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산행기] 6년 준비하고 오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박상범 충북 청주시 상당구 2023. 1. 2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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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5,364m에 위치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6년 전부터 친구들과 함께 히말라야 트레킹을 준비했다. 16명으로 시작했으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체력저하와 자신감 부족으로 최종 5명만 트레킹에 참가했다. 모두 학교 친구들이다. 적은 인원이라 아쉬운 감도 있지만 트레킹에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네팔의 평년 몬순 우기는 대개 9월 말에서 10월 초에 끝나는데 2022년은 10월 15일경 끝났다고 한다. 평년 우기에 맞춰 10월 초반에 트레킹을 시작한 사람들은 위험한 환경 속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심지어 사망자도 있었다고 가이드가 알려줬다.

우리는 기가 막히게도 10월 17일부터 일정을 시작했다. 평년 일기를 계산해 조금 일찍 왔더라면 빗속에서 엄청 고생했을 거다.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풍부한 수량과 강렬한 햇살은 트레킹하기에 최적의 날씨였다.

그런데 시작부터 문제가 생겼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는데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뭔가 찜찜하다. 친구 1명이 버스에 여권을 두고 내리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망연자실. 하지만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사는 수가 있다. 마침 다른 친구가 터미널에 지인이 있어 전화를 했다. 버스의 위치와 기사 연락처를 전달받았고, 버스를 추적해서 여권을 찾아왔다.

에베레스트 파노라마 뷰

카트만두 트리부반 공항은 북새통이다. 카트만두에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의 실질적인 시작점인 루클라까지 가기 위해 새벽 2시에 기상해 4시간 동안 버스로 이동했다. 램챕 만탈리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30분 정도 타고 루클라Lukla(2,840m) 텐징 힐러리 공항에 도착했다. 트레킹 첫째 날이라 3시간 정도 걷는다. 팍딩Phakding 로지(2,610m)에 도착해 여정을 푼다. 가벼운 흥분과 함께 고산증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면서 잠에 든다.

2일차에는 팍딩에서 몬조Monjo(2,835m)를 거쳐 남체 바자르Namche Bazar(3,440m)까지 이동한다. 11km 거리로 약 6시간 정도 걸린다. 체크포인트에서 입산신고 후 트레킹을 시작한다. 남체에는 시장(바자르)이 있는데 산악 장비점, 은행, 카페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그리고 강렬한 햇빛이 참 좋다. 조금 걱정되는 코스였는데 모두 무탈하게 남체 바자르의 숙소에 도착했다. 아직 고산증세는 없고 느긋하게 쉬다가 식사했다. 기온만 낮고 모든 것이 쾌적한 편이다. 노새와 포터들이 엄청 힘들어 보여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3일차는 고소적응 트레킹 일정으로 남체 바자르에서 에베레스트뷰 호텔Everest View hotel(3,880m)을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6km 거리이며 시간은 4시간 정도 소요된다. 남체 숙소에서 보이는 설산 콩데산(6,500m)이 아침 햇살에 영롱하다. 자연 앞에 인간은 너무나 작다. 에베레스트뷰 호텔에서 바라보는 에베레스트, 로체Lhotse(8,516m), 아마다블람Ama Dablam(6,856m)의 파노라마 뷰가 가히 환상적이다. 체력이나 일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왔다 간다 해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4일차는 남체 바자르에서 텡보체Tengboche(3,860m)까지 이동하는 날이다. 8km 거리이며 시간은 6~7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오늘은 산행 중에 뾰족한 모양으로 빛나는 아마다블람을 계속 보며 걸었다. 산행 도중에 만난 한 전문산악인이 아마다블람을 오른다고 한다. 3일 전 고산지역에서 고산증세가 있어서 이틀 거리를 후퇴해 쉬는 중이라고 하는데 엄청 수다스럽다. 우리 식사장소로 합류할 태세이다. 간신히 떼어냈다. 부디 아마다블람 등정에 성공하길 빈다.

에베레스트 정상은 베이스캠프에서도 3,000m 넘게 올라야한다

히말라야에서도 스마트폰 금단증세

5일차에는 텡보체에서 7시간 동안 10km를 걸어 딩보체Dingboche(4,410m)로 향했다. 해발 3,000m대에서 4,000m대로 넘어가는 길 위에서 비로소 에베레스트 트레커임을 느낄 수 있었다. 가는 길 도중 마을에서 엄홍길 휴먼스쿨도 지나친다. 해발 4,000m를 통과하면서 친구 한 명이 약간의 두통을 호소하고 다른 일행 몇몇은 속이 조금 메스껍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주로 아마다블람, 담세르카, 콘세르카, 콩데를 보며 걸었는데 이곳에 들어서자 비로소 로체·에베레스트의 영역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숙소에 도착하니 아직 날이 훤했다. 짐을 풀고 시간이 남아 동네를 한 바퀴 돌며 구경을 했다. 경이로운 풍경과는 별개로 비탈지고 좁은 골목 여기저기에서 포커와 야바위 노름이 보인다. 힘들게 번 돈을 탕진하는 모습이 예전 우리네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무료해서일까, 아님 무리로부터의 낙오가 두려운 걸까.

통신이 두절되니 갑갑함을 견디지 못하고 친구들 모두 유료 와이파이(한화 5,000원)를 구매한다. 국민적 스마트폰 금단증세를 여기서도 목도한다. 인간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이겨낼 수는 없을까.

6일차에는 딩보체에서 두클라Dughla(4,620m)로 이동한다. 약 3시간 정도 걸리는 4km 코스다. 오늘은 고소적응을 위해 짧은 코스이다. 숙소에서 페리체 피크가 보인다. 식사 후 시간이 남아서 숙소 근처 빙하계곡에 갔다. 4명이 출발해서 2명은 도중에 추워서 돌아오고 2명은 빙하 구경도 하고 그 물로 발도 씻고 왔다.

7일차에는 두클라에서 3시간 정도 걸어 3km 거리의 로부체Lobuche(4,910m)로 간다. 오늘도 고소적응을 위한 짧은 코스이다. 두클라 이후는 촐라체Cholatse(6,335m)와 푸모리PumoRi(7,165m) 피크를 보며 협곡 사이로 걷는다. 촐라체 피크를 지나니 깃발이 걸린 돌탑들이 많이 보인다.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위령탑인데 꽤 여러 개가 있다. '1977~2012 송원빈 충남고 OB 산악회'라고 쓰인 돌탑 앞에 섰다. 혹독한 날씨에 고국의 가족을 생각하며 식어갔을 그분들에게 잠시 묵념했다.

푸모리, A봉, B봉, 로체를 보면서 걷는 재미가 꽤 좋다. 로체가 정면으로 보이는 숙소 로부체에서 망중한을 즐겼다. 천천히 걸었지만 두통이 조금 있다. 타이레놀 1알을 복용하고 저녁엔 콧물감기약도 1봉 복용했다.

8일차는 로부체에서 고락셉 로지(5,140m)를 거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5,364m)를 찍고 고락셉 로지로 되돌아오는 날이다. 총 9km 코스로 8시간 정도 걸리는데 고지인데다 험로라 힘이 제법 드는 구간이다. 로부체 이후부터는 빙하협곡의 바람이 불어 체온이 내려간다. 고락셉을 조금 지나 5,115m 분지에서 영롱한 푸모리봉을 보면서 잠시 휴식한다.

얼마 후 드디어 말로만 듣던 EBC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롭다. 영화나 TV에서 보던 그 자리에 내가 와 있다니 놀랍고 신기하다. 떡버티고 서 있는 설산 에베레스트가 손에 잡힐 듯한데 저 표고차가 3,000m가 넘는다니 눈대중이 참 어렵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산객들이 서로 사진 한 장 더 찍으려고 줄을 서고 왁자지껄하는 풍경은 관악산 연주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평생 처음인 이 순간에 가족친지와 친구들이 마냥 고맙다.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 분들이여, 행복하소서.

오르는 것만큼 힘든 하산길

9일차는 고락셉에서 칼라파타르봉(5,550m)을 오른 후 로부체를 거쳐 페리체(4,270m)로 내려가는 일정이다. 17km 거리이며 약 9시간 소요된다. 고락셉에서 2명은 고산증세가 있어 휴식을 취하고 3명만 칼라파타르봉을 갔다 왔다(왕복 5km). 이곳은 에베레스트 정상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전반적으로 에베레스트 정상보다는 아마다블람과 로체가 압도적으로 잘 보이는 트레킹 코스다.

아침식사 후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한다. 앞으로 4일 동안 내내 하산하게 된다. 페리체는 한참 고도를 낮춘 지역인데 계곡 하단 강가 옆에 위치한다. 저녁에는 처음으로 현지식을 먹었는데 우리네 음식과 유사하다. 수정된 현지식인지 한류의 영향인지 입맛이 글로벌화된 것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맛나게 먹었다.

10일차에는 페리체에서 6시간을 걸어 텡보체(3,860m)로 간다. 길가에 랄리구라스(네팔의 국화)가 많다. 동백꽃과 유사하게 보이지만 전혀 다른 종이다. 어마어마한 텡보체 고개를 넘어 15시 20분경 데부체 숙소에 도착했다.

11일차는 텡보체에서 남체 바자르를 거쳐 벤카르(2,630m)로 가는 날이다. 약 6시간 소요되었다. 거의 막바지라 생각하니 아쉽지만 끝이 기다려진다. 목욕을 하고 싶다. 아침을 일찍 먹고 부미탕아 우깔로(오르막길)를 지나 남체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 하산길목에서 전통재래시장(매주 금요일 개장)을 구경했다. 시장은 산비탈에 3단으로 구성된 소박한 규모인데 아주 정겹다. 초딩 시절 따라갔던 어느 시골 5일장이 생각났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네팔 초등학생들이 방과 후 귀가(하산)하는 모습이 날다람쥐 같다. 넋을 잃고 감탄하면서 힘들게 따라갔다. 무서워서 도중에 따라가기를 포기하고 정상 루트로 돌아왔다. 친구 한 명이 기력이 떨어져서 말을 타고 하산했다. 그런데 말이 급한 내리막길에서 삐끗해 매우 위험한 상황이 있었다고 한다. 말 타고 하산하는 것도 장난이 아니다. 두 발로 걸어 내려오든 말을 타고 내려오든 에베레스트의 하산은 그 자체가 등산이다. 결코 쉬운 하산이 아니다. 힘겹게 몬조 숙소에 도착했다. 주인이 한국에 8년을 살았다고 하니 반갑다. 이제 트레킹을 하루(12km, 6시간) 남겨두고 뿌듯함에 서로 격려하면서 맥주 한잔으로 피로를 회복한다.

12일차에는 벤카르에서 팍딩을 거쳐 루클라로 간다. 약 6시간 소요되었다. 아침 8시에 출발해서 13시에 공항 근처 숙소에 도착했다. 드디어 트레킹이 끝났다. 이제 쉬고 먹고 자고 나면 국내선 비행기를 탄다. 뿌듯하다.

13일차에는 루클라 공항에서 만탈리 공항으로 간 뒤 버스를 6시간 타고 카트만두로 간다. 토스트와 달걀 프라이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국내선 비행기로 램찹지역의 만탈리 공항으로 이동했다. 이후 준비된 버스로 출발해 6시간 넘게 걸려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이 길은 지루한 것은 별개로 너무 공포스럽다.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여정의 마지막 날이다. 저녁 8시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노동비자로 한국으로 출국하는 약 200명의 네팔 젊은이들이 함께 타는 덕(?)에 무료로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를 받았다. 수속할 때 네팔 젊은이 한 명한테 물어보니 충북 괴산군 사리면으로 간다고 한다. 서독 광부·간호사 파견 시절의 기억과 오버랩되면서 애잔함과 뿌듯함이 교차한다.

트레킹 인원은 우리 5명과 현지인 7명, 총 12명으로 구성되었다. 현지인은 가이드 1명, 세르파 1명, 야크주인 1명, 조리사 4명(보조 3명)이며, 짐 운반용 좁교 5마리가 동원되었다. 좁교는 야크와 물소의 교배종으로 후손을 생산하지 못한다. 주로 3,000m 이하에서 생활한다. 털이 많은 야크는 3,000m 이상에서 생활한다.

식사는 도착일과 출발일에 카트만두 인근 한국식당에서 사먹은 것을 제외하면 전 구간 매끼니 한국식을 제공받아서 음식 고생은 없었다. 주방장과 보조 3명으로 구성된 쉐프 모두 현지인이지만 한국 음식을 곧잘 했다. 밥, 김치, 깍두기, 김치찌개, 라면, 닭백숙, 비빔면, 된장찌개, 짜장면 등 다양한 식사를 번갈아 가면서 먹었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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