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지역 병원 전락한 국립암센터

김명지 기자 2023. 1. 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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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지 기자

“처음 설립할 때 분당에 지었으면 달랐을까요.”

얼마 전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국립암센터 관계자에게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환자 수가 줄어드는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위치 상 확장에 한계가 있다”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국립암센터는 전문적인 암치료와 암연구를 목적으로 정부가 지난 2000년 설립한 암 전문 치료 기관이다. 한국인 사망 원인 1위 질병인 암을 극복하려고 만들었다.

이런 ‘국가 전문 치료기관’이 지역 병원으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국립암센터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센터를 방문한 환자 가운데 국립암센터가 자리한 고양시 환자 비중이 전체 10명 가운데 3명을 차지했다. 환자 10명 중 6명이 경기도, 8명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거주자로 나타났다. 전국의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국가적 목적으로 설립했지만, 지방에서 방문한 환자는 10명 중 2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암센터가 타 지역 환자들에게 외면 받는 이유에는 ‘지리적 한계’도 분명 있다. 하지만 내부의 얘기를 들어보면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다. 센터 직원들은 실력있는 의사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가장 걱정했다. 국립암센터의 한 교수는 “젊은 의사들 중에서 수술 잘한다고 소문이 나면 유명 대학병원으로 곧장 스카웃된다”라고 말했다. 의료계에서 국립암센터는 ‘암명의’ 사관학교라는 평가를 받는다.

유능한 젊은 의사들이 암센터를 떠나는 것은 처우 때문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국립암센터는 공무원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임금을 책정하기 때문에, 총액인건비 규제가 있다”라며 “훌륭한 인재를 채용하려고 해도 임금을 맞춰주는 것이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실력있는 의사만 있다면 환자를 유치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서울대병원 암병원은 전국에서 밀려드는 환자들로 북새통이다.

시설도 낙후하다. 2년 전 신관을 증축했지만 여전히 병상이 부족하다. 주차 공간도 부족하다. 진료를 보는 환자는 하루 주차비가 무료이지만, 직원들은 주차비를 따로 낸다고 한다. 국립암센터에 한 달 가량 근무한 전공의가 주차비로만 수십만원을 냈다는 괴소문도 있다. 신관 증축과 함께 지하2층 지상 4층 규모의 주차타워를 지었지만 이 역시 태부족이라고 한다.

교통이 불편한 것도 환자들의 발걸음을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당장 주변에 지하철역이나 기차역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셔틀버스가 없다. 국립암센터는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셔틀을 운영하지 못한다고 한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항암 치료를 하는 암환자들에게는 대중교통 이용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센터 직원들은 “지방에 있는 암 환자들이 아예 찾아올 수 없게 만든 구조”라고 말했다.

병역의무 대신 농어촌 등 보건의료 취약 지구에 근무하는 의사인 공중보건의 지원은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한참 전에 중단됐다. 의료계 내부적으로는 “국립암센터도 조만간 국립중앙의료원 꼴 난다”는 말이 나온다. 국립중앙의료원은 국립이라고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서울 지역의 환자들을 돌보는 병원이 됐다.

정부는 ‘국립암센터 법’에 따라 병원에 세금을 지원한다. 지난 2021년에 정부가 국립암센터제 지원한 예산은 902억으로 센터 전체 예산의 19.5%에 이른다.국가가 설립하고 세금으로 지원하는 기관인 만큼, 좀 더 적극적으로 ‘살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무작정 세금을 쏟아 넣으라는 것이 아니다. 국립암센터가 전국의 암환자가 믿고 찾아갈 수 있는 병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해야 한다. 경부고속도로가 있는 분당으로 못 옮긴다면 지방 환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편의를 개선해야 한다. 지금 이런 상태라면 분당에 있었어도 크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일성은 ‘과감한 규제 타파’였다. 윤 정부가 꽉 막힌 족쇄와 규제를 풀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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