"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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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로 이민을 간 최초의 한국인은 양털깎이 출신 ‘존 코리아’(1859∼1924년)라는 주장이 나왔다.
멜버른대 한국학연구허브 소장인 송지영(현지명 제이 송) 한국학 교수는 최근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에 ‘19세기의 양털깎이가 우리에게 한국과 호주 관계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나’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호주로 이민한 최초의 한국인은 1876년 (호주에) 도착한 존 코리아(John Corea)”라고 밝혔다.
그는 17세 때인 1876년 중국 상하이와 호주를 오가며 차를 나르던 무역선 로치엘에 승선해 호주에 도착했다.
존 코리아는 결핵을 앓게 되면서 1917년 7월부터 1920년 10월까지 애들레이드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 기록에 존 코리아의 국적은 일본으로 나왔는데, 당시 조선은 국권을 잃고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송 교수는 이를 통해 존 코리아가 조선 출신이라는 점을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고 적었다.
존 코리아는 1924년 65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결혼을 하지 않아 자녀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장례식은 1924년 8월 6일 지역신문에 부고를 실은 지인들에 의해 치러졌다. 그의 유산은 니켈로 만든 손목시계와 전쟁채권을 포함한 425파운드가량의 저축이었다.
존 코리아는 사망 후 밀두라의 니콜스 포인트 묘지에 안장됐다. 다만 송 교수가 그의 묘지를 확인한 결과 묘비 없이 묘소만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송 교수는 “존 코리아의 이야기는 한국과 호주의 관계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일찍 시작됐음을 보여준다”면서 “지난 150여년간 크고 작은 한인 이주의 물결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상용 기자 kimi@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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