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열 명보다 낫네"···10년차 개발자만 '귀하신 몸'

강도림 기자 2023. 1. 2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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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인력시장 양극화]
경기 둔화에 인건비 부담 계속 커져
개발자 키워 쓰기보다 즉시 전력 선호
신입 연봉 상승률 5%→2%대 줄때
10년차 이상은 3%서 6%대로 뛰어
저-고연차 몸값 상승률 1년 만에 역전
[서울경제]

‘개발자를 키워서라도 쓰겠다’던 국내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인건비 줄이기 등 경영 효율화를 추구하며 신입 대신 즉시 성과를 낼 수 있는 10년 차 이상 경력자 선발에 집중하고 있다.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IT 업계는 재작년만 해도 개발자 공급난에 신입 채용을 대거 늘렸는데 인건비 부담이 급증한 지난해부터 기조가 확 달라졌다. 기업들이 ‘마구잡이식’ 채용보다는 검증된 경력자에 치중하면서 10년 차 이상 고숙련 개발자들의 몸값만 크게 오르는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26일 서울경제가 인적자원(HR) 테크 기업 원티드랩에 의뢰해 국민연금 자료를 토대로 경력별 개발자 연봉을 분석한 결과 2021년 5%대를 기록하던 신입의 연봉 증가율이 지난해 하반기에는 2%대로 뚝 떨어졌다. 반면 10년 차 이상 경력자의 연봉 증가율은 같은 기간 3%대에서 6%대로 급등했다. 지난해 연봉도 2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구체적으로 경력 1~3년 차 개발자의 평균 연봉은 2021년 상반기 3230만 원에서 하반기 3401만 원으로 5.29% 증가했다가 지난해에는 상반기 3490만 원, 하반기 3592만 원으로 증가율이 2.92%로 줄었다. 4~6년 차 경력 개발자는 5.28%에서 2.64%로, 7~9년 차는 3.35%에서 2.72%로 연봉 증가율이 줄었다. 반면 10~12년 차의 경우 재작년 상반기 5689만 원에서 하반기 5896만 원으로 3.64% 증가해 신입보다 연봉 증가율이 적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상반기 6207만 원, 하반기 6619만 원으로 연봉 증가율이 6.64%에 달해 신입 개발자 연봉 증가율의 2배 이상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코딩 학원 등으로 개발자가 많이 양성돼도 기업들이 찾는 능력 있는 개발자는 늘 부족하다”며 “인건비 부담을 느끼는 기업들이 신입 대신 바로 실무 투입이 가능한 10년 차 이상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국내 빅테크 기업들은 재작년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훈풍을 타고 유례없는 성장을 기록하며 ‘개발자 모시기’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지난해 경기 둔화에 이은 실적 악화로 기업들의 채용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네이버는 2021년 설립 이래 최대 규모인 1100명을 채용했지만 지난해에는 절반 이하 규모로 채용 인원을 줄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양한 인재가 개발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2021년 신설했던 비전공자 채용·육성 트랙도 한시적으로 끝났다. 카카오(035720)도 재작년까지 2년 연속 세 자릿수 신입 공채를 진행하다 지난해에는 통합 채용도 하지 않고 두 자릿수 공채를 진행했다. 네이버의 지난해 3분기 인건비는 4335억 원으로 전년 동기(3680억 원)보다 17.8% 늘었다. 카카오의 경우 지난해 3분기 인건비가 4333억 원으로 전년 동기(3072억 원) 대비 41% 증가했다.

IT 업계 관계자는 “인건비 긴축에 들어간 기업들이 전체 인원을 줄이려 한다”며 “신사업이나 이직 등으로 인원이 필요한 자리에 신입 여러 명을 채워넣는 대신 효율 좋은 경력자를 투입하는 현상이 거세지고 있다”고 했다. 기업들은 공채 횟수와 규모를 대폭 줄이고 경력자 상시 채용을 우선시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수십 개 사업 부문에서 필요 인력을 충원하는 식의 경력자 상시 채용을 진행 중이다. 원티드가 개발자 508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면접관은 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로 △커뮤니케이션 능력(77.6%) △프로젝트 경험(75%) 등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개발자들이 이직할 때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연봉(82.3%) △개인의 성장 가능성(61.3%) 순이었다.

실력 있는 개발자들은 이런 채용 추세 속에서 경험을 쌓고 이직하며 몸값을 높이고 있다. 몇 년 전 스타트업에서 일을 시작한 개발자 A 씨는 지난해 개발자들이 선호하는 직장인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플러스·쿠팡·배달의민족)’ 중 한 곳에 들어갔다. 그는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개발 실력을 쌓았다”며 “포트폴리오를 차곡차곡 쌓아 선망하던 기업에 경력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네카라쿠배’ 중 한 곳에서 국내 대기업으로 이직한 B 씨도 “그간 두 번의 이직을 했는데 그때마다 연봉 협상을 하며 몸값을 올렸다”며 “더 좋은 조건의 경력 제안이 오면 스타트업으로 옮기기도 한다”고 전했다.

경기 침체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예고에 기업들의 개발 능력을 갖춘 경력자 우대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과 출신으로 최근 한 기업의 부트캠프(단기 교육) 과정을 수료한 C 씨는 “개발자는 취업이 잘된다기에 전직했는데 구직 시장이 얼어 서류 지원조차 힘들다”고 했다. 비전공자 출신 D 씨는 “코딩 교육 업체와 과외에만 돈을 수백만 원 부은 것 같다”며 “힘들게 면접에 올라가도 경력이 없다며 좋아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국내 IT 업계 채용 담당자는 “경기가 불확실하고 인건비에 대한 압박은 심한 상황에서 위험 부담을 안고 신입을 뽑기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며 “회사로서는 이직이 잦더라도 실무 경험을 갖춘 전공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강도림 기자 dori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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