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의 팡파르…팬데믹 이긴 희망의 선율"

2023. 1. 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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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arte 필하모닉 새해 첫 공연 리뷰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20세기에 나온 가장 인기 있는 곡
송지원 열정적 독주 감탄 자아내
지난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arte 더 클래식 2023’ 첫 공연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이 한경아르떼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김광현)와 함께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2023년의 시작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희망을 꿈꾸는 것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던 지난 두 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엔데믹 원년인 새해를 맞아 밝은 미래를 노래하는 신년음악회들의 활달한 리듬과 화려한 음색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지난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아르떼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한경arte 더 클래식 2023’ 시리즈 첫 공연은 이런 분위기를 잘 담아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으로 활력 있게 출발한 점,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로 고난을 이겨내는 의지를 북돋운 점,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 e단조로 희망의 빛을 비춘 것이 그랬다. 하나의 시나리오처럼 구성한 이번 음악회의 지휘봉은 중견 지휘자 김광현이 잡았고, 떠오르는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이 독주를 맡았다.

공연의 서막을 연 ‘박쥐’ 서곡은 빠르고 경쾌한 오페레타 분위기가 가득한 작품이다. 섬세한 표현과 다양한 표정으로 극의 내용을 전달하면서도 음악적인 완결성을 겸비하고 있다. 김광현 지휘자와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이 작품을 에워싸고 있는 치장을 걷어내고 진지하게 접근해 곡에 담긴 음악적 내용을 무게감 있게 전달했다.

오스트리아 빈의 오페레타가 갖는 특유의 정취를 제대로 살린 것은 아니었지만, 작품이 지닌 예술적 가치에 집중함으로써 풍부하고 깊이 있는 음색을 들려줬다. 이런 진중한 설정은 어둡고 서늘한 정취를 지닌 후속곡과의 정서적인 격차를 좁혀줬다.

이어진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송지원이 우승을 거머쥔 ‘2017 윤이상 국제 콩쿠르’를 비롯해 여러 국제 콩쿠르에서 연주해 좋은 성적을 거둔 작품이다. 그런 만큼 ‘20세기에 나온 가장 인기 있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그가 어떻게 들려줄지 궁금했다.

송지원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민첩한 기교로 빚어낸 맑고 명확한 소리는 1악장부터 관객을 시벨리우스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카덴차를 비롯한 독주 부분에서는 자신만의 해석으로 자유롭게 연주해 감탄을 자아냈다. 2악장은 서사적인 연주기법으로 다채로운 표정을 만들었다. 마치 송지원이 살아온 이야기를 전하는 듯했다. 3악장에선 강인한 에너지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앙코르곡으로 고른 외젠 이자이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4번 중 3악장 피날레를 완숙한 기교로 연주해 환호를 이끌어냈다.

후반부 주인공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이었다. 작품에 흐르는 정서는 숙명적인 비극이다. 1악장 서주에서 약음기를 단 현악기의 어스름한 연주 속에 나지막이 들려오는 클라리넷 독주는 주제 선율이 가진 비통함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그러다 모든 악기가 다 같이 춤을 추는 총주에 이른 순간, 이런 감정은 강렬한 에너지로 분출되며 클라이맥스를 이뤘다. 곧이어 구름이 걷히듯 우울함이 밀려나는 찰나에 들려온 아름다운 선율은 희망의 광채를 아른거리게 했다.

그러고는 악장 간 쉼 없이 바로 2악장으로 들어가 극적인 진행을 감동적으로 풀어갔다. 3악장에선 현악기와 관악기가 톱니바퀴 맞물리듯이 진행하면서 음색이 교차하는 음악적 유희를 들려줬다. 마지막 4악장에선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음악적 시나리오에서 각 악기군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화려하고 에너지 넘치는 음향의 향연을 펼쳐냈다. 운명을 깨치고 승리를 쟁취하는 마지막 팡파르는 지난날의 불안과 갈등을 일소하고 희망으로 가득 찬 새해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느낌이 들게 했다.

김광현이 이끈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매력적으로 풀어내 청중에게 큰 감동을 줬다. 앙코르곡으로는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빠른 폴카 ‘걱정 없이(Ohne Sorgen!)’를 객석과 소통하며 흥겹게 들려줬다. 유쾌한 마무리 덕분인지, 귀가하는 관객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송주호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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