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여성 지우기’ 결정판된 양성평등기본계획

오세진 2023. 1. 26. 1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기순 여성가족부 차관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여성가족부의 ‘여성 지우기’가 새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공공부문 여성 관리자 비율이 낮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명이 ‘성별 대표성 제고’로 바뀌고, ‘여성폭력’이라는 용어가 상당수 빠지면서 정부가 국가정책에서 의도적으로 ‘여성’을 지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가족부는 26일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해 ‘함께 일하고 돌보는 환경 조성’, ‘안전과 건강권 증진’, ‘양성평등 기반 확산’이라는 3대 목표를 세웠다. 이번 기본계획은 △공정하고 양성평등한 노동환경 조성 △모두를 위한 돌봄 안전망 구축 △폭력 피해 지원 및 성인지적 건강권 보장 △남녀가 상생하는 양성평등 문화 확산 △양성평등정책 기반 강화 등 5개 대과제와 14개 중과제, 43개 소과제로 구성됐다.

이중 ‘공공부문 성별 대표성 제고’라는 정책명이 제1차(2015∼2017년), 제2차(2018∼2022년) 기본계획과 달라졌다. 이 정책은 그동안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로 표현됐으나, 여성에서 성별로 표현이 달라진 것이다.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란 공무원,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교원, 군인, 경찰, 정부위원회 등 각 공공부문에서 여성 관리자급 비율을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 공공부문 여성 관리자 비율은 낮다. 교장·교감(45.8%·이하 2021년 기준) 부문과 정부위원회(42.4%) 부문을 제외하면 공공부문 전 영역에서 여성 비율이 30%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 민간부문의 상장법인 등기임원 중 여성 비율은 4%대에 불과하다.

여가부가 이날 밝힌 ‘국가 성평등지수’에도 이런 불균형 문제가 그대로 나타난다. 성평등지수란 경제·교육·보건복지·안전·가족문화 등 25개 지표로 표현된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정도(남성 수준 대비 여성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지수로 표현한 값이다. 2021년 기준 국가 성평등지수는 100점(완전 성평등) 중 75.4점으로, 2020년(74.9점) 대비 0.5점 상승했으나, 국회의원 성비는 22.9점으로 가장 낮고, 관리자 성비도 24.8점으로 저조하다. 4급(과장급) 이상 공무원 성비도 39.5점으로 낮은 수준이다. 여가부는 그동안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가 “실질적 성평등 사회를 위한 핵심 목표”라며 정책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또 여가부는 이번 기본계획에서는 군인 간부 여성 비율 확대·여성 경찰 확대, 국립대 여성교수 비율 상향, 공공기관 여성 임원 확대와 같이 각 공공부문 분야별 여성 비율을 높이겠다는 구체적인 정책과제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이기순 여가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공공부문 대표성 제고는 정책 결정 과정에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시책을 마련하기 위한 대책”이라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양성평등 관점을 보다 명확하게 반영한다는 입장에서 계획 명칭을 양성평등기본법에 충실하게 ‘성별 대표성’으로 변경한 것이고, 그 내용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각 공공부문별 여성 대표성 제고 이행 현황과 올해 이행 목표는 별도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여성폭력’(여성에 대한 폭력) 용어도 이번 기본계획에서 찾기 어렵다. 대과제 5개와 중과제 14개, 소과제 43개로 구성된 기본계획에서 중과제 중 하나로 ‘성별 기반 폭력’(젠더폭력) 대응 강화를 제시했지만, ‘여성폭력’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과제명은 대과제와 중과제, 소과제를 통틀어 ‘여성폭력에 대한 단속·수사 강화’가 유일하다. ‘공공기관 여성폭력 예방교육 실효성 강화’(제2차 기본계획 소과제명)는 ‘폭력예방교육 실효성 제고’(제3차 기본계획 소과제명)로, ‘여성폭력 근절’(제2차 기본계획 대과제명)은 ‘폭력 피해 지원’(제3차 기본계획 대과제명)으로 바뀌었다. ‘여성’이 빠진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이같은 ‘여성’ 지우기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최근 논평을 통해 “지난 8일 여가부가 발표한 2023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보면, 놀랍게도 다양한 가족 지원, 아동·청소년 보호, 폭력 범죄피해자 보호 확대 등 6대 핵심 과제 중 ‘여성’이라는 단어가 언급된 것은 단 한 번에 불과했다”며 “여성 정책의 총괄 부서인 여가부에서 성평등, 여성 폭력 관련 의제를 외면하기 위해 ‘여성’이란 단어를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라고 비판한 바 있다.

한편, 정부는 이번 기본계획에서 고용상 성차별 의심 기관을 근로감독 우선 대상에 포함해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국정과제인 성별근로공시제(기업이 자율적으로 채용, 근로, 퇴직 단계별로 성비 현황을 외부에 공시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육아휴직 기간 확대(1년→1.5년)를 추진하고, 아이돌봄 서비스 정부지원 시간을 연 840시간에서 연 960시간으로 늘리면서 지원 가구도 7만5천가구에서 8만5천가구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정부는 형법에서 정한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하고, 게임과 메타버스(가상현실)와 같은 온라인에서의 성적 괴롭힘, 언어 성폭력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