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병훈 칼럼] 인플레이션 하에서 대출 규제는 양날의 검

2023. 1. 2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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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1년 반 동안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함에 따라 드디어 가계대출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작년 3·4분기말 가계대출 잔액은 전분기말 대비 3000억원 감소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상 최고치였던 전분기말 잔액 1757조원에 근접한 수준이라 안심하긴 이르다. 정부가 최근 부동산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 여러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는 풀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가 최근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인플레이션하에서 대출 규제는 양날의 검과 같다. 인플레이션이 유발하는 자원 배분의 왜곡을 막는 순기능이 있는 반면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소비와 생산의 감소폭을 키우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정부가 대출 규제정책을 활용해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한국 경제에 큰 경제적 비용을 유발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화폐 즉, 돈의 단위로 표시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이다. 이것은 반대로 생각하면 화폐의 가치가 전반적인 상품과 서비스에 비해 하락함을 뜻한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화폐의 실질 가치가 하락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으로 화폐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때 화폐의 단위로 표시된 대출 원금의 실질 가치도 역시 하락하게 된다.

예를 들어 2008년 말 서울 지역 중위가격인 4억8000만원 수준의 아파트를 구매하기 위해 아파트 가격의 25%에 해당하는 1억2000만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고 하자, 이 대출 원금은 2022년 말 서울 지역 아파트 중위가격인 10억4000만원의 약 10%에 불과해 주택담보대출 원금의 실질 가치가 인플레이션으로 동기간 중 크게 하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채권자로부터 채무자에게로 실질 부를 이전시킴을 의미한다. 즉, 인플레이션이 경제 내 부의 배분을 왜곡하는 것이다.

정부가 담보인정비율(LTV) 상한을 낮추거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경제 내 가계부채 총액이 감소한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채권자와 채무자간 부의 배분 왜곡이 줄어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하지만 가계대출 규제정책은 총소비와 국내총생산의 변동성을 증가시키는 부정적인 효과를 수반하기도 한다. 경제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한다. 그러면 대출금리 역시 상승하므로 대출을 보유한 가계들은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소비를 줄여 대출을 상환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인플레이션이 조기에 종료되거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되면, 추가 대출 여력이 있는 가계들은 일시적으로 대출을 늘려서 소비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해 대출을 늘릴 방법을 차단하면 이런 가계들도 어쩔 수 없이 소비를 줄이게 된다.

이는 한국 경제의 총소비를 감소시키고, 국내총생산을 줄여서 경기 침체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필자의 논문에 따르면 LTV 상한을 80%에서 40%로 낮추었을 때, 1% 물가 상승 충격이 오면 총소비의 감소폭은 0.1%에서 0.27%로, 국내총생산의 감소폭은 0.7%에서 0.15%로 오히려 늘어난다.

특히 고물가, 고금리하에서 대출 규제로 인한 소비 감소로 가장 고통을 받는 것은 상대적으로 소득과 자산이 적은 가계들이다. 가계대출 부실화가 우려돼 저소득, 저자산 가계들에 대해 대출 규제를 전면적으로 완화해주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이들 중 청년들을 대상으로 DSR 규제를 완화해주는 것은 필요하다. 청년들은 노동시장에서 근무 경력이 짧아 현재 임금수준은 낮지만, 근무 경력이 쌓임에 따라 평균적으로 임금이 상승한다. 그러므로 미래 임금 상승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낮은 임금수준을 기준으로 DSR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청년들의 대출을 지나치게 제한한다.

가계대출 규제 강화는 장기적으로 가계부채 총액을 감소시키고, 인플레이션하에서 채권자와 채무자간 부의 배분 왜곡을 줄이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고물가, 고금리 하에서 경기 침체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이 있고, 이로 인해 가장 큰 비용을 치르는 것은 저소득, 저자산 청년들이다. 이들을 위한 정부의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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