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노조개혁, 國運이 달린 싸움

채수환 기자(csh6902@mk.co.kr) 2023. 1. 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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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노조 둘 중 하나는
치명상을 입는 전면전 시작
병폐를 알고도 방관은 안돼
개혁 명분, 절차가 공정하면
국민들은 지지할 것이다

정부와 노조의 '전면전'을 지켜보면서 14년 전 도쿄특파원 시절 만났던 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문득 떠올랐다. 인터뷰를 하며 재임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업적을 물어봤더니 일본 최강을 자랑했던 국유철도(국철) 노조를 굴복시킨 사건을 꼽았다. 1980년대 중반 나카소네 전 총리는 40조엔에 달하는 누적 적자를 낸 국철을 대상으로 민영화 개혁을 밀어붙였다. 국철 노조는 아사쿠사바시역에 불을 지르는 폭력 시위로 거세게 저항했다. 도쿄 시민들의 출퇴근 길이 봉쇄되고 도시가 마비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가 없었다면 중도에서 포기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국철 노조는 과격한 시위를 일삼으며 민심을 잃은 후 급격하게 쇠퇴의 길을 걸었고, 철옹성 같던 국철도 7개 민영회사로 분리돼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숙한 JR그룹으로 변신했다. 3년 전 작고한 나카소네 전 총리는 한국인에겐 보수·우익 이미지가 강했지만, 적어도 일본 자국민들에겐 국철 노조의 폭거에도 굴하지 않는 신념의 지도자로 남았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개혁을 새해 최우선 정책 과제로 선정했다. 그리고 첫 시그널을 명확하게 내놨다.

국가정보원은 간첩 혐의를 앞세워 민주노총 본부를 압수수색했고 경찰은 불법 갑질을 했다는 이유로 14곳 건설노조에 대해 전방위 조사를 진행 중이다. 고용노동부도 노조의 '깜깜이 회계'를 손보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 정도로 행정력이 총동원됐으면 정부와 노조, 둘 중의 하나는 치명상을 입는 전면전이다.

거대 노조는 "실정(失政)으로 인한 지지율 폭락을 무마하려는 야만적인 노동 탄압 폭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짜로 그럴까. 정부가 겨눈 칼끝은 이른바 '귀족 노조'다. 수십 년간 성역으로 치부돼 왔던 노조 집행부의 병폐를 뜯어고치자는 것이지, 노동 권익을 대변받지 못하는 약자층 근로자들을 때려잡자는 취지는 아니다. 필자는 2021년 9월 초 당시엔 야당이던 국민의힘이 개최했던 제1차 대선후보 토론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12명의 후보는 귀족 노조의 병폐를 뜯어고치겠다고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토론회가 열리기 일주일 전 경기도 김포에서 택배대리점을 운영하던 40대 점주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 점주는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불법 태업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는 유서를 남겼다. 윤석열 대통령도 노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당시 토론회 후보 중 한 명이었다. 이번에 나온 노조 개혁 조치들은 정권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갑자기 튀어나왔다기보다는 대선후보 시절에 공약한 내용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고 보는 쪽이 더 합리적이다.

민주노총은 노동절(5월 1일) 총궐기를 예고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더 거세게 반발 수위를 높여갈 것이다. 하지만 개혁 명분이 뚜렷하고 그 절차만 공정하다면 우리 국민들은 파업 반발로 생활에 불편을 겪을지라도, 결국에는 개혁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일본 국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만 노동 개혁이 노조에 가입돼 있는 14% 근로자를 위한 반쪽 개혁에 그쳐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이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등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은 나머지 86% 근로자를 대변하는 정책들도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OECD 선진국 가운데 바닥권을 기는 노동생산성, 원청과 하청 근로자의 차별적인 이중구조를 시정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들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노동개혁은 본말이 전도된 채 변죽만 울리는 데 그칠 수도 있다.

본지가 새해 초 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해 보니 우리나라가 G5 경제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노동개혁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먼 훗날 한국의 노동개혁사에 윤석열 정부가 어떤 족적을 남길지, 그 운명의 시간은 지금부터다.

[채수환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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