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 인터뷰] ‘두산 감독 100일’ 이승엽 “OB베어스 원년 어린이회원이 운명처럼”

이재국 기자 2023. 1. 2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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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 감독 취임 100일을 맞이한 이승엽 감독이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잠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잠실, 이재국 전문위원] 멈췄던 ‘이승엽의 시간’이 다시 움직인다. 현역 선수에서 은퇴한 지 6년. 그라운드를 떠나 ‘야구해설자’와 ‘이승엽야구재단이사장’으로 야구의 끈을 이어오던 ‘국민타자’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예상하지 못한 색깔의 유니폼 입고 현장에 복귀했다.

코치 경험 한번 없이 감독 자리에 오른 것도 파격적이었지만, 삼성 라이온즈 색채가 강한 그가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 자체도 놀랄 만한 빅뉴스였다.

지난해 10월 18일 두산 베어스 제11대 감독으로 취임한 뒤 1월 25일까지 정확히 100일이 지났다. 1월 29일 호주 시드니로 첫 스프링캠프를 떠나는 이 감독은 캠프 준비에 여념이 없는 상황. 잠실야구장 두산 감독실에서 ‘국민타자’가 아닌 ‘초보감독’ 이승엽을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두산 베어스 점퍼를 입은 이승엽 감독이 취임 후 잠실구장 그라운드를 응시하고 있다. ⓒ두산 베어스

◆ 감독 취임 100일

- 감독 취임식(10월 18일) 이후 100일이 지났다.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

“많이 쉬었는데 쉬는 게 아니더라. 마음 편히 쉬지 못했던 것 같다. 초보감독이고 하니까 선수도 많이 알아야 하고, 팀 분위기도 알아야 하고, 모든 걸 새로 알아야 하기 때문에…. 생소하면서도 재밌다. 시즌 들어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을 해보기도 한다. 잘 될 때는 관계없지만 ‘안 될 때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야 하나’ 이런 생각? 고민? 그러다 보니까 3개월이 지났다.”

- 감독이 되고 나서 더 바빠졌을 것 같다.

“오히려 반대다. ‘감독이 됐으니까 바쁘겠지, 스트레스 받겠지’라고 짐작해서 그런지 연락들을 잘 안 하더라. 밖에 있을 땐 많이 찾더니 이제 직업이 (감독으로) 딱 정해지니까 부르는 사람이 잘 없다. 다행이다 싶다. 그래서 아주 편하게 생활하고 있다(웃음).”

- 요즘 일과는?

“한 번씩 잠실구장 나와서 단장님(김태룡)도 뵙고, 사장님(전풍)도 뵙고, 구단 직원들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이천에 가서 신인선수들 운동하는 것도 좀 봤다. 지금은 감독이 할 게 없잖은가. (감독실 선수 현황판을 보면서) 이렇게 나와서 어떤 선수들이 전력일까 고민도 많이 하고, 개인적으로 웨이트트레이닝도 하고, 아주 소소하게 지내고 있다.”

-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 안 할 수 없다. 부상 선수가 나올 수도 있고, 팀 분위기가 안 좋아질 수 있는 사건·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고, 한 시즌 144경기를 하다 보면 돌발변수가 많이 생길 수 있으니까. 지도자는 안 해봤지만, 선수 때 그런 걸 많이 느꼈기 때문에 잘 준비해야 할 것 같다.”

- 그렇잖아도 주위에서 지도자 경험이 없으니까 걱정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 나 역시 걱정이 된다. 반대로 경험이 없으니까 무서울 게 없다는 생각으로, 좀 못해도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더 과감하게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팀에는 유능한 코치들이 있다. 사장님, 단장님뿐만 아니라 회장님(박정원 구단주)까지도 워낙 야구를 좋아하시고 잘 아신다. 혼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프런트, 선수, 코칭스태프까지 삼위일체가 돼 한마음으로 가면 된다.”

- 어떤 지도자가 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23년 동안 프로 선수를 하면서 여러 성격의, 여러 부류의 지도자들을 만났다. 카리스마 있는 감독님도 만나봤고, 가깝게 이야기와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감독님도 만나봤다. 개인적으로는 대화를 하면서 선수의 감정을 이해하는 감독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좋은 방법인지 나쁜 방법인지 모르지만, 선수와 지도자라기보다는 한 가족처럼 지내고 싶다. 팀 성적이나 분위기 따라서 다르고, 또 선수 개개인의 성적과 성향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나는 무게 잡고 선수와 거리를 두는 것보다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먼저 가까이 다가가려고 한다.”

- 과거 김성근 감독은 선수나 코치와 밥도 같이 먹지 않아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를 편애한다든지 오해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건 충분히 생각하겠다. 지난해 마무리훈련 때 한 달 정도 선수들을 경험했는데 내가 선수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선수들은 나한테 말을 못 걸더라. 그런 문화는 조금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아직 처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선수가 고민이 있으면 감독에게도 이야기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 뒤끝이 없지 않을까. 모든 선수들에게 ‘항상 문은 열려있다’고 했다. 문제가 있으면 찾아오라고.”

▲ 두산 베어스 이승엽 감독이 지난해 10월 18일 감독 취임식에서 김태룡 단장(왼쪽), 전풍 사장(왼쪽에서 2번째), 김재환(오른쪽)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잠실, 곽혜미 기자

두산 선수단에도 조금씩 변화의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두산 구단 관계자는 “마무리훈련에 참가한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감독과 대화하는 장면이 많이 보였다. 마무리훈련에 참가하지 않은 주전급 선수들은 벌써부터 스프링캠프에 가면 감독에게 뭘 물어볼지 플랜을 짜기도 하더라”고 달라진 선수단 분위기를 전했다.

이승엽 감독이 두산 사령탑으로 취임한 뒤 팬들의 관심도는 뜨겁게 올라가고 있다. 구단 행사에 오는 취재진의 숫자는 더욱 많아졌고, 유튜브 ‘베어스티비(BEARS TV)’의 조회수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두산 홍보팀 관계자는 “구단TV 조회수가 엄청나게 늘어 이승엽 감독 취임 전 40일과 취임 후 40일간의 조회수를 집계해봤는데, 취임 전에 약 250만 뷰였던 조회수가 취임 후에는 1000만 뷰를 넘었다. 같은 기간 무려 4배 이상 증가했다”며 놀라워했다. 만드는 영상마다 히트를 치자 팬들도 “베어스TV인지 이승엽TV인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슈퍼스타 출신의 이승엽 감독 일거수일투족, 한마디 한마디가 어떤 관심과 반향을 불러일으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감독 이승엽’의 본격적인 시간이 시작되는 시즌 개막 후에는 더욱 큰 관심이 쏟아질 전망이다. 최근 스토리가 줄어들고 있는 KBO리그에서 이승엽의 등장은 흥행의 기폭제가 될 듯하다.

▲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은 평소에도 자주 잠실구장에 나와 야구를 관전한다. 야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매우 깊은 구단주로 소문이 나 있다. ⓒ곽혜미 기자

◆ “구단주가 감독으로 모시려 합니다” 문자 한 통

김응용, 김성근, 김재박, 선동열…. KBO 역사에서 감독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명장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만 42세 되던 해에 프로야구 정식 지휘봉을 잡고 감독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1941년생 김응용은 1983년 해태 타이거즈에서, 1942년생 김성근은 1984년 OB 베어스에서, 1954년생 김재박은 1996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1963년생 선동열은 2005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KBO리그 감독으로 데뷔했다.

‘국민타자’ 이승엽. 그가 지난해 10월 두산 베어스 감독을 맡기로 했다는 뉴스가 터졌을 때 많은 이들이 ‘다소 젊은 나이에 감독을 시작하는 것 아닌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1976년생인 삼성 라이온즈 박진만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10개 구단 감독 중 막내이기에 그런지 모른다. 게다가 코치 경험 없이 곧바로 감독이 됐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앞에 언급한 전설적이 지도자들의 나이를 놓고 보면 이승엽도 젊은 나이에 감독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이승엽 감독 역시 위의 선배 감독들의 데뷔 나이를 듣고는 깜짝 놀라더니 “제가 감독된 게 빠른 줄 알았는데 늦었네요”라며 웃는다.

▲ 두산 베어스 이승엽 감독이 벤치에 앉아 전력 구상을 얘기하고 있다. ⓒ두산 베어스

- 은퇴 후 5년간 재야에 있다가 6년 만에 감독으로 복귀했다.

“내심 은퇴하고 5년 정도는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3년간 정말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은퇴 후 재단도 만들었다. 야구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재단을 튼튼하게 해놓고, 내가 없어도 재단이 잘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을 때 야구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적절한 시간이 5년이라고 생각했다. 그 5년이 지난해에 끝났다.”

- 그렇다면 올해는 어떤 식으로든 현장에 복귀하려고 했다는 말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실 내 성격으로는 어디에다 ‘현장으로 복귀하고 싶다’고 말을 못 한다. 누구를 찾아가서 ‘이제 준비가 됐다’ 이렇게 말할 성격도 아니고. 그런데 지난해 시즌 막바지에 두산 회장님과 우연히 한번 식사 자리를 했다. 제가 아는 분이 회장님과도 아는 분이셨는데 자리를 마련하셨다. 그분께서 ‘이날 시간이 될까? 회장님도 나오시는데’라고 해서 ‘인사 한번 드리면 좋겠다’ 싶어 나간 자리였다. 거기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됐다.”

- 어떤 얘기를 나눴나?

“그날 회장님께서 야구에 대해 엄청 많이 물어보셨다. 야구에 대해 워낙 관심도 많고 해박하시니까 한국야구는 물론이고 일본야구도 물어보시더라. 전반적으로 정말 많은 야구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야구 얘기만 하다 2~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 감독 인터뷰 자리가 된 셈인데.

“그건 아니다. 나도 그날 처음 회장님을 뵀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 했던 것 같다. 내가 혹시 다른 생각(두산 감독이 되고자 하는 생각)을 했다면 더 조심스럽게 말했을 거다. 그게 아니니까 그때는 정말 편하게, 솔직하게 말씀을 많이 드렸다.”

- 그 자리에서 감독 제의가 있었나?

“음…. 식사하고 마지막에 말씀을 하시더라.”

- 깜짝 놀랐겠다.

“그렇다. 그때까지만 해도 삼성 아닌 다른 팀에서 나한테 그런 제의가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땐 처음 만난 인사치레로 하신 말씀인 줄 알고 흘려들었다. 그런데 헤어지고 나서 회장님께서 직접 휴대폰으로 다시 문자를 주셨다.”

- 문자 내용을 알려줄 수 있나?

“하하하. 이걸 공개해도 되나?”

- 그것도 하나의 역사 아닌가.

“문자에 ‘구단주가 직접 모시려 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회장님께서 직접 보내신 문자인데 마치 다른 분이 대신 전하는 것처럼 보내시더라. 솔직히 그 말에 감동을 받았다. ‘내가 갈 곳은 이곳(두산)이구나’ 생각했다. 다음날인가? 단장님한테 연락을 드렸다. ‘두산에 가겠다’고.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회장님의 문자가 결정적이었다. 식사하던 그날 그냥 인사치레로 말씀하신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삼성 색채가 강했던 이승엽이다. 두산 김태룡 단장도 평소에 이승엽이 야구장에서 만나 진로를 고민하면 야구인 선배로서 “대구(라이온즈파크)에 벽화도 있는데 삼성 가야지”라고 대답하곤 했다고 한다. 이승엽 역시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의 제의에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김 단장에 따르면 당시 이승엽은 “그룹 오너께서 직접 제의를 해주셨는데 제가 기다려달라고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며 운명처럼 두산 감독직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승엽은 두산과 묘한 인연이 있다. 그 얘기를 꺼내 질문을 이어갔다.

▲ 이승엽은 원년 OB 베어스 어린이 회원이었다. 어린 시절 투수는 박철순(왼쪽), 타자는 이만수(가운데)를 우상으로 삼고 야구를 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KBO 허구연 총재와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 ⓒ잠실, 곽혜미 기자

- 어릴 때 OB 베어스 박철순 투수가 우상이었다고 하지 않았나?

“박철순 선배님이 내 우상이었다. 일곱 살 되던 해에 프로야구가 생겼는데 타자는 이만수, 투수는 박철순 선수가 우상이었다. 파마머리하고 다리를 높게 올리는 박철순 투수의 투구폼이 와일드해서 멋있었다. 그때부터 팬이 됐다. 동네야구를 하면서 박철순 선배님 투구폼을 따라하고 그랬다.”

- 그 박철순이 뛰었던 팀에 이렇게 감독으로 오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그렇다. 그런데 사실 난 프로야구 원년에 OB 베어스 어린이 회원이었다.”

- 왜 OB 베어스였나. 대구에서 태어나 성장했는데 삼성 어린이 회원이 되고 싶지 않았나.

“사연이 있다. 원년에 형하고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회원에 가입하려고 했다. 그런데 대구 지역이다 보니까 금세 매진이 돼버렸더라. 그래서 OB 베어스 어린이 회원에 가입하게 됐다. 베어스가 원년에 우승을 하지 않았나. 당시 구단에서 우승 기념으로 보내온 맥주 컵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 베어스 구단과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것 같다. 신인 때(1995년)엔 박철순 선배님을 상대로 홈런을 쳤다. 여름쯤인가? 잠실이었다. 그때 진짜 기분 좋았다. 우상한테 홈런을 쳤으니까. 삼성에서는 우상(이만수)과 함께 뛰었고, OB를 상대로는 우상 박철순 선배님의 공을 쳐서 홈런을 날렸으니 아주 영광스러웠다. 프로에 와서 첫해부터 행복한 일이 많았다.”

- 2000년 KBO 올스타전 때 덕아웃에서 두산 홍성흔과 유니폼을 바꿔입고 웃는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마산에서 열렸던 올스타전으로 기억한다. 동기고 친구고 하니까 ‘유니폼 한번 바꿔입자’ 그랬던 것 같다. 체격도 비슷하니까.”

- 그게 훗날 진짜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게 되는 암시였을까.

“하하하. 공교롭게도 그렇게 됐다. 당시 유니폼에는 가슴에 반달곰 마크가 있고 그랬는데.”

▲ 두산 베어스 이승엽 감독이 감독실에서 인터뷰 도중 호주 스프링캠프 구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곽혜미 기자

● 베어스를 위하여

- 두산은 지난해 9등을 했던 팀이다.

“두산에 선수가 없다고 없다고 하는데, 물론 감독으로선 선수가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약하지는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타자를 보면 김재호 양의지 김재환 정수빈 허경민 등 30대 중·후반 넘어가는 선수들이 있고, 김대한 이유찬 양찬열 등 어린 선수들도 있고, 중간에 양석환이나 김인태 강승호 박계범 김민혁 이런 선수들도 있다. 아직은 미지수지만 모든 전력을 풀로 가동하면 약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가 부족한 부분은 이번에 40일 정도 되는 스프링캠프 기간에 잘 채워서 시즌 준비를 하겠다.”

- 냉정하게 볼 때 고민되는 부분은?

”좌완투수가 좀 부족하다. 외국인투수들도 다 우완이고, 중간이나 마무리 주축이 거의 우완이다. 좌완 선발이 많으면 한 명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 최승용 정도인가?

“아직까지는…(웃음). 투수코치와 상의해 봐야겠지만 3연전을 하면 1경기 정도는 좌완투수가 던지면 좋은데 그게 되지 않을 것 같다. 중간에서도 좌완이 조금 더 눈에 띄어야 한다. 요즘 좌타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KIA 타이거즈만 하더라도 나성범, 최형우, 소크라테스 3명이 줄줄이 나오면, 확실하게 좌타자들에게 압도감을 줄 수 있는 좌투수가 필요하다.”

- 후보가 있나?

“캠프에 가서 이병헌을 비롯해 어린 투수들을 잘 만들면 재밌는 투수가 나올 것도 같다. 장원준도 30대 후반 되는 것 같은데 기대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부진했지만 통산 120승(129승)을 넘은 투수이지 않나. 전성기만큼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거들어주기를 기대한다.”

- 지난해 10승 투수가 전무했는데 올해 외국인투수도 다 바뀌었다.

“지난해 외국인투수 승수를 모두 합쳐 15승이 안 된다(로버트 스탁 9승, 브랜든 와델 5승). 선발투수 5명 중에 2명이면 40%지만, 외국인 선발투수는 사실상 마운드 전력의 50% 이상이다. 라울 알칸타라가 한국에서 20승(2020년)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내고 일본에 가서 부진했는데, 보고 받은 바로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들었다. 일본 지인에게 개인적으로도 물어봤더니 부상도 없었고 구위는 괜찮다고 하더라. 알칸타라가 기본적으로 두 자리 승수 이상을 해줘야 생각한 대로 다른 선발투수들의 로테이션을 지켜주지 않을까. 우리 팀에는 곽빈, 최원준이 있기 때문에 외국인투수들이 스타트를 잘해주면 나머지는 자연적으로 좋은 효과가 날 거라 생각한다.”

- 딜런 파일 투수는?

“영상으로 봤는데 구위로 압도하기보다는 제구력 좋고, 템포 좋고, 변화구가 좋기 때문에 잠실구장에서는 충분히 상대 팀과 싸울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 외국인타자 호세 로하스는?

“로하스는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와 비슷한 유형인데 페르난데스보다는 수비도 좋고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페르난데스가 빠지면서 고정 지명타자가 사라졌다.

“지금 자리가 빡빡하다. 1루수에는 양석환 김민혁이 있다. 둘 다 타격이 좋은 선수다. 김민혁은 아직 야구팬들에게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굉장히 재밌는 선수가 될 것 같다. 웃겨서 재밌는 게 아니라 타격하는 걸 보니 체격이 큰데도 파워도 있다. 생각보다 밀고 당기고 하는 타격 센스가 있는 것 같다. 김재환도 팔꿈치 수술을 했다. 일단은 풀타임 좌익수가 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로하스 선수도 있다. 지명타자는 돌아가면서 해야 하지 않을까. 잠실야구장은 수비력도 중요하다. 그런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 작은 야구장에 가면 공격적으로, 장타 쪽으로 포커스를 맞춰야 할 것 같다.”

- 국내 선발 후보 곽빈, 최원준, 최승용에 추가로 염두에 둔 선수는?

“6번, 7번, 8번 정도까지 있어야 한다. 부상 선수가 나올 수도 있고, 비가 와서 연기되면 갑자기 연전이 생길 수도 있다 어린 선수들이 조금 더 차고 나가야 한다. 김동주, 박신지 등이 조금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 KBO리그 최고 포수로 꼽히는 양의지가 다시 두산 베어스로 돌아왔다. 이승엽 감독이 양의지 입단식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곽혜미 기자

- 양의지라는 즉시전력감을 영입했지만 장타 보강이 가장 큰 고민일 것 같다.

“안재석, 이유찬 두 선수도 재밌게 보고 있다. 송승환, 양찬열, 김대한 이런 선수들도 유심히 보고 있다.”

-베테랑 유격수 김재호는 지난 2시즌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팀 내 입지가 좁아진 것 같다.

“김재호의 역할이 중요하다. 젊은 선수들만으로 경기를 풀어나갈 수 없다. 주전으로 못 나가더라도 경기 후반에 대수비라도 해줄 수 있다. 예전에 주인공이었다면 지금은 ‘조연을 맡아줬으면’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어린 선수들에게 멘토 역할까지 같이 해주면 팀이 더 좋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좋은 모습 보이면 당연히 경기를 많이 나갈 것이다.”

- 선수로서는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좌우명을 가졌는데, 지도자로서 지키고 싶은 좌우명이나 지도철학이 있다면?

“프로로서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거다. 나는 선수 시절 빵빵(장타) 치는 스타일이었지만 사실 아기자기한 야구도 좋아한다. 구장에 따라, 스코어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쉴 때는 충분히 쉬더라도 필드에 나가서 1회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무섭게 돌변해 야구에 몰입하는 선수들을 보면 좋겠다.”

- 두산은 예전부터 ‘뚝심’, ‘미러클’로 대표되는 팀이다.

“허슬플레이를 잘하는 팀이 두산이지 않았나. 그런 역동적인 모습을 좀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김재환, 양석환, 김민혁 등 체격 큰 선수들이 많아서. 김재환한테 ‘육상부’를 주문할 수도 없고(웃음). 뛰는 선수, 치는 선수, 수비하는 선수, 역할 분담이 있으니까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할 것 같다.”

- 감독으로서 처음 스프링캠프를 떠난다. 초보감독이다 보니 캠프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하더라. 하지만 안주하는 생활을 하려고 했으면 현장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생은 당연히 하는 거다.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이 고생을 한다. 스트레스 받고 힘든 게 아직까지는 두렵지 않다. 은퇴 후 5년간 많이 쉬었기 때문에 이제는 좀 고생할 때가 됐다.”

▲ 두산 베어스 이승엽 감독이 지난해 10월 감독 취임 후 이천 마무리훈련을 지휘하며 상념에 잠겨 있다. ⓒ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는 1월 29일부터 3월 7일까지 호주 시드니(블랙타운)에서 스프링캠프를 진행한다. 시드니 블랙타운은 이승엽과 한국야구에 특별한 장소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한국야구가 사상 최초로 올림픽 메달(동메달)을 획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승엽은 숙적 일본과 대결한 동메달 결정전에서 8회에 괴물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침몰시키는 2타점 결승 2루타를 날려 영웅이 됐다. 이승엽에게 ‘약속의 8회’를 시작하게 한 ‘약속의 땅’이다.

이승엽은 지난해 10개 구단 중 9위에 그쳤던 두산을 살려낼 수 있을까. 약속의 땅에서 담금질이 시작하는 이승엽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타자로서 홈런 신화를 쓴 이승엽이 코치 경험 없이 감독으로서도 홈런을 날리는 역사를 만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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