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디지털 반격 본격화… 물량전은 기본, 전략·전술·조직 확 바꿔

정민하 기자 2023. 1. 2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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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앱 이용자, 빅테크 턱 밑까지 추격
비금융 분야 기업 투자·인수합병 활발
금산분리 등 규제 혁신 맞춰 전환 가속화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3에는 금융회사 고위 임원들이 총출동했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직접 CES 전시장을 방문했다. 신한은행은 메타버스 플랫폼을 내세운 단독 전시관을 설치했다.

국내 금융사가 일제히 최고경영자(CEO)까지 나선 수십 명 규모의 참관단을 꾸린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금융회사도 이제 IT(정보기술)를 필수적인 사업 요소로 챙겨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함영주 회장이 CES 전시장을 둘러본 뒤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를 방문해 “‘전 세계의 정보를 체계화해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구글의 미션과 ‘하나로 연결된 모두의 금융’이라는 하나금융그룹의 비전이 일맥상통한다”고 말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더 이상 금융과 IT를 분리해 볼 수 없다는 얘기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오른쪽에서 2번째)이 지난 5일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열린 CES 2023 LG전자 부스에 전시된 OLED 디스플레이를 관람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 제공

전통적인 금융회사들이 디지털 부문에서 반격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금융업에서 은행 등 기존 회사들은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되곤 했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금융사들이 모바일, 핀테크, 플랫폼 기반 서비스의 확산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그런데 금융사들이 풍부한 자원(자본 및 인력)을 바탕으로 디지털 전환에 나서면서 전세(戰勢)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은행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의 이용자 수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인터넷 전문은행의 이용자 수와 호각을 겨룰 정도가 된 것이 대표적이다.

은행들은 적극적으로 자사 모바일 서비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IT회사에서 전문 인력을 대거 영입해 IT 신사업 조직을 맡기는 건 기본이 됐다. 보험, 증권, 자산운용 등 계열사와 함께 통합형 서비스를 디지털로 구축하는가 하면 이동통신사 등 IT회사와 합작사업도 적극적으로 전개한다. 음식배달을 비롯해 헬스케어, 알뜰폰 등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가 날 만한 비금융 사업 진출도 활발하다.

정부의 금융 규제 기조가 변한 것도 유리한 측면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이 플랫폼 지배력과 규제의 공백 지대를 활용해 직간접적으로 금융업 진출을 꾀하는 걸 계속 방조할 수 없다는 게 금융 당국의 기조다. 또 디지털 산업 변화의 흐름에 맞춰 금산분리 등 전통적인 금융 규제도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관련 규제 혁신에 나서고 있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CES 2023’에서 메타버스 플랫폼 ‘시나몬’ 부스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 /신한금융그룹 제공

◇ KB국민은행 뱅킹 앱, 1년 만에 토스와 격차 351만명→149만명으로 줄어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시중은행 인터넷뱅킹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이들 은행 앱 월간활성사용자수(MAU)는 최근 빅테크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KB국민은행의 뱅킹 앱 KB스타뱅킹 MAU는 약 1215만명으로, 5대 은행 중 가장 빨리 1200만명을 돌파했다. 1년 전(1036만명)보다 200만명이 증가한 것이다.

이는 이는 전체 금융 앱 1위 토스(1364만명)와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1319만명)를 위협하는 규모다. 1년 전 토스와 KB스타뱅킹 MAU 격차는 351만명에서 149만명으로 크게 줄었다. 성장세를 놓고 봐도 그렇다. 같은 기간 토스MAU는 오히려 23만명가량 감소했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2만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KB금융을 이어 빅테크를 추격하는 모습이다. 신한은행 앱 쏠의 지난달 기준 MAU는 945만명으로, 올해 MAU 10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NH농협은행의 NH스마트뱅킹 827만명 ▲우리은행의 우리WON뱅킹 713만명 ▲하나은행의 하나원큐 562만명 등이 뒤를 이었다.

금융권의 최대 화두 중 하나인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1개월 동안 한 번 이상 앱을 사용한 이용자 수를 의미한다. 이 지표가 높아질수록 충성 고객을 꾸준히 확보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번 고객이 되면 장기 고객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는 금융사 특성상 중요한 지표인 셈이다. 통상적으로 MAU가 최소 1000만명은 돼야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일러스트=손민균

◇ 타업종 손잡고 핀테크 인수… 초개인화 통한 플랫폼 꿈꾸는 전통 금융

시중은행은 빅테크를 따라잡기 위해 최근 2~3년간 외부 출신 디지털 인재 영입에 공을 들여왔다. 순혈주의가 강한 조직문화로 알려졌지만, 디지털·ICT 분야 인재를 수시 채용하고 비금융업권 전문가를 수혈하는 방식이다. 최근엔 내부 디지털 인재 육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금융에 경험과 지식이 많은 내부 인력을 투입해 사업을 좀 더 고도화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은행장 직속의 혁신 조직을 신설하고, 자체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췄다.

이들 은행은 축적된 디지털 관련 경험을 바탕으로 빅테크의 ‘원 앱(하나의 앱)’ 전략 등을 벤치마킹하고, 타업종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고 있다. KB금융은 은행 앱에 디지털 지갑 플랫폼 KB월렛 기능을, 카드 앱엔 지급결제 기능을 추가했다. 우리금융도 은행과 카드 앱에 비금융 서비스를 넣는 등 생활밀착형 플랫폼의 기능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비금융 분야와 협력도 활발하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KT와 9000억원 규모의 핀테크 동맹을 맺고 인공지능(AI)·메타버스(3차원 가상 세계) 등 디지털 분야에서 협력한다. 하나금융은 SK텔레콤과 4000억원 규모의 지분을 교환하며 디지털 금융 ‘혈맹’을 맺었다. KB금융은 대출 중계 플랫폼 ‘알다’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KB·신한·우리·하나 등 4대 금융그룹은 모두 자체적으로 스타트업 투자·육성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주요 은행 수장들은 올해 신년사에서 디지털 금융을 외치며 초개인화를 강조했다. 뱅킹 앱이 개인의 성향을 분석해 통신·헬스케어·쇼핑 등 비금융 영역 서비스까지 추천하고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 은행들의 원 앱 전략은 인터넷 뱅킹 서비스를 앱으로 단순 이전시키는 형태에 불과해 빅테크와 격차가 오히려 벌어졌었다”면서 “그러나 최근엔 빅테크에서만 가능했던 간편송금·이체 수수료 면제·고객 맞춤형 상품 추천 등을 제공하면서 뱅킹 앱이 자리 잡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러스트=정다운

◇ 금융사인데 알뜰폰·음식 주문… 금산분리 완화 기조 맞물려 가속화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기조도 은행의 디지털 진출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고 있다. 금산분리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하거나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은행이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하거나, 금융지주 회사가 산하 비금융 계열사에 자금을 몰아주는 폐단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이후 등장한 인터넷전문은행은 이를 벗어나는 특례를 받아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정부는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산업 간 경계가 흐려진 만큼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간에 처져 있던 칸막이를 손질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면서다. ‘내 손 안의 금융비서’라고 불리는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도입, 클라우드 이용절차 합리화, 망 분리 규제 개선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의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금융사들은 성과를 내고 있다. KB금융의 알뜰폰 서비스인 리브모바일(Liiv M)의 경우 가입자 수가 2020년 9만1000명에서 지난해 약 35만명으로 증가했다. 신한은행의 음식 주문 중개 플랫폼 땡겨요는 올 상반기 중 영업 구역을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최근 땡겨요의 테이블오더 서비스를 위한 입찰 공고에 나섰는데, 연내 서비스를 내놓기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테이블오더는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가 전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오프라인 주문·결제 서비스다.

금융권 관계자는 “규제를 풀어준 빅테크가 오히려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금융기관은 아닌 이른바 ‘쉐도우 뱅킹(그림자 금융)’이 돼 규제 사각지대 위험성이 크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면서 “반대로 아직도 많은 규제로 발목 잡혀 있는 전통 금융의 경우 빅블러 시대에 맞춰 조금씩 풀어주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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