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전부 IB교육...“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을 가르쳐요”

김태주 기자 2023. 1. 26. 10: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오후 4시 30분, 정규 수업 시간이 이미 끝난 시간이지만 제주 서귀포시의 국제학교 ‘브랭섬홀 아시아(Branksome Hall Asia)’의 교실에선 여전히 선생님과 열띤 토론을 벌이는 학생들이 보였다. 복도에선 삼삼오오 모여 노트북과 메모지를 손에 들고 진지하게 무언가를 논의하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학교 구석구석에는 디자인 장비와 3D프린터, 드릴과 공구들, 도자기 제작 가마 등이 놓여 있었고,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풍력 발전기 터빈, 미술 설치 작품들이 복도를 가득 메웠다.

브랭섬홀 아시아 교실에서 학생들이 학습활동을 하고 있다 /브랭섬홀 아시아

브랭섬홀 아시아는 초등(PYP), 중등(MYP), 고등 프로그램(DP) 전과정 ‘IB(국제 바칼로레아)’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제주 유일의 학교다. IB는 스위스의 비영리 교육재단 국제 바칼로레아 기구(IBO)가 1968년 외교관 자녀의 교육을 위해 개발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암기식 교육에서 벗어난 토론과 발표형 수업, 그리고 오지선다형 평가에서 탈피한 논술·서술형 절대 평가를 지향한다.

브랭섬홀 아시아를 비롯한 IB학교에서 진행되는 모든 수업의 출발점은 ‘탐구’다. 가령 초등(PYP) 2학년 수업에선 학생들에게 ‘간이 정수기 만드는 방법’이 메뉴얼처럼 제시되지 않는다. 대신, 교사는 아프리카에 사는 한 아이가 더러운 물을 마셔야만 하는 환경에 처한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학생들은 영상 속 아이의 상황에 공감하고 어떻게 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탐구한다. 정수에 사용할 재료나, 정수가 잘 되었는지 확인할 평가 방식도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 직접 제시한다.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지역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자기 주도적인 탐구 학습 태도를 키우고, 주변 친구들과 협력하며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하는 것이다.

팻 롱 브랭섬홀 아시아 미들스쿨 교장은 “IB는 평생 학습자들을 위해 ‘학습하는 방법’을 스스로 습득하도록 하는 교육”이라며 “우리가 암기할 수 있는 모든 정보는 휴대폰으로 전부 확인 가능한 시대인 만큼, 그러한 정보를 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힘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브랭섬홀 아시아에서 아이들이 교사와 함께 학습활동을 하고 있다 /브랭섬홀 아시아

교육 방식이 다르니, 평가 역시 단순 암기만으로는 제대로 풀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국제 고등 과정 졸업 자격시험제도인 ‘IB DP’은 특정 지식을 알고 있는 것을 넘어, 여러 지식 사이의 유기적인 관련성을 알고 이를 문제 해결을 위한 합당한 근거로 엮어내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있어야 고득점을 할 수 있도록 출제된다. 예를 들어 ‘권위에 대한 저항은 다양한 형태를 띤다. 공부한 두 작품을 참조하여 권위에 대해 어떻게 저항하는지 서술하라’ 등의 문제에 대해 학생들은 2시간 동안 서론, 본론, 결론 구성의 글을 답안으로 작성한다.

이러한 교육과 평가를 위해 브랭섬홀 아시아의 교사들은 끊임없이 수업 연구를 하고 지식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계 시민’으로서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지도안을 개발한다. 정해진 교과서 없이 교육과정만 있는 만큼 각 학년을 담당하는 교사들 간의 협력도 중요하다. 브랭섬홀 아시아에서 미들·시니어스쿨 국어 과목을 담당하는 신유진 교사는 “각 학년에서 어떤 개념을 가르칠지 다른 선생님들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조율한다”며 “매년 들어오는 학생들의 배경 지식이나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들도 고려해 수업 지도안을 매번 새로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10여년의 IB 교육의 노하우가 축적된 브랭섬홀 아시아에선 2022년도 졸업생들의 IB DP 평균 점수가 36점(45점 만점)을 기록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 세계 640명에 불과한 만점자도 2명이나 배출했다.

브랭섬홀 아시아 교실에서 학생들이 학습활동을 하고 있다 /브랭섬홀 아시아

IB는 기존엔 브랭섬홀 아시아를 비롯한 국제학교에서만 운영되던 프로그램이지만, 최근엔 대구·제주교육청을 중심으로 공립 학교에서도 도입이 본격화되고 있다. 블레어 리 브랭섬홀 아시아 총교장은 “IB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학생들이 스스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자기주도적으로 해결하면서 이를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는 ‘철학’ 그 자체”이라며 “학교별로 형태가 조금씩 다르고 적응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러한 철학은 얼마든지 한국 공교육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