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BTS 군 입대와 문화 정책

2023. 1. 2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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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정부정책과 무관함을
BTS 군입대가 역설적 입증
반면 정책 필요 영역도 있어
고급·전통문화 육성이 그것

얼마 전 미국 '뉴욕타임스'에는 한류 관련 흥미로운 칼럼이 올라왔다. 여기서 한류 관련 한 전문가는 최근 한국 정부가 세계적 아이돌 그룹인 BTS의 병역을 면제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칭찬했다. 그 이유인즉 그간 K팝이나 한류는 한국 정부가 산업을 육성하듯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오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BTS를 군대에 보냄으로써 한국 정부가 국익을 위해 한류를 인위적으로 육성하고 통제한다는 인식을 씻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런 시각은 필자도 외국인으로부터 심심치 않게 듣는 얘기다. 한국이 제조업 강국을 만들기 위해 재벌기업에 여러 가지 특혜를 줘가며 산업을 일으켰듯이 한류의 뒤에는 분명히 한국 정부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한류가 성공하면서 정부 일각에서는 그 공을 차지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정부의 효율적 문화 정책과 전폭적 지원에 따라 한류가 성장·발전했다는 공치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류는 거의 자생적으로 관련자들의 자체적 노력에 의해 이뤄냈다는 것이다. K팝의 경우 창의적인 젊은 팝스타들의 피땀 나는 노력과 연예기획사들의 치밀한 기획의 결과다. 영화나 드라마 역시 끊임없이 새로운 장르와 아이디어를 추구하고 여기에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매진한 결과다. 그런 점에서 한류는 여느 한국의 산업과 달리 정부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 성장한 희귀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화를 통한 한국의 소프트파워 향상을 위해 정부가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여기서 제안하는 것는 고급문화, 전통문화를 더 육성하고 해외에 소개하는 것이다. 자연적인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대중문화와 달리 고급문화와 전통문화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문화는 일반인에게 쉽게 다가가기 어렵기 때문에 여기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국의 문학은 그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계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최초 노벨 문학상을 꿈꾸기도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 문학을 해외에 알리려면 무엇보다 수준 높은 번역이 필요하지만 여기서 정부의 모습은 미약하다. 이웃 일본의 경우에는 일찍부터 정부가 정책적으로 번역 분야를 육성해서 노벨상 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클래식 음악 역시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다. 정부가 지원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는 피아노의 임윤찬, 조성진을 비롯해 기라성 같은 음악가들을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폭넓은 인재 양성을 위해서 이 학교는 대학원 과정을 설치해 석·박사를 배출하고 싶어하지만 기존 대학들의 반대 때문에 정부는 눈치만 보고 있다. 문학과 같은 고급문화를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육성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보다 지속가능하고 장기적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의 경우 한때 뜨거운 열기로 폭발할 수 있지만 유행은 쉽게 변한다. 반면 문학 등 고급문화는 젊은 층에만 국한되지 않고 넓은 계층의 사랑을 오랫동안 받을 수 있다. 또한 문학 같은 고급문화에는 한 국가와 국민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가치가 담겨 있어 그 나라의 진정한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전통문화도 마찬가지다. 한옥, 한복, 한식, 한지, 한글 등 한국인의 진정한 혼과 정신을 담은 문화가 해외에 더욱 보급돼야만 외국인들도 한국의 깊은 멋에 매료될 것이다. 그러나 같은 동북아에서도 중국·일본과 비교해 한국의 전통문화는 아직 외국인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진다. 역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분야다.

그렇다고 K팝을 비롯한 한류를 등한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계속적인 한류 확산을 위해 정부가 간접적으로 할 역할은 분명히 있다. 특히 재외 공관을 통해 한류를 소개하고 이를 디딤돌로 삼아 고급문화, 전통문화를 보급하는 것이 정부의 과제일 것이다. 'K'로 시작되는 한국 대중문화를 바탕으로 '한'으로 시작되는 한국 전통·고급문화를 덧붙이는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손지애 이화여대 초빙교수·외교부 문화협력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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