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글로벌 스탠더드’, 그리고 인권

한겨레 2023. 1. 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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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연합뉴스

[세상읽기] 황필규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올해 10월 한국은 유엔에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자유권규약’)에 따라 자유권 인권 상황에 관한 심의를 받는다. 2015년 10월에 이어 8년 만이다.

유엔 인권위원회(이하 ‘자유권위원회’)는 2015년에 정부와 시민사회 보고서 등에 입각한 심의를 통해 포괄적인 권고인 최종견해를 제시했고, 2018년 한국 정부의 중간 후속조치에 대한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2006년 10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자유권위원회 한국 심의에 처음 참여했었다. 불법도청에 관한 위원들의 질문에 대해 정부는 ‘엑스(X) 파일’이라는 대규모 불법도청사건이 있음에도 불법도청은 철저히 차단되고 있다고 답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해 차별이 있는 경우 구제조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법에 아무런 구제조치가 없음에도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정부의 뻔뻔한 거짓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정부와의 ‘건설적 대화’를 강조하는 유엔인권시스템의 한계를 절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심의 과정을 통해 국제 기준에 비추어 한국의 인권 상황이 어떠한지를 국제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점검할 수 있고 유엔인권시스템의 가능성도 접할 수 있었다. 시민사회의 역할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엔인권시스템이라는 것이 정부가 조금만 진지하게 접근하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입각한 ‘자유’,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는 것도.

2015년 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폭력을 포함한 어떤 종류의 사회적 낙인과 차별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식적인 형태로 분명하게 명시하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부는 이를 사실상 거부했고 정부의 후속조치에 대한 2018년 위원회의 평가도 ‘권고에 반하거나 이에 대한 거부를 반영한 정보나 조치’라는 것이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법적 보장,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 보장에 대한 정부의 후속조치에 대해서도 위원회는 ‘권고와 관련이 없거나 권고를 이행하지 않은 정보나 조치’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특별히 후속조치에 대한 보고를 요구하지 않았던 2015년의 다른 권고들도 현재의 인권 상황과 관련해 살펴보면 참담하다. 자유권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위원들을 선출하고 임명하는 모든 과정에서 투명하고 참여적인 절차를 보장하도록 권고했지만 현재의 절차는 투명성, 참여와는 거리가 멀다. 국외 한국 기업의 활동으로 인한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책 마련과 안전망 강화에 관한 권고가 있었지만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해진 바 없다.

모든 탈북자를 잠재적 간첩으로 간주하고 몇달씩 구금하는 국가정보원의 관행에 대한 위원회의 지적도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 상한이 없는 구금 기간, 구금시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주민과 난민 구금에 대한 요건은 오히려 좀 더 느슨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주노동자의 자유로운 사업장 이동, 성매매 목적 인신매매의 근절 등에 대한 권고는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를 필요로 하지만 정부는 오히려 이러한 권고를 거부하거나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만을 취하고 있다. 위원회는 초지일관 정부가 시민사회와 대화하고 협력할 것을 강조하지만 최근 정부 행태를 보면 시민사회와의 ‘소통’이 아닌 시민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감시 강화를 통한 ‘소탕’을 추구하는 전체주의적인 모습이 보인다.

인류 보편적인 자유, 국제인권기준으로서의 자유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부정하면서 국적 불명, 출처 불명의 ‘자유’라는 표현을 통해 권력의 전횡을 정당화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정’과 ‘상식’이라는 불분명한 개념이 사실상 민주주의에 우선하는 극단적이고 자의적인 이념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은 아닌지. 국가권력을 통제하는 기본적 인권의 보장원리인 법치주의를 법에 의한 통치, 춘추전국시대 신상필벌의 법가사상과 혼동하는 위험하고 반이성적인 접근이 횡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구시대적 반인권적 노동통제와 기업규제 완화를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우기는 억지도 권력의 힘으로 강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국이 자유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자유’ 국가인가를 묻는다. 올해 10월 유엔 심의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자유’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인권의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접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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