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하면서도 귀여운 팝아트 세계로 오라
추상화 거장 이우환 초대로
대표 캐릭터부터 좀비미학 등
30여년 작업 여정 총망라
분홍색 젤리피시 인형 모자를 쓴 화려한 복장으로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서 브이를 그렸다. 연예인인가, 예술가인가. 이 친근감이야말로, 일본 현대미술의 슈퍼스타 무라카미 다카시(60)의 경쟁력이었다.
부산시립미술관의 2층 전시장 입구, 'DOB'라 적힌 조명등에 불이 켜졌다. 무라카미 다카시 월드로 들어가는 입구를 알리는 안내문구다. 아래에는 1993년 그린 도브(DOB)의 스케치가 걸렸다. 왼쪽 귀에 D, 오른쪽 귀에 B가 그려진 동그란(O) 얼굴은 도라에몽과 소닉, 두 캐릭터의 이미지를 결합해 탄생한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대표 캐릭터. 도브는 이후 30여 년간 이어지는 '가와이(かわいい·귀여움)' 월드의 시작이었다.
귀엽지만, 동시에 기괴하다. 총천연색으로 화이트큐브를 가득 채운 거대한 회화, 조형물의 향연에 홀린 듯 작품 세계를 만끽하게 된다. 일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슈퍼스타의 '좀비'들이 부산에 상륙했다. 국내 최대 규모로 무라카미의 회고전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3월 12일까지 열린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네 번째 시리즈로 열리며, 대중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었던 초기작을 포함해 회화, 대형조각, 설치, 영상 작품 등 160여 점을 전시한다.
26일 방한한 무라카미는 "2013년 플라토 미술관 이후 10년 만에 한국 개인전이다. 큰 영광이고,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가 있다. 존경하는 이우환 선생님에게 초대받은 게 영광이었고 전혀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또 "꽃 시리즈 등은 아이들 시선으로 즐길 수 있다. 예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전시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10대에 '은하철도 999'와 '미래소년 코난'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슈퍼플랫(Superflat)'이라고 하는, 무라카미의 독자적인 개념을 고안했다. 일본의 고급문화보다 대중문화가 더 우수한 일본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 새로운 유형의 대중문화 선구자가 되고자 했다. 이번 전시 '귀여움' 섹션에는 'Mr. DOB'를 비롯해 1995년부터 시작된 '꽃' 시리즈, '탄탄보(Tan Tan Bo)'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동일본대지진은 그의 작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타쿠, 서브컬처 등을 표현한 작업에서 전통, 종교, 철학으로 회귀하고 '인간의 무력함'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기괴함' 섹션에서는 프랜시스 베이컨을 오마주한 삼면화가 그로테스크한 회화적 변주를 보여준다. 미술 경매사와 증권맨 등을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도 걸렸다. 대표작인 '히로폰'(1993) 등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대표작도 만날 수 있다. 그는 "저희 집은 신흥종교를 믿었고 21세에 탈퇴한 이후 종교에 회의적인 사람이 됐다. 하지만 대지진을 방송으로 보는 순간 나는 종교가 시작되는 순간을 봤다. 고통스러운 사람을 진정시켜주는 이야기를 주는 게 종교의 핵심임을 깨닫게 됐다. 지진 후에 만든 두 작품은 스토리가 있는 예술은 뭔가를 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 제목 '무라카미좀비'에 어울리는 최근작도 대거 전시된다. 동시대 인류의 불안을 상징하는 '좀비'를 작가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작업에 접목시켰다. '덧없음' 섹션에서는 회화에 좀비가 등장하고, '무라카미 좀비와 폴 좀비'(2022)가 눈길을 끈다. 머리에 칼을 맞고 내장이 흘러나온 자신과 반려견을 실물 크기로 만든 조형물이다.
미술관은 1년 이상 전시 준비에 매달렸고 전 세계에 흩어진 소장품을 한곳에 모으기 위한 지난한 노력도 있었다. 뉴욕 양키스 구단주의 소장품, 지드래곤의 소장품 '727 드래곤'도 부산으로 공수됐다.
마지막으로 이우환 공간에서는 한 획으로 그린 동그라미라는 뜻의 '원상'을 만날 수 있다. 스프레이로 그린 거대한 원은 이우환의 작품과 형식적으로 유사하며 선종의 공허함, 통일성, 무한함의 개념을 내포한다. 두 작가는 동아시아의 독자적인 감성과 철학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무라카미를 초대하는 편지를 통해 이우환은 "무라카미 님의 작품은 얼른 보아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고 화려하다. 그러나 다시 보면 독이 있고 강한 비판성이 감춰져 있어 지나칠 수 없다"고 했다.
[부산/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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