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유, 도이치그라모폰서 신보발매…"함께 성장한 음악 담아"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제게는 매우 소중하고 가까운 곡들이에요. 특히 브루흐는 인생의 많은 단계를 경험하며 함께 자란 음악입니다. 저 자신을 많이 담아냈어요."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29)가 막스 브루흐와 사무엘 바버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담은 앨범 '바버, 브루흐'를 26일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인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발매했다.
이 앨범의 주요 수록곡인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G단조와 바버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해 에스더 유는 "내게는 특별한 불꽃이 일어나는 곡들"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벨기에, 독일, 영국에서 교육받으며 음악적 기반을 다져온 에스더 유는 독일 낭만주의의 보수적 전통을 고수한 브루흐와 미국적인 선율을 품은 바버의 작품들을 뚜렷한 컬러로 신보에 담아냈다.
"인생의 각기 다른 시기에 이 작품들을 처음 접했는데 지금도 연주할 때마다 특별한 불꽃이 일어나요. 브루흐와 바버가 이 협주곡들을 완성한 시기가 20대라서 그런지 젊은 에너지와 성숙한 작곡의 조화가 담겨 있습니다."
수록곡 중 앙리 비외탕(1820~1881)의 '아메리카의 추억'에서는 에스더 유의 과감하면서도 유쾌한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이날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열린 신보 발매 간담회에서 에스더 유는 비외탕의 '아메리카의 추억' 중 '양키두들'을 직접 들려주기도 했다.
이 작품은 벨기에의 작곡가이자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비외탕이 미국에 방문했을 때 동요 '양키두들'을 접하고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다.
"미국적인 멜로디라고 할까요. 어릴 적 미국에서 아빠랑 차를 타고 여행을 갈 때 카세트테이프로 들으며 함께 노래하곤 했던… 제게는 스토리가 있는 곡이예요."
이번 앨범은 바실리 페트렌코가 이끄는 영국의 로열필하모닉오케스트라(RPO)와 함께 녹음했다. 에스더 유는 2018년부터 RPO의 상주음악가로 활동하며 이 오케스트라와 깊은 인연을 맺고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음악 치료 등의 활동도 해왔다.
"RPO 단원들과 함께 영국 케임브리지 쪽에서 섭식장애가 있는 10대 여성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음악치료를 하는 프로젝트를 했어요. 갈 때마다 학생들이 점차 말수도 많아지고 밝아지고 변해가는 것이 보였어요. 나중에는 짧은 곡도 함께 작곡했고 런던에서 그 곡을 무대에 올렸는데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에스더 유가 처음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건 2010년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에서 16세로 최연소 입상을 하면서다.
이후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 거장 로린 마젤이 18세이던 에스더 유를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아시아 투어 공연 협연자로 낙점했고, 2014년에는 또 다른 세계적인 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에게 발탁돼 남미 순회 연주를 함께했다. 에스더 유는 아슈케나지와는 도이치그라모폰에서 각각 차이콥스키와 시벨리우스·글라주노프 앨범을 함께 냈다.
세계적인 현악 전문지 '스트라드'는 에스더 유를 가리켜 "이 시대 바이올린 독주자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로, 지성적이며 명확한 표현을 구사하는 그녀는 기교 위주의 연주자와 격을 달리한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클래식 장르뿐 아니라 영화음악과 현대음악에도 관심이 많은 에스더 유는 이언 매큐언의 원작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국 영화 '체실 비치에서'(On Chesil Beach)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도 녹음해 발표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 중이다.
"'체실 비치에서' 영화음악을 맡은 작곡가가 제 연주를 라디오에서 듣고 제게 연주를 맡기면 좋겠다고 했대요. 영화는 음악보다 스토리와 인물들의 감정이 우선이잖아요. 그 감정을 관객들이 음악으로 어떻게 느끼게 할지 고민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음악의 자양분으로 삼을 생각이다. 바이올린을 하지 않았다면 뭘 했겠느냐는 질문에는 "변호사가 됐을 수도 있다.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과 기사를 찾아 읽고 있다"면서 "세상을 폭넓게 알아가는 것이 음악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이런 폭넓은 호기심에는 미국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뒤 유럽으로 이주해 벨기에, 독일, 영국에서 교육받은 성장배경이 있다. 그래도 커가면서 점차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강해진다고 했다.
"맵고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한국인임을 느껴요. 어려서도 제1 언어는 한국어였고, 밥과 계란말이를 도시락으로 싸서 들고 다녔어요. 외국에서 된장찌개를 파는 곳이 별로 없어 제가 직접 끓이기 시작했는데, 외국 친구들도 좋아합니다."
에스더 유는 오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의 신년음악회에 협연자로 나서 앨범 수록곡인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도 2월 방콕 공연을 비롯해 런던, 멜버른, 암스테르담 등지에서 계속 연주가 있어요. 제가 너무 사랑하는 음악을, 다양한 음악가들과 작업하고 도전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싶습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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